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사 해체되면 韓·美동맹 껍데기"
이주천(원광대 사학과) 교수는 북한의 김정일은 오래 전부터 통치술을 익혀와서 우리 사회 지도자들과는 그만큼 차이가 있고 핵을 가지고 강대국들과 벼랑끝 전술로 협상하는 것을 보면 상당한 전략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김정일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이 교수는 또 우리사회에서의 김정일에 대한 '대항마'는 누구 한 사람으로 지칭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그 분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고 주도해 나갈 때 그들이 진정한 김정일의 대항마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일의 인질이 된 대한민국', '김정일의 대항마를 찾아라' 등의 저서를 내기도 한 이주천 교수(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는 7월 30일 오전 서울 반포동 팔레스호텔 커피숍에서 가진 '코나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최근 우리사회의 혼란스런 정국으로부터 북한 체제의 변화 도모 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기탄 없이 밝혔다.
예의 속사포 같은 달변과 직설적 화법으로 거침없이 토로하는 이 교수와의 인터뷰는 1시간 30분 동안 '언제 시간이 지나갔느냐?' 고 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이 날 창밖은 우리사회의 변화무쌍한 흐름처럼 그렇게 변화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여름 장마철 비는 언제 어떻게 내릴지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도 쾌청했던 날씨가 비로 변할지는 예측 밖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추가로 부탁했던 커피가 이미 다 식어 버린 후에서야 창밖에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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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 날 이 교수와 가진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글임.
◆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요즘 근황이 어떠신지요.
최근에는 「김정일의 대항마를 찾아라Ⅱ」를 썼고요, 서울에서 방송출연과 전주방송 TV에 출연하는 등 토론에 참여하고 이승만 대통령 학술 토론회 등 집필과 토론으로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8월 초에는 일본에 가서 최근 한국 상황 등 지인들과 대담 및 인터뷰 등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 교수님께서는 사학을 전공하셨는데 요즘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인 인상을 받고있습니다.
사정이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지난 2005년에 미주리 대학에서 돌아와서 집필을 한 게 「김정일의 인질이 된 대한민국」입니다. 이 책을 쓰면서 뉴라이트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수가 캠퍼스 밖을 돌아다니는 것이 다는 아니지만 교수의 직분에 사회봉사와 사회활동이 연계되는 것이라고 보면 한국사회의 급박한 사회 변화가 (저를)밖으로 나오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사회의 좌경화 문제, 좌파정권의 친북 정책이고 햇볕정책의 위험성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고 봅니다. 제 행동이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또 이미 드러난 사실이지만 햇볕정책 10년 동안 북한 김정일은 핵무장을 했습니다. 이는 햇볕정책의 실패이고 안보에 큰 위협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정권이 바뀐 것이고 (대북정책에 대해)상호주의를 하자는 것입니다. 남북간의 상호주의는 1대1로 하자는 것이 아니고 납북자와 국군포로 등을 연계하면서 전향적인 측면에서 대북정책을 추구하라는 것이지요. 북한과 같이 인권이 열악한 나라가 없습니다. 북한은 아프리카도, 달나라도 아니잖습니까. 그런데도 생지옥 같은 이곳에 2천3백만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남한이 그대로 있다면 이는 분명한 직무유기입니다.
