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광주 산곡에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시/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엔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위 시는 모윤숙 시인의 시(詩)다. 나는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 이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전운이 할퀴고 가 만신창이가 된 조국의 산천을 바라보며 너무나도 참담했던 적들의 만행을 여과 없이 지켜봤던 어린 소년의 심금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슬프디 슬픈 사연이었기에 소년은 이 시를 외울 때까지 읽고 또 읽었던 것이다. 그래서 60년이 다 되는 지금에도 이 시를 암송한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수많은 영령들이 하나뿐인 몸을 바쳐 조국을 지켜냈다.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성공하기를 바라기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이 옳다”고 비꼰 외국의 언론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깨어나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민주화와 자유시장경제를 구축,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세계인의 ‘선망의 적’이 됐고, 21세기를 창조하고 선도하는 선진국 대열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된 기념식을 보며 멀리에서나마 묵념하면서 오늘의 현실을 반추해 보았다. 과연 오늘의 영광이 그 누구의 희생과 덕택인가를! 오늘의 위정자들, 지식인들, 그리고 기업인들, 과연 그들은 그 누구의 희생을 딛고 오늘날을 구축했는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이념의 대결, 빈부의 격차, 노사 간의 대결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 편한 날이 없이 하루 해가 뜨고 진다. 법과 질서를 무시한 채 난무하는 폭력과 난동 그리고 때를 가리지 않고 남쪽을 협박·공갈하는 북한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실로 참담함을 금할 길 없다. 누구를 위한 폭력이며 시위란 말인가.
소련, 중국과 밀약해 남한을 공산화하고 그들의 야욕을 채우고자 천인공노할 민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고귀한 생명과 재산을 잿더미로 만든 장본인이 그 누구란 말인가?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부화뇌동하는 친북·종북자들을 지하에서 바라보면서 스물다섯 살 꽃다운 나이에 채 피어 보지도 못하고 산화한 영령의 피맺힌 하소연을 못 들었단 말인가.
왜 그는 하나뿐인 고귀한 생명을 누구를 위해 초개같이 바쳤단 말인가? 그는 절규한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라고.이 땅에 사는 오늘의 우리들은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순국열사와 호국영령들에게 사죄하고 또 사죄해야 한다.(http://kookbang.dema.mil.kr/)
박광서(순천향대 교수 한국경영사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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