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2009년의 한국(3): 한국사회
대한민국의 2009년은 어떤 해였다고 역사에 기록될 것인가. 물론 해(年)단위로 재단해서 시대의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연말이 다가오면 그 해의 시대적 의미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2009년 올해도 예외일 수가 없다. 그러나 이 글은 언론사들이 해마다 연말이면 정리해서 보도하기 마련인 한해의 사건·사고나 이슈별로 2009년을 되돌아보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관적 시각의 포괄적 '해석'일 분임을 미리 밝힌다.
2009 대한민국의 키워드는 죽음과 폭력
지금 쉽게 떠오르는 지난 1년간의 정치 사회 현상으로 판단하면 대한민국의 2009년을 해석하기 위한 키워드는 '죽음과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하게도 올해는 국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온 죽음이 잇달았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이 그것이다.(이하 존칭 생략)
상투적 표현을 빌리면 한국 현대사에, 여러 측면에서 큰 족적을 남긴 '거목'들이 한 해 동안에 쓰러졌다는 뜻이 된다. 죽음의 형태로 구분하면 두 사람은 자연사이고 한 사람은 자살이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에 대한 조문과 장의(葬儀)가 실로 범국민적이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죽음은 누구의 죽음이건 슬픈 법이다. 따라서 죽음 앞에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다. 하물며 국민의 손으로 뽑은 전직 대통령과 존경받은 종교 지도자의 죽음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바로 그런 분들의 죽음이기 때문에 그 애도의 방식에 절대적인 전제 요건은 '경건함'이다.
따라서 먼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은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보인 조문의 행태에 경건함이 있었던가 라는 점이다. 민중의 반응과 이 정부의 의전적 예우를 통해 내가 확인한 것은 아직도 이 사회에 미만한 위선 혹은 허위의식 그리고 무분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발길로 채이고 욕먹어가며 전직 극진히 대우한 현직
두 전직 대통령의 경우 장의기간동안 조문객이 수십만. 심지어 수백만이라고 언론들은 마구잡이식 계산으로 보도했다. 언론은, 매체의 구별 없이 연일 상가(喪家)의 하루하루를 세세히 알리고 고인의 생애와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지면과 화면을 채웠다. 정체가 모호한 이런 저런 세력들은 서울의 도심 등 전국 곳곳에 저들 마음대로 분향소를 차리고 민중들의 애도를 유도했다.
법규를 무시한 그 거리의 분향소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주의 문구까지 쓰여 있기도 했다. 주검이 안치된 상가 앞에서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짓이겨 졌을 뿐 아니라 장례식장에 참석한 그 현직 대통령은 고인의 정치적 하수인격인 현직 국회의원으로부터 폭언을 들어야 했다.
불법과 폭력이 자행되는 상황에서도 두 죽음에 대한 이 정부의 예우는 실로 극진했다. 천수를 누리고 간 전직 대통령은 유명을 달리하기 며칠 전까지 국민을 향해 사실상의 反 정부 저항을 부추기는데도 이 정부로부터 국장(國葬)이라는 최고의 예우를 받고 동작동 현충원의 '명당'에 안장됐다.
전직 대통령에게 국자응로 예우한 전례가 없고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는 적당한 유택(幽宅)터를 만들 여유 공간이 마땅치 않은 데도 유족은 그곳만을 완강하게 요구했고 결국 이 정부는 손을 들고 말았다. 그에 앞서 이 정부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최후를 선택한 전직 대통령을 국민장으로 모셨다.
가족장을 하겠다는 유족의 뜻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 망자들은 국민과 정부로부터 그처럼 극진한 사후 예우를 받아야 할 만큼 빛나는 업적을 남겼는가. 우선 정치가로서 김대중은 그 정치적 생애의 대부분을 어떻게 보냈는가를 이제 냉엄하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2009년을 정리하는 의미로서도 이는 긴요한 일이다. 유신반대투쟁으로 15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1년반의 세월을 감옥 경험을 한 어느 지식인의 '김대중 해석'을 최근에 전해 들었다. 김대중이 훈장처럼 달고 산 민주화투쟁이라는 것은 사실상 집권을 위한 정치적 방책이었을 뿐이라는 해석이었다.
사후 국장 예우 받은 김대중은 생전에 뭘했나
"김대중은 광주사태와 관련해서 몇 개월 옥살이 한 것 빼고는 무슨 민주화 투쟁을 했단 말인가"라고 그 분은 따져 물었다. 김대중이 내세우는 민주화 투쟁의 진상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정희로 표기)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가 추진한 산업화의 종자돈이 한일회담과 월남 파병 그리고 광부 간호사의 서독 파견 등으로 마련됐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한국 현대사의 진실이다.