◆ 학문적 측면의 역사학과 보수운동 측면에서의 사회활동과 관계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학문의 세계는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논하기에 시민이 함께 어울려 논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일정한 역할을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교수직분은 연구활동과 교육, 사회봉사로 나뉘는데 거기서 적절한 조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저는 대학시절때는 역사가가 되기 위해 공부했고 그 이후 10년은 저서와 학술논문을 쓰기위해 공부했으며, 그후에는 역사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대중운동을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수운동을 하게 된 것은 특정세력이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되었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애국심과 건전한 시민교육으로 국가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며, 그런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김영삼 정권 이전에서 중·고교에서 역사학이 필수 과목이었습니다. 이후 교과서가 통폐합되고 역사과목이 줄어들었으며, 특히 폐단이 암기식 위주로 교육함으로서 재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또 입시위주로 하다보니 흥미도 반감되었는데, 그러다 드라마 '대조영'이나 '불멸의 이순신' '대왕 세종' 등으로 역사에 흥미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한 흥미가 적은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비근한 예로 미국 같은 나라는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교 졸업시에는 이미 시민양성교육이 끝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사를 많이 가르친다는 것이고 시민으로 완성된다는 의미지요. 우리의 입시제도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역사학 교사 수준 또한 대학 교수 수준입니다. 교재도 두껍고 인물의 설명이 재미있으며 특징적으로 요약이 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역사 교재가 천편일률적인 게 문제입니다. 강대국의 공통점은 역사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기본입니다. 그런 점에 비춰볼 때 역사교육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또 우리 역사교육은 너무 좌편향적이라는 게 큰 문제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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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둘러싼 주변국이 과거 역사를 날조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은 독도로, 중국은 북한으로 들어온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영토야욕입니다. 과거 역사를 통해 이런 점(침략)을 정당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중국은 북한지역이 과거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야욕을 드러내고,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이후 독도 침략이 제국주의 침략이며 독도를 향하는 것도 동북아에서의 일본의 영향력 증대를 위한 신 패권주의이자 신제국주의 입니다. 자국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게 역사조작입니다.
◆ 건국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이유가 1945년 8월15일은 일본으로부터 단순히 해방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름도, 주민등록도, 족보도 없는, 한마디로 노숙자 상태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자기소속 정체성을 갖게되었습니다. 자기 성명과 주민등록, 집과 소속을 갖는 것이고 '내가 한국인이다' 하는 것을 알리게 되었으니, 48년부터가 한국인으로서 진정한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특히나 1945년 8.15일부터는 미군정 통치기로 이 시기는 정부와 헌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완성된 역사가 아니라 혼란기며 미·소가 점령한 의미가 있으며 48년부터는 기초공사가 되고 뿌리가 내린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45년은 연합국이 승리해서 우리를 해방했지만 48년은 우리 스스로가 나라를 세운 건국의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최근 이 대통령에 대한 연구와 평가도 변화되고 있는데요 이 대통령을 어떻게 보시는지.
7월초에도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분의 사료를 읽으면 읽을수록 초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미 조지 워싱턴 대통령과 비교를 많이 해봅니다. 신생국으로서의 미국과 대한민국은 역사가 다릅니다. 미국은 워싱턴이 아니었더라도 제퍼슨이나 해밀턴 프랭클린 등 국제정치와 외교에 밝은 쟁쟁한 인물이 많았습니다.
한국은 독립운동가는 많았지만 신생국을 이끌 지도자 능력은 이 박사를 제외하고 함량이 부족했습니다. 김구 장면 조병옥 등이 있지만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과 통찰력 식견이 부족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약소국의 지도자 안목은 강대국에 대한 눈, 특히 미·소 냉전체제에 대한 정치력 통찰력이 필요했는데 이점에서 이 박사 만한 인물이 없었다고 할까요. 전후 냉전체제가 등장하면서 소련 공산주의가 심대한 영향을 끼친 상황에서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무장한 유일한 분이고 영어구사는 물론 석 박사 학위를 단기간에 따는 실력자로 초강대국 미국의 정치를 이해하고 전후 미소 양국에 의한 양분을 예견한 분이기도 합니다. 많은 지도자들이 좌파사상에 물들었지만 이 박사만 준비된 대통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신탁통치를 반대하였고 궁극적으로 한국문제를 UN으로 가져가고자 했으며 미국은 결국 UN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UN에서 대한민국을 승인하도록 UN외교를 추진하고 1948년 12월 합법정부로 승인토록 했습니다. 최초로 UN이 우리를 승인했고 결과 6.25동란시 최초로 군대를 모아서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근거는 UN이 승인한 나라라는 점이지요.
한미동맹도 이 대통령의 벼랑끝 외교의 승리의 결과이며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이승만 대통령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혼이나서 이승만이 미국에서는 골치덩이지만 어쩔 수 없는 존재로 생각될 정도로 강하게 인식되었고 결국 한미동맹을 추진했고, 오늘의 경제성장이 바로 한미동맹이 버팀목이 된 것입니다. 이점은 우리 젊은이들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내용입니다. 이는 1차 대전이후 프랑스 정치가들은 영국이나 미국과 동맹을 맺으려 했지만 못했습니다. 마지노라인에 의존했는데 전쟁을 막지는 못했지요. 이승만은 약소국가 지도자 였음에도 6.25 전쟁 말기에 한미동맹을 성사시킨 것은 외교적인 큰 개가입니다. 미국은 원치 않았어요. 이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 이 대통령에 대한 공·과(功·過)가 진보와 보수 사이에도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오늘의 시점을 연계해서 평가하신다면?
