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평화공세의 本質 직시해야
북한이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정권실세로 구성된 6명의 조문단을 서울로 보내, 남북관계에 급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북한은 우리 정부의 공식조직과 라인을 통하지 않고, 私조직이라 할 ‘김대중평화센터’를 연락처로 삼아 入京했다. 지난 주 玄정은 현대회장과 김정일이 단독 면담을 갖고 5개 항의 합의문을 발표하며 한국정부로 하여금 이를 추인하도록 압박한 행태와 같은 방식이다.
이른 바 ‘통민봉관(通民封官)’ 전술인데, 北의 이러한 대남 접촉방식은 첫째 한국정부 당국을 우회하여 北에 우호적(친북적)인 민간세력을 직접 접촉해 정부당국을 무력화․압박하면서, 동시에 ‘조문’ 자체를 한국민을 상대로 한 대남 프로파간다의 유효한 무대 및 수단으로 삼으려는 목적일 것이다.
다음, 북한은 현재 UN과 미국의 高강도 북핵 제재압박에 직면해 있는 바,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구실에 옥죄어 있는 남한을 상대로 전격적인 평화공세를 감행함으로써, 유효적절하게 제재(制裁)의 예봉(銳鋒)을 피하고, 북핵 제재 국제공조를 허물고자 한다.
특히 김정일이 보낸 조화(造花)와 메시지가 공중파를 통해 국민들의 안방에 직접 전달됨으로써, 북핵 문제를 비롯한 대북 경계심과 안보의식을 현격히 저하시키며 평화공세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北 조문단은 김대중(DJ) 전 대통령 조문과정에서 “다 만나겠다”고 일갈(一喝)하며 유화제스처를 숨기지 않았고, “생전에 민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다”며 DJ를 치켜 세웠다.
이에 따라 DJ의 他界가 불러 온 국론분열과 북한의 평화공세는 향후 한국의 대북인식 및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또한 한국 내 친북좌익 세력들은 DJ의 장례를 계기로 “남북화해” 슬로건을 내세워 ‘햇볕정책’을 다시 미화하고, 북핵 문제의 본질과 미국의 대북정책을 왜곡시키려는 선전공세를 펼치고 있다. 예컨대 북핵 위기를 미국의 대응 잘못 때문인 양 언급한 DJ의 주장을 다시 재생시키는 것 등이다.
한편 정부는 21일에도 북한에 억류된 4명의 연안호 선원의 석방을 촉구했으나, 북한은 “조사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지난 번 玄정은의 방북과 때맞춰 柳성진 씨만을 석방한 후, 조문단이 서울에 와 있는 상황에서 무언가 대가성(代價性)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단계적으로 이득을 취해가는 ‘살라미 전술’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이와 관련, 8월 20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즈(Los Angeles Times)紙는 Donald Kirk의 “햇볕정책의 쇠락(The sunset of South Korea's ‘sunshine policy’)”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 DJ의 햇볕정책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강력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DJ의 타계를 계기로 ‘햇볕정책’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위해 칼럼을 요약 번역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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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은 몰락하고 있다. 두 지도자(김대중과 노무현)는 북한으로 달려갔으나, 실망과 기만 외에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비록 햇볕정책이 남북대결의 어두운 구름 속에서의 작은 깜빡임이었다 해도, 결국 실패할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던 잘못된 노력에 불과했다. 남북정상회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희망은 무참히 깨어졌고, 화해를 위한 모든 노력 및 정상회담의 약속들은 의미를 모두 상실했다.
수십만 명의 이산가족 중 오직 16,000명이 상봉한데 불과했고, 우편이나 전화 접촉은 상상도 못했다. 북한을 방문할 경우에도, 북한의 일방적인 선택과 결정에 의해 이뤄졌고 엄격하게 통제되고 감시를 받았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평양당국의 기분에 따라 열렸다 닫혔다 하곤 했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핵․미사일 프로그램 폐기와 재래식 군비(정규군 110만) 감축을 거부했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어떻게 이처럼 ‘실망’을 가져오게 된 것일까?
김대중과 그의 후계자인 노무현 집권기간 10년 동안 남한은 매년 수십만t의 식량과 비료 를 북한에 보냈다. 김대중과 노무현 모두 북한의 선의만을 믿고, 실제적인 반대급부를 북한에게 요구한 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 사실을 외면했다. 이는 1994년 제네바핵합의에 대한 북한측의 뻔뻔한 위반이었다.
DJ는 2002년 10월 북한이 우라늄농축 핵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한 후에도, (화해협력의) 명분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DJ는 조지 부시를 설득하려 시도했다. 부시가 북한에게 요구한 핵프로그램의 확고한 폐기로 대변되는 ‘강경정책’을 포기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햇볕정책의 환상은 제네바핵합의의 폐기로 끝나지 않았다. 나중에 DJ가 2000년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5억불의 현금을 북한에 보낸 사실이 밝혀졌다. 그 돈은 평양 당국이 군대를 증강하고 핵개발을 진전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분석을 낳았다.
햇볕정책은 노무현 정부에 승계되었고, 한국민들은 끊임없는 남한의 양보를 요구한 값비싼 유화정책에 피로해졌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대북정책이 북한에 대해 양보 이상의 무언가 다른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을 한국민들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햇볕정책은 몰락의 길을 걸었고,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 또는 “미국의 심복” 등으로 매도하기 시작했다.
햇볕정책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북한은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학대하는 독재체제로서, 기회만 오면 이를 한반도 전체에 확대하려 한다. 이런 북한에 대한 타당성있고(valid) 살아있는(viable) 유일한 대응책은 UN제재와 보다 확고하고 강력한 정책뿐이다.』
PS: 도널그 커크(Donald Kirk)는 오랫동안 한국 특파원이었고, “한국을 배반한 김대중과 햇볕정책”이란 저서를 곧 출판할 예정이다. DJ와 여러 번 만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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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무현 정부가 끝난 후 가까스로 제 자리를 자리잡아 가던 국민들의 안보의식과 대북 가치관이 DJ의 타계를 계기로 또 다시 혼란과 왜곡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특히 공중파에 의한 과장과 사실 왜곡이 가중되면서, 친북좌익 세력의 재집결․재부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난세(亂世)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대한민국 세력은 다시 한 번 중심을 잡고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굳게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했다.(konas)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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