<3년만에 귀국한 서해교전 전사자 미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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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 전사 한상국 중사 부인 귀국
2002년 6월 발생한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미망인 김종선씨가 2일 오후 영종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김씨는 전사자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 등에 실망, 미국으로 떠났으며 3년만에 귀국했다. |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서해교전 전사자와 부상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2002년 6월 발생한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미망인 김종선(34)씨가 남편을 잃은 슬픔과 전사자들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2005년 4월 미국으로 떠난 지 3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2일 오후 5시30분께 뉴욕발 KE082편을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씨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행기 안에서는 만감이 교차했는데 인천공항을 보니 `내가 정말 돌아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만 3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소감을 전했다.
6년 전 김씨는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에서 조타사로 일하던 남편이 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의 공격을 받아 전사했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설상가상' 당시 임신 중이었던 김씨는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수 개월 후 유산해 아이까지 떠나 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더 이상 한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씨는 당시 심정에 대해 "마치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혈혈단신으로 떠난 미국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네일 아트' 기술을 갖고 뉴욕에 간 김씨는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미용가게와 슈퍼마켓 등에서 일했고 건물청소원으로 일하기도 하면서 힘든 생활을 해야했다.
일부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신분도 숨긴 채 살았다고 한다.
김씨는 "불법체류가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고민해야 할 만큼 절실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갑작스레 귀국을 결심한 배경에 대해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걱정됐고 역시 자식으로서 옆에 있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동안 2함대 사령관이 주관하던 서해교전 전사자 추모식을 정부 주관으로 격상키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귀국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 됐다고 한다.
김씨는 "서해해전 부상자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데도 국가보훈처는 이들이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하면 받아주지 않았다"며 "그것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젊은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동안 그들은 너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향후 계획에 대해 "이제 막 귀국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앞으로 서해교전 전사자와 부상자들의 명예회복을 실현할 수 있는 활동을 해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김씨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엄연히 북한과 대치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언제 또다시 제2, 제3의 서해해전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과거 서해해전을 계기로 앞으로 군인들에 대한 시각도 바로 잡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연합)
kona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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