좋은 질문입니다. 1948년 8월 나라는 건국이 되었어도 경제적으로는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북으로부터의 송전이 중단되고 46년부터는 피란민이 대거 내려오는 실정이었습니다. 이들을 전부 먹여살려야 했습니다. 일본인들이 운영했던 전국의 공장, 기술자, 경영자, 재정 금융관계자들이 대부분 일본으로 돌아감으로써 경제운영 시스템이 무너졌습니다. 제대로 일할 기회도 없었고, 어떻게 경제을 운영해야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거기에 48년 10월 대구폭동을 비롯해 제주반란 사건과 여수 순천 사건이 터졌습니다. 군·경에 의한 치안유지가 보통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국민 1인당 GNP는 겨우 38 달러에 불과했는데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고 인플레가 극심했지요. 미국에서의 원조는 대부분 유럽이나 일본으로 가고 나머지 잉여농산물이 일부 한국으로 들어오는 실정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나라 운영의 시스템이 부족했습니다. 빨치산은 치안을 헤집고 남로당 지하조직에 의한 폭동유발은 다반사였으니 역사는 지금 현재의 상황과 전혀 다릅니다. 과거의 어려운 상황으로 되돌아가서 일단 이해해야 합니다.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파동으로 인한 이후의 장기 집권은 비판해야 합니다. 이미 고령에 다가 한국전쟁이라는 격무를 치루고 50년대 말기에 오면서는 인의 장막으로 인한 판단력도 흐려집니다. 이것이 절대권력자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공부한 이 박사는 언론의 자유, 비판을 허용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신문에 보도된 4·19의 도화선이 된 이주열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 박사가 48년부터 초기 UN에서의 외교는 눈부시게 해서 외교 신이라고 평할 정도였습니다. 군사 경제면에서는 핸디캡이 있다고 하겠지만 인간이 모든 면에서 다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인재풀의 한계로 보면 될 성싶습니다. 후반기 내정문제에서 실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당시 다른 사람이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까 하는데는 의문을 갖게도 됩니다.
◆ 21C 율곡포럼에서도 정부의‘이념’이나‘실용주의’주장 등을 비판하셨는데 왜 정부의 실용주의가 비판을 받는다고 보시는지요?
현 정부가 실용주를 내세운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의 철학이 비즈니스 마인드이고 모든 것을 이익을 기준으로 보는 사고방식이기에 실용주의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는 좌우에 날개가 있는데 국정철학을 너무 효용이나 기능적인 측면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축, 즉 이데올로기나 가치관 등 기본원칙이 있어야 하며, 실용주의가 갖지 못하는 원칙을 보강하려면 자동차 바퀴처럼 두개나 네 개의 기조가 보강되어야 안전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실용의 미비점을 해결하려면 법치주의와 보수주의, 자유주의를 사안별로 묻어서 나가야한다는 것이지요. 화살이나 칼만 필요한 게 아니라 탱크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실용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이번 독도 사태가 바로 증명하고 있는 예입니다.
◆ 인수위 과정에서부터 이명박 정부가 많은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텐데요, 정부의 노선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요?
반복되는 얘기 같습니다만 현 정부의 실용주의나 대북 문제, 독도관련 사안이 암초에 부딪치는 것은 효율성과 기능성을 강조하다보니 오해를 사는 것입니다. 오해는 자기 지지층인 보수세력이나 기존 동맹국에도 오해를 사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당연히 반발을 사게 마련이고 자기는 아니라고 해도 그러다가는 외톨이가 되기 마련입니다. 얼치기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의 실용주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라는 튼튼한 밑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보강이 없으면 실용주의는 사상누각이 되고 맙니다.
