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광복군 창군 68주년 기념식 거행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진주 우리나라 지옥이 되어 모두 도탄에서 헤매고 있다 동포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고향에 어서 가자 조국에 우리는 한국 광복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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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치하에서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만주 벌판을 무대로 광복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광복군들이 조국을 그리며 불렀던 '압록강 행진곡'이 기념식장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한국 광복군 창군 68주년을 축하하고 이 날을 기리는 자리에서였다.
이제는 흰머리에 허리도 구부정해지고 목소리마저도 어눌하게 변모되었지만 눈빛만은 예전 그대로인 듯한 68년 전 그 날의 용사들은 이 노래가 울려 퍼지자 감회가 새로워지는 것처럼 지긋이 눈을 감거나 조용히 손가락 장단을 맞추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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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대로 창설된 한국광복군의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한국광복군 창군 제68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가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김유길) 주관으로 열렸다.
김양 국가보훈처장을 비롯, 김영일 광복회장, 박세환 재향군인회 부회장, 김신 백범기념사업회장과 광복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군 기념식과 광복군 창군활동과 관련한 학술회의가 병행해서 개최되었다.
김유길 광복군동지회장은 개회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북가 1941년 12월10일 당당하게 대일선전포고를 국제적으로 천명할 수 있었던 것은 1940년에 한국광복군이 창립되었기 때문"이라며 "한국광복군은 인도주재 영국군 요청에 의해 10여명을 인지 작전에 파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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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1945년부터는 최종적으로 일본 본토상륙작전 제 1선에서 활약하고자 한미합동작전체제를 구축해 한미 합동 OSS 작전으로 특수임무를 수행할 체제를 갖추었으나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저도 당시 작전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때의 허탈한 심정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회고했다.
김 양 보훈처장은 축사에서 "광복군은 의병과 대한제국 군대의 정신을 계승하고 독립군의 맥을 이어온 민족의 군대로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가 됐다"며 "금년 건군 60주년 행사 분열식에 광복군 대대가 선두로 정해졌으며 국민들에게 그 역사적 배경을 알리는 것으로 준비되고 있다"고 국군의 날 행사에 광복군이 선두에 서게 됨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의 번영된 조국이 있기까지는 광복군의 헌신이 있었다"며 "선열들이 광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차이를 극복하고 힘을 합쳤듯이, 지금 우리에게는 선진일류 국가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통합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일 광복회장은 기념사에서 "매년 이맘때 열리는 행사이지만 남다른 감회를 느끼곤 한다"면서 "일제와의 독립투쟁 전선에서 피흘리며 싸웠던 '마지막 남은 독립군'인 우리 광복군 동지들이 해가 갈수록 하나둘씩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때문"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매년 행사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지나온 역사적 사건들을 되새기는 이유는, 우리 자신들이 직접 체험한 역사이기에 그것을 잊지 않겠다는 뜻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역사가 가지는 현재적 의미가 더없이 크고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기 때문이다"고 의미를 되새겼다.
박세직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은 박세환 육군부회장이 대독한 축사에서 광복군이 창군 후 활동사항을 열거한 후 "한국광복군은 명실공히 국군의 모태인 동시에 국군창설의 주역으로서 오늘날 우리나라가 막강한 국방력을 갖게 한 토대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한국광복군 창설 68주년 행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되새기는 엄숙한 추모의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후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고사성어를 인용, "북한의 대남적화 책동에 대비한 튼튼한 안보만이 나라의 평화를 지키고 국민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념식에 이어 '한국광복군 창군과 활동의 현대적 의미'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는 유병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희곤 안동대 교수,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각각 주제 발표를 하고 박 환 수원대 교수, 한시준 단국대 교수, 황민호 숭실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중국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成立典禮式)을 거행하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대일항전을 전개한다는 목적으로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4개 지대로 편성되어 영국군과 연합하여 1944년 3월 임팔(Imphal) 전투를 비롯하여 1945년 7월까지 팀플 티팀 비센플 등 미얀마 각지에서 대일작전을 수행하였다.
또한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공동으로 특수공작 훈련을 받고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하였으나 일제의 항복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일제 항복 후 광복군 정진대(挺進隊)를 편성, OSS 미군 18명과 함께 C47 비행기로 8월 18일 국내에 진입하였으나, 일본군의 저향으로 중국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임시정부와 함께 한인교포 등을 보호하여 국내에 송환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46년 5월 16일 한국광복군 복원선언(復員宣言)으로 해산되었으나, 국방경비대 요원으로 참여하여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하였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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