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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산 학교 기부…나눌수록 행복한 그들

Written by. 관리자   입력 : 2008-06-24 오후 12: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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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타고난 '기부유전자'라도 있는 것일까. 수십억, 수백억 원이나 되는 자신의 재산 전액을 아낌없이 쾌척한 우리사회의 '기부천사'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한번쯤 생겨나는 궁금증이다.

이들은 중소기업 경영자에서부터 시장에서 젓갈을 파는 할머니 등으로 수천억, 수조억 원을 가진 재벌이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사회 최상류층과는 거리가 먼 보통사람들이다.

"따로 떼어놓은 재산이 있겠지…"라는 짐작도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 들어 본 대답은 "집 한 칸이 남은 모두"라는 한결같은 답변이었다. 보통사람이면서도 특별할 수밖에 없는 기부천사들을 만나 그들의 삶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들여다봤다.

◆ 전 재산 기부, "상상 못할 인간적 고뇌 넘어서야"

= 서울대를 포함해 30여 차례 총 180억원이 넘는 거액을 쾌척한 '기부왕'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79). 서울대 동문 가운데 정 이사장보다 재산을 더 많이 모은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지만 학교 기부는 그가 최고다.

하지만 이런 그도 고액기부에 대해 가장 큰 걸림돌은 가족들의 반대인 것이 사실이며 이를 납득시키는 과정에서 남들은 상상치 못할 인간적 고뇌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병마'라는 절망 속에서 돌아본 인생이 이런 인간적 고뇌를 뛰어넘어 '재산 사회환원'을 결정케 만든 계기가 됐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중소기업이 지난 1998년 재생고무 생산 기술과 전자제품용 특수고무를 국산화하며 한창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후두암 4기'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암까지 발병했다.

정 이사장은 "병마를 계기로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니 세상에 나눠준 게 너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평생 자금관리를 혼자서 해온 '독불장군'이었지만 전 재산을 기부한다는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정 이사장은 "가족들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혼자 결정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더군다나 그의 장남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소뇌 손상까지 입고 요양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하지만 정 이사장은 거액을 상속하는 대신에 10억원의 난치병 연구기금을 서울대병원에 기부했다. 가족들도 그의 뜻을 '운명'으로 받들어 지금은 요양 중인 장남도 정 이사장의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의 '기부천사'로 유명한 젓갈할머니 류양선 씨(76ㆍ충남상회)는 기부를 하는 과정에서 가족과 적지 않은 갈등을 겪었다. 그는 지난 98년 경기도 광명의 10억원 상당 상가건물을 비롯해 2006년 제주 서귀포시 성산면의 수십억원대 부동산, 올해에도 10억원대 규모 경기도 김포시 고촌면 집터와 논밭을 한서대에 내놨다. 가히 '기부중독증'이라 불릴 만하다. 한서대와 인연을 맺기 전에는 이화여대, 건국대 충주캠퍼스에 장학금을 냈다. 전국 학교에 책 수만 권도 보냈다

그런 류 할머니도 이미 고인이 된 남편과 재산처리와 이혼 문제를 놓고 3년간의 소송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류 할머니는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한평생 모르고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고생하다 간 사람"이라며 자신의 뜻을 이해해 주지 못한 남편에 대해 못내 아쉬움을 내보였다.

◆ "도와달라" 아우성에 초인종도 떼버려

= 수백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기부하는 결정과정도 어렵지만 이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기부 뒤부터다.

류 할머니는 "카드 빚을 갚아주면 은혜를 잊지 않겠다", "투자를 해 돈을 불려주겠다"며 부탁 반 협박 반 하는 사람들이 시시각각 찾아와 류 할머니를 괴롭혔다. 류 할머니는 "아예 집의 초인종을 뜯어 내버렸을 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때로는 좋은 일을 하고도 "유명세 타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냐"는 식의 핀잔 섞인 질시는 류 할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는 비단 류 할머니뿐만이 아니다.

대학에 305억원을 기부하고 1000억원대 재산으로 교육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한 부산 향토기업가 송금조 회장도 기부 후 각종 단체와 개인 등에게 잇달아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는 등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고액 기부자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린다.

최근 서울대에 100억원 상당의 건물을 기부한 이용희 씨를 접촉하기 위해 학교와 지인 등에게 연락해 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하나같이 "(본인이) 할 일을 했을 뿐 조용히 살고 싶다고 말해 연락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연세대에 100억원 기탁을 약속한 이민주 전 씨앤엠 회장 측 역시 "명예나 대가를 바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정치에 나갈 것도 아니어서 떠벌릴 이유가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 '기부유전자' 따로 없지만…

= 정 이사장에게 "기부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학설이 있는데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신 그는 "기부란 '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밥먹기 보다 쉬울 수도, 죽기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돈'은 자신에게 '분뇨'와 같은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가 말하는 '분뇨론'은 단순히 돈에 대한 경멸을 담은 뜻이 아니다. 그는 "분뇨는 한곳에 많이 모이면 심한 악취를 풍기지만 밭에 고루고루 나눠주면 비옥한 땅이 되어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류 할머니는 "일단 한번 나눠주는 기쁨을 알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돈이 내 돈이 된다"는 다소 엉뚱한 말을 했다. 그는 "좋은 일을 하니 손님들이 더 많이 찾아오고 그러니 돈이 알아서 나를 따라오더라"며 "도와준 학교에서 평생 가보지 못한 미국, 제주도에도 데려가 주고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도 해주는데 더 이상 돈이 뭐가 필요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들에게 '기부유전자'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돈과 인생에 대한 '겸손의 유전자'만큼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돈을 많이 갖고 있어도 기부를 주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자 정 이사장은 "과거 너무나 빈곤한 생활을 겪은 한국 부모들의 한(恨) 서린 마음"이라며 "그러나 많은 재산을 자식에게 주는 것은 '독약'을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선(善)'을 실천하는 것에도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움을 준 학생들이 찾아와 보느냐"는 질문에 류 할머니는 "배운 놈들이 배운 대로 실천하면 그만이지 쓸데없이 시장엔 왜 기웃거리느냐"며 "사회에서 훌륭한 인재가 돼서 사기 안 치고 정직하게 살면 나는 그만"이라고 답했다.(매일신문)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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