한반도에서 남북관계는 이념과 체제의 전쟁상태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용주의로 간다는 게 무슨 말이냐 하는 것이죠. 남한의 체제가 우월하다고 해서 이념의 시대 종결을 선언했는데, 그러나 북한은 권투로 말하면 아직 링 위에서 그로기 상태가 안되고 항복선언도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오히려 핵무장을 했습니다. 강도는 칼을 놓지 않고 있는데, 손을 내밀며 화해하자고 하면 됩니까? 일본도 독도를 거점으로 신패권주의로 나오고 있잖습니까? 독도를 자기네 영토화하기 위해 오랜 기간 로드맵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은 일본과는 역사전쟁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도 실용은 납득이 안되는 점입니다.
◆ 대북 정책에 대해 보수는 우려를, 좌파는‘비핵개방 3000구상’을 맹공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 정책에 변화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보시는지? 그렇다면 어떤 변화나 정책이 요구된다고 보십니까?
현 정부 대북 정책이 중요한 것은 과거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핵 개방 3000구상'은 분명히 상호주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북한의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건이후 금강산 관광 중단은 과거 정부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분명히 다른데 지금 북한은 우리 대통령에 대해 '이명박 역도'운운하며 대화를 기피하고 대남 관련 인사를 100여명 교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자체의 상호주의원칙에도 한계가 있지만 과거와는 다르고, 만족은 못하지만 국민 보수 여론을 참작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봅니다. 남북 간 소통에 어느 정도 문제점은 있지만 국민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남북이 긴장국면을 유지 시에 대한민국이 잘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긴장상태를 비정상적으로 볼 필요도 없으며 인내를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북한 김정일에 대해 평가를 하신다면?
김정일은 김일성 생전부터 30여년 동안 실질적으로 일을 해왔습니다. 통치술을 연마한 것이지요. 남한의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지도력을 보이는 것과는 비교가 되는 부분입니다. 사악한 것은 문제지만 핵으로 강대국과 벼랑끝 전술로 협상하는 것을 보면 상당한 전략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할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상대방의 인간적 약점을 파악해 제압한다고 할까요.
또 김정일은 남한의 고위 지도층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공개되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므로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남한을 주무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 베트남 공산화 과정을 보면서 간접침략, 종교인, 지식인, 학생, 시민단체를 프락치로 해서 북한의 나팔수가 되게 해서 미군을 철수 시킨 다음 결정적 시기에 남한사회를 적화하겠다는 생각을 벌써 20년 전에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예를 지난 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 시 그의 자세나 대화에서 얼마든지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 북한체제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되리라 보는데 어떤 측면이 북한체제 변화를 가장 확실하게 앞당길 수 있다고 보십니까?
북한의 최대 아킬레스는 인권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서독이 동독에 대해 한 것도 바로 인권문제입니다. 인권침해사례를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사례를 보존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사실이 또 북에 알려져서 북한 지도층들이 통일 이후 인권침해문제로 인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예견할 수 있도록 압박 해야합니다. 또 대북 지원도 현찰은 안 됩니다. 지원을 할 때도 어떤 식으로든 상호주주의원칙을 견지해야 합니다. 납북자나 국군포로가 오든지 편지가 왕래되던지 성의가 천명되도록 해야합니다.
북한의 궁극적인 변화는 김정일 사후라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김정일 급변사태에 대비하는 국력의 축적과 준비가 되어야 겠지요. 태풍처럼 몰려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 ‘김정일의 대항마를 찾아라’저서가 2권 째 발행되었는데 책을 좀 소개해 주시고요, 우리사회에서 김정일의 대항마는 누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지.
최근 정치지도자의 성향이나 김정일의 대남공작과 한반도 정세 분석을 서술했습니다. 대항마는 각계 각층에서 나와야합니다. 북한을 변화시키고 주민을 해방시키려면 각 분야에서 대항마가 나와서 북한에 대처해야 하리라 봅니다. 그래야 민주국가가 힘을 받습니다. 일례로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제작한 강성산 감독 같은 사람이 문화예술계의 대항마가 되고 학계, 종교계 등 각 방면에서 북한 변화와 개혁 개방의 목소리가 커져야 되리라 봅니다.
