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 & 대북관계, 지금이 중요"
최근 민간단체들에 의해 북한으로 보내지고 있는 삐라를 놓고 진보, 보수 단체간 충돌과 정부여당의 자제요청, 이어 친북 단체들까지 나서 보수단체의 삐라살포에 맞대응 하겠다는 발표 등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탈북자 및 실제 북한으로 삐라를 보내고 있는 단체 대표들이 모여 대북한 삐라와 관련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8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배제학당 역사박물관에서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이사장 유세희) 주최로 열린 '북한으로의 정보자유 촉진방안'을 주제로 한 북한개방전략포럼에서는 삐라살포로 인한 북한당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삐라는 계속 보내야 하며, 정부가 구태여 자제요청 운운하며 나설 필요도 없고 북한의 압박에도 대범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
대북한 전단지(삐라)는 단순히 북한을 개방시킨다는 차원이나 북한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측면보다 개개인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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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포럼에서는 '대북 풍선 삐라 문제'(이민복 기독북한인연합 대표), '대북 전단지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강철환 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북한 정보자유 촉진방안'(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에 대한 주제발표와 이어 김태진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 이광백 자유조선방송 공동대표, 김비태 프랑스 국경없는 기자단 서울 특파원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탈북자 출신인 이민복 대표는 발제에서 자신이 북한에서 경험한 인쇄물에 대한 지식인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는 "북한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할 당시 각지를 다니다 함경도의 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교사로 있는 처녀를 한 사람 소개를 받았고, 여교사를 통해 수용소 내부사정을 알게 되었는데 수용소에는 대남 사업을 담당하던 비서도, 부주석을 지낸 인물도 수용돼 있었다"며 "수용소에서는 규정을 어기는 것은 곧 죽고 사는 문제이며, 특히 담배를 피우면 맞아죽는다. 그런데도 이들은 담배꽁초를 줍고 그것을 본다. 그 이유는 실제로 담배를 피우지 못하고 담배로 말려진 것처럼 보이는 노동신문으로 된 종이를 주워 그 몇 조각 되지 않는 노동신문에서 세상을 알기 위해 꽁초를 줍는다. 이것이 수용소 인들의 갈급한 심정이다. 일반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식인으로서 책을 보지 못하면 죽은거나 같다"며 정치범 수용소에서 마저 하나의 사실을 알기 위해 이들이 얼마나 정보에 민감해 하고 있는가를 증언했다.
이 대표는 북한으로 보내지는 삐라 한 장을 들고 설명하면서 "최대한 공란을 줄이고 전 지면을 활용하기 위해 '습니다'는 말도 다 쓰기 아까워 최대한 간단하게 줄이고 더 많은 정보를 넣는다"면서, 이번에는 빈 라면 봉지를 꺼내들고 "라면봉지 하나가 북한주민에게는 최대한의 정보자료가 되고, 이것을 보고 (북한주민들은)남조선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실증적 자료가 된다"며 "이것을 보내고 싶지만 또 한편에서 거지 취급하느냐고 할까봐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길거리를 가다 라면봉지가 있으면 거지처럼 빈 라면봉지를 줍는다"고 말하고 자신이 한국에 들어와 또 놀란 것 중의 하나가 '이쑤시개'였다고 밝혔다.
즉, 이쑤시개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북에서는 나뭇가지 뜯어서 사용하면 되는 것인데 한국에서 만든 이쑤시개는 깨끗하게 깎고 다듬어서 하나하나를 잘 포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남조선의 문화와 생활수준을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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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1990년 철원군 대전리에서 남조선 삐라를 처음 봤다며 "난생처음 홀딱 벗은 처녀도 그때 봤다. 나체사진은 끌리지만 대신 사상적 결과는 오히려 '부르죠아 썩어빠진 문화'를 확신시켜 주는 꼴로 대부분 북한정서에 맞지 않아 별로 였다"고 당시 우리 국방부가 북한에 보낸 전단 형식이 큰 호응을 얻지 못했음을 일깨웠다.
