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국가보훈정책은 국민들을 서로 통합시키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져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한 이유로 국가 보훈은 국가 발전과 국민의 정신적 체계 확립을 위해 중요하며 국민들에게는 국가보훈의식 함양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 보훈제도는 제도 정착을 위한 단계로 생계 안정이 중심이 됐고, 70년대는 국가보상 신장과 국민 성원을 통한 자립기반 조성이 중심이 됐다. 진정한 의미의 보훈제도 시작은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념적 기반 구축을 통한 정신적 예우의 강화가 이뤄지고,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과 복지시책의 확대가 중심이 되면서부터다.
90년대에 들어서는 순국선열과 독립유공자들의 애국 충정을 기리는 민족정기 선양 기능을 정책 차원에서 수행하기 시작했다. 국가보훈의 대상과 주요 지원내용으로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참전유공자, 5·18민주유공자, 고엽제후유(의)증자, 특수임무수행자, 제대군인 등으로 국가보훈 대상을 구분해 관리하고 있다.
이제 ‘호국보훈의 달’과 ‘6·25전쟁 기념일’을 보내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6·25 참전 소년유격대 및 소년병’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소년병들의 정상적인 입대 시기는 1953년 7월 23일 휴전 이전이지만, 이들의 90% 이상이 3년 1개월의 전쟁 중에서도 가장 위급하고 희생이 많았던 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 전투와 1·4후퇴를 전후한 5∼6개월 사이였다.
당시 8%밖에 남지 않았던 국토에서 총 병력의 12%에 달하는 2만5000여 명의 ‘6·25 참전 소년지원병’은 낙동강 방어선의 반격과 두 번의 서울수복,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기여를 했음은 분명하다.
당시 6·25전쟁은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약 1개월 만에 전 국토의 92%가 점령당한 미증유의 국난으로, 국가의 존망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함으로써 그 당시 상황은 “입대는 곧 죽음”이었다. 당연히 입대해야 할 청장년도 병역을 기피하고 도망 다니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풍전등화와 같았던 이 시기, 5∼6개월간에 ‘6·25 참전 소년지원병’들이 입대해 조국을 큰 위기에서 구해내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혁혁한 전과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진 바 없어 그들은 아직 국가유공자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5월, 6·25 참전 강화청소년 유격동지회 회관에서는 ‘6·25와 소년병’이라는 대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6·25 참전 국가유공자인 이들은 늙고 병들어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58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80을 바라보는 힘 없고 병든 노인들은 어려서는 나라와 내 고향을 지켰고, 황혼의 길에 들어선 지금은 내 고장의 환경살리기 운동에 앞장서서 봉사하고 있다.
최근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제주도에서는 6·25 당시 14세의 소녀로 해군에 입대, 적군과 싸웠던 분들이 지금은 할머니가 돼 4명이나 살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제 세월은 무정하게 흘러 생존 전우들은 80을 바라보는 힘 없고 연약한 노인이 됐다. 정부는 할아버지·할머니가 된 ‘6·25 참전 소년·소녀지원병’들의 국가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하고, 그에 상응한 대우를 해 줄 것을 기대해 본다.(kookbang.dema.mil.kr/)
유영옥(경기대 국제대학장 yooock12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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