또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이 경제와 공산주의를 연구했듯이 우리 대통령도 경제문제에 더해서 안보 대통령 이미지를 가져야 합니다. 안보 대통령이 키입니다. 대한민국지도자가 북한 공산주의 문제를 앞서서 해결해 나가고자 할 때 우방국이 도와주는 식으로 가야합니다. 소련 공산주의에 정면으로 대처했던 레이건과 같은 김정일의 대항마가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항상 북한 핵에 협박당하고 다른 나라에 우왕좌왕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 지금 정부에서 북핵을 비롯 한미동맹, 중·일과의 관계 등에서 안고 있는 딜레마는 무엇이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책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어려운 문제네요. 북한과의 상당한 긴장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 정책의 어려운 점은 한·미·일의 공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독도문제로 인해 한일 간에 대북 문제를 매울 수 없는 간격이 생긴 것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일본, 미국과의 공조는 북한해방이나 통일을 위해서도 공조는 필수입니다. 부시 대통령과 김정일이 가까워지고 있고 외교적으로도 미국과 북한이 관계개선으로 미북간의 급격한 변화가 감지되는 등 상황이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대륙체제에 저항하여 대불동맹을 성사시킨 오스트리아 수상 메테르니히의 세력균형원리를 키신저가 미국외교에 적용했는데, 키신저가 부시를 만나서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의 적용을 충고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북 분단을 그대로 두면서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며 과거의 중국견제용이 남한이었는데, 북한을 전략카드로 활용하는 것이며 그러면 분단은 영구화 됩니다. 물론 조건은 북핵의 폐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상타파정책을 취해야 통일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지금 부시행정부는 현상유지정책으로 돌아섰습니다. 이것이 한반도 고착화정책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국내적으로 인내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런 것이 고립무원이고 사면초과라고 할까요. 촛불시위를 통해서도 보다시피 우리 국민의 에너지가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주변국들의 견제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위험한 국가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외교도 인간관계도 혼자 살수는 없으며 관계개선이 필요한데 외교는 상대가 있습니다. 각 사안별로 쇠고기 외교는 쇠고기대로, 아이템별로 탄력성 신축성 있게 움직여야한다. 과거사 청산은 중국 러시아와, 핵은 미·일과 손잡고 하는 등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지나치게 쏠리지 않도록 사안별로 협력하고, 정부가 할 수 없는 부분은 민간 학자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부단하게 논리를 개발하고 정부와 지자체, 정당이 역할을 분담하면서 해야지 어디 축구장에서 응원하듯이 '우'하면서 반미 반일 감정으로 몰두되어 지나치게 하면 안 됩니다.. 현명하게 대처하고 언론이 조정하고 지혜를 갖고 거중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2012년 연합사가 해체되고 하면 미군 지위 변경이 나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미국은 아시아에서 일본에 더욱 의존하게 되겠지요. 연합사가 해체되면 미·일동맹은 더욱 강화되고 한미동맹은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또 그해 선거가 있는 해이기도 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고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비해야합니다.
◆ 정부가 보수나 좌파로부터 욕을 먹고 등을 보이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현재와 같은 촛불 정국을 타개하고 힘있는 정부가 되기 위한 지름길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현 정권은 자기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보수와 좌파를 포함해 모든 국민에게 잘 보이게 하려고 하다보니 결국 광우병 파동에서처럼 당한 경우라 할 수 있지요. 기업은 전 국민이 고객이지만 국가경영에 있어서는 피·아 식별을 분명히 하면서 해야합니다. 촛불은 근본적으로 꺼지지 않습니다. 이 정부에 공권력 복원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10년 좌파 정권에서는 이런 식의 경우가 없었지만 정권이 바뀌어져서 그런 것 아닙니까? 반대해도 갈 길은 가야지요. 법치 질서 유지에서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법질서 회복을 심각하게 생각해야합니다.
◆ 끝으로 정부에 대해 고언을 해주신다면?
이제는 아젠다가 안보문제로 부상되고 있습니다. 청와대의 안보조정 시스템을 강화하고 안보전문가를 측근에 두어야합니다. 앞으로 4년 동안 하려면 인재풀을 만들어서 사람 보는 안목을 키워합니다. 건설현장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시키고 중간중간에 체크를 해야 합니다.
대운하가 중단된 시점에서 새만금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언론기자와 함께 새만금사업 현장으로 가서 이의 추진을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려 하지 말고 템포를 조절하되 안보는 전문가로 하여금 충분히 조언을 받아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교수님, 장시간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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