그러나 김대중은 反 독재 민주화 명목으로 해외에서 사실상의 反 대한민국 운동을 벌였다. 집권 후 그가 밀어 붙인 이른바 햇볕정책은 북한 김정일 정권의 핵무장을 지원한 결과가 돼싸. 그리하여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겨준 이른바 6·15남북정상회담 선언문은 이제 이적(利敵)의 문서나 다름없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순국선열들의 안식처인 동작동 현충원의 건국 대통려와 산업화 대통령 묘역 사이에 묻히는 '영예'까지를 누리게 됐다. 김대중에 대한 국장예우와 동작동 안장 결정과정을 언론으로 접하면서 이 정부와 우리사회의 허위의식 혹은 위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생각나는 것이 드골 대통령의 서거다. 그는 유언에서 가족장으로 할 것과 함께 대통령 등 정부 인사는 참례하지 말도록 했고 2차대전 때 함께 싸웠던 전우들의 참례만 바랐다. 영결식은 노트르담 성당에서 조촐하고 경건하게 치러졌고 그는 유언대로 고향 땅에 안장 됐다.
먼저 이승을 떠난 장애인 딸의 무덤 곁이었다. 그의 묘비명은 참으로 간단하다. "Charles de Gaulle, 1890-1970". 그의 사후 유족들은 드골이 말년을 보낸 집을 팔았다. 드골은 생전에 스스로 국가연금을 사양했고 그래서 집 관리비 충당이 안됐기 때문이다. 드골은 대통령 직을 떠난 후 죽는 날까지 그렇게 고향에서 한명의 평범한 자연인으로 살다가 자연인으로 땅에 묻혔다. 그것이야말로 아마도 그의 위대성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근거인지도 모를 일이다.
대중의 감상주의에 영합한 언론, 언론에 편승한 대중
김대중 사거(死去)보다 서너 달 앞서 자살한 전직 대통령 노무현은 우리 현대사에 어떤 인물로 자리매김 할 것인가.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를 원한의 정치인이었다고 본다.
그는 집권기간 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둘로 가르는데 '매진'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사회를 '기득권 세력'과 反 기득권 세력의 대결구도로 파악했다. 그의 모든 정책들은 그런 근본인식에서 나왔다. 결국 그는 기득권세력을 꾸준히 타파했고 '우리끼리'의 새 기득권을 구축하는데 대체로 성공했다. 그런 새 사회구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그가 제도와 법으로써 도처에 박아 놓은 '대못'은 좀처럼 빼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그의 사후 반년이 지난 지금에도 확인되고 있다.
노무현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의 핵심은 그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처음부터 확고한 신념으로 부인·부정했다는 점이다. 노무현 자신은 물론 그의 주변에 포진하고 있던 권력 핵심들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매도했다.
건국사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이는 두드러졌다. 해방이후 건국과정에서부터 친미 우파세력이 득세하면서 민족자주 세력이 좌절했고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분단의 영구화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노무현 집권 5년 동안 집요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드러낸 반미-친북은 바로 '자주', '평화공존'이라는 명분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나왔다. 그런 노무현의 자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생명은 무엇보다도 '관계'로써 생성되어 존재하다가 소멸한다. 사람의 실존은 부모와 형제와 자식 그리고 수많은 이웃 등과 관계 지워진 상태에서 그 의미가 확보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 생명의 존재의미를 이와 같은 관계 속에 파악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살아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볼 때 한 시절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는 것은 나라와 국민에게 무한 책임의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권좌를 떠났다고 해도, 말하자면 그 관계의 폭이 국민 모두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거꾸로 보면 자기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결정권이 비례해서 끝없이 축소되는 입장인 셈이다. 더구나 노무현은 피의자 신분이었고 자살을 죄악으로 보는 카톨릭의 신자이기도 했다. 그는 나라의 품격을 위해서도 자기 생명을 마음대로 '처리'할 권리가 애초에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사람의 죽음에 대한,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조문 군중의 모습에서 확연히 드러난 것은, 우리사회의 집단적 부분별이다. 물론 같은 죽음이지만 김수환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 추도는 달리 해석돼야 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추도 행렬은 처음부터 끝까지 추모객마다의 진정성이 묻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만큼 경건함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엄연히 보면 한 종파의 지도자였다. 그런데 적어도 언론 보도에서 드러나는 애도의 열기로 파악하면 대한민국은 카톨릭 국가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것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 국민성 깊숙이 드리운 무의식적 감상주의 그리고 언론의 그에 대한 영합보도다.
언론의 보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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