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수복 기념 및 참전유공자 위로연
59주년을 맞는 9·28서울 수복 기념일을 맞아 6·25전쟁에 참전해 희생한 참전용사를 기리 고 생존한 참전유공자의 은혜에 감사를 표하는 위로행사가 9·28 제59주년을 맞는 28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크리스탈볼룸에서 주한 온두라스 대사를 비롯한 6·25한국전쟁 참전국 외교사절단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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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재향군인회와 국가보훈처, 6·25참전유공자회가 후원하고 나라사랑국민운동본부(총본부장 박종철 목사)가 주최한 '9·28서울수복 기념 6·25참전 유공자분들을 위한 위로잔치'에는 500여 명이 넘는 참전유공자와 관계자들이 참석해 적치 90일의 공포에서 자유를 회복한 서울수복 그 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됐다.
이 날 서울 수복 기념 위로연에서는 6·25참전유공자들의 거룩한 희생과 나라사랑정신을 후손에게도 지속적으로 알려주고, 아무도 알지 못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유엔 참전국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함은 물론 장기적으로 이들 국가 참전자와 그 후손에게도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국가를 위해 헌신·희생한 국가유공자들의 애국심을 길이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6월4일을 '국가유공자의 날'로 제정해야 한다며 나라사랑국민운동본부가 추진하고 있는 역점 사업들에 대해서도 소개가 이어졌다.
이 본부의 기획총재이기도 한 오원호 목사는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간 사람들'을 주제로 한 설교에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황당한 세력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이 시대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는 자유대한민국의 오늘은 유엔과 참전용사들이 흘린 피의 덕"이라며 이 날의 의미를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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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목사는 "6·25전쟁이 남긴 가장 큰 민족적 교훈이 있다면,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며 "그런데 이 위대한 교훈을 전파하는 곳은 뜻밖에도 이 전쟁이 일어났던 한반도가 아니라, 미합중국 수도인 워싱턴 DC에 위치한 한국전 기념공원이라는 아이러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 목사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동으로는 일본열도에서 서로는 우랄산맥에 이르는 아시아 50개국 40억 인구 중에서 근대 시민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 뿐"이라며 "의회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를 축으로 이처럼 6·25전쟁 이후 60여년 만에 이룬 대한민국의 근대화 60년은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의 공화정 혁명, 미국의 대중사회 혁명에 비견할 20세기 문명사적 성취를 이룬 자랑스런 대한민국"이라며 자긍심을 고취했다.
이어진 특별기도에서는 6·25참전유공자 및 참전국과 세계선교와 평화를 위해, 그리고 국가와 민족, 민족복음화와 남북통일을 위한 특별기도가 이어졌다.
6·25전쟁 당시 특수부대에 자진입대해 인천 상륙작전 당시에는 낙하산으로 인천시청에 낙하해 노량진 전투에 참가해 서울수복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장광영(나라사랑국민운동본부 고문)목사는 자신이 겪은 6·25실상을 증언하기도 했다.
6·25전쟁이 발발한 당시 중학교4학년(지금의 고1)이었다는 장 목사는 "전쟁이 일어난 소식을 듣고 학교에 가니 교문에 '임시휴교'팻말이 붙어 교문을 넘어 들어가니 당시 영어를 담당하던 담임선생님이 배에 죽창이 세 개가 찔린 채 죽어있고, 옆에서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다. 그 학생들은 남로당원으로 전쟁이 나자 '미제앞잡이를 먼저 죽여야한다'며 학생들이 선생님을 죽였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장 목사는 또 이승만 대통령과 부산시내 목회자들이 초량교회에서 만나 나라를 위한 구국기도회 내용과 관련해 말을 한데 이어 숨겨진 이야기라며 "당시 트루먼 미 대통령이 시애틀에 있는 휴가지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백악관으로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했다는 보고를 받고는 '전쟁이 났으면 났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처음에는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가 이 사실을 전해들은 빌리 그레함 목사가 한국의 예루살렘이라는 평양에서는 50만명의 기독교인이 학살되었는데 남한이 공산화되면 100만명이 희생될 수 있기에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해 한국전 참전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주한 외교사절을 대표해서 축사에 나선 온두라스 대사는 현재 자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태를 염두에 둔 듯 온두라스의 전쟁은 피흘리는 전쟁이 아닌 이념전쟁이라고 말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인한 9·28서울 수복을 위한 모임은 매우 뜻깊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유한 오늘의 이 자리 또한 유엔군과 참전유공자의 큰 은덕이자 하나님의 은총"이라며 "60여년 전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킨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축하를 보낸다"며 우리말로 "행복하세요"라고 인사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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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라사랑국민운동본부는 이번으로 2회째 서울수복기념 및 참전유공자 위로연을 열고있는데, 이 운동본부는 일제식민지하에서 목숨을 받쳐 항쟁했던 독립유공자, 민족상잔의 처참했던 6·25참전유공자, 인류평화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머나먼 이국 땅 월남전에 참전했던 유공자 등 총 60만여명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고귀한 뜻을 계승 전파하고 이를 국민적 에너지로 승화 발전시킬 목적으로 설립운영 되는 민간단체다.
이 단체는 진행 사업으로 국가유공자의 날 제정, 영정제작 및 배부 사업, 국가장례집행 사업, 유엔 참전국과의 국제 우호협력 증진사업 등을 사업계획에 반영하고 있다.
<9·28서울 수복 탈환 작전>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에 의해 수도 서울은 개전 3일만에 북한 공산주의자의 수중에 떨어지고 3개월만에 낙동강으로 후퇴해야 했던 한국군과 유엔군이 9월15일 맥아더 장군에 의한 인천상륙작전으로 적의 병참선을 중도에 차단,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9월25일까지 서울을 점령할 계획으로 있던 아군은 연희고지를 점령한데 이어 서울 시가지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박정모 소위가 이끄는 한국 해병대 제2대대 6중대 1소대는 서울 시청을 점령하고 시 청사 안에 걸려 있던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를 끌어내리고 시청 옥상에 걸린 인공기를 불태우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이 때가 1950년 6월27일 새벽 6시10분이다. 이어 다음날 한미 해병대는 수도 서울을 완전 탈환하게 되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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