이 대표는 대북 풍선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0월부터로 당시의 풍선기술은 어린이용 장난감 고무풍선에 삐라 한 장씩을 달아 보내는 것으로 100개 이상 고무풍선을 만들면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피가 날 정도였으며, 2005년까지 아무리 날려도 북에서는 반응이 없었으며, 이 때 대형풍선을 개발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개발을 거듭해 2005년 7월에 화학식 대형풍선을 개발하기에 이르러 지금은 대형 풍선 1개에 12만원, 6만장 정도의 삐라를 보낼 숭 있다고 진행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북한당국의 최선 최후의 전략은 폐쇄며, 이 폐쇄를 값이 싸면서도 평화롭고 자유롭게 뚫을 수 있는 것이 풍선 삐라"라며 "개방하면 죽기에 필사적인데 이미 풍선으로 뚫고 있다"며 북한은 지난 2005년 8월부터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22차례에 걸쳐 항의를 해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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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탈북자 출신인 강철환(조선일보 기자)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은 북한이 삐라에 대해 민감한 이유를 "김정일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문구가 적힌 것"과 "황해도에 밀집한 정예 60만 군 집단에 전단지가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 군인들은 일반 주민들과 달리 전단지 내용을 배짱 있게 볼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소위 김정일을 결사 옹위하는 정예군단 군인들이 김정일의 추잡한 사생활을 볼 경우 받을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이 지역 군인들이 전단지에 의해 사상이 변할 경우 북한체제는 심각한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 부위원장은 요덕 수용소 생활 당시를 상기하면서 "제가 요덕 수용소에 있을 때 삐라가 날아오는데 천연색으로 된 칼라고 비에 젖지도, 찢어지지도 않는다. 남한 대통령 사진이 있어서 위대한 수령과 같은 사람인데 밟아도 되나하는 생각을 가졌다"며 "그런데 또 보니 런닝, 팬티에 스타킹, 라면들이 들어있고 해서 정치범들이 주워서 생활필수품으로 쓰기 시작했으며, 어떤 경우는 집단대회장에 삐라가 떨어져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 폐쇄사회에서는 엄청난 파급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주민은 정보에 민감하고 욕구가 강해서 (삐라 살포는) 효과적이고 할만한 사업이다. 지난 10년 동안 대북 정책으로 남북평화와 교류를 했는데 '평화'는 북한에서 우리를 겨누는 총구가 걸러진 다음이라야 평화다. 삐라 한 장으로 북한 인민군의 총구가 서울에서 평양으로 향할 수 있다. 삐라는 평화를 지키고 우리편으로 만든다. 이것이 진정한 평화다"고 강조했다.
그는 계속해서 "정부가 나서서 자제하라, 마라 할 말이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된다. 노무현 정권 내내 삐라를 보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북한이 발악을 하는 것은 그만큼 북 내부가 긴박한 상황이기에 그렇다"며 "정부와 국민이 볼 때, 북한정권은 시한부 정권이고 주민은 영원히 살아야할 동포다. 동포에 신경 써야지 정권에 신경 쓰면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된다. 대범할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 공산당 정권은 한번 양보하면 끝이 없다. 지금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토론에 나선 김태진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인 200년 북측의 요구로 대북 전단이 중단되었다"며 "좀더 효과적인 노력을 하여야할 책임있는 한국정부는 오히려 김정일 통치자와 동조해서 북한 주민들이 알수 있는 통로를 막아버렸다"고 비판했다.
이광백 자유조선방송 공동대표는 대북 전단지 운동에 대해 "북한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운동이자 동시에 북한 주민에게 독재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민주주의 사회로 가야한다는 희망과 신념을 심어주는 정치적 운동"이라고 말하고 "진실을 전달하고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전단지를 보다 많이 꾸준하게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응원을 보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 2026.10.1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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