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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은 '국가적 삶의 징표'를 웅변하고 있다

조국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은 얼마나 명예로운가!
Written by. 박효종   입력 : 2010-04-22 오후 1: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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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이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진실도 점차 드러나고 있다. 이 ‘천안함의 진실’에는 유족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 잃어버릴 수 없는 아들, 잃어서는 안 되는 남편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은 이미 천안함의 한 부분이 되었다. 또 천안함을 파괴했던 세력의 가증스러운 음모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음모를 어디까지 정확하게 밝힐 수 있을지는 우리 군의 능력일 터이다. 그러나 천안함의 진실에는 ‘국가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국가가 어떻게 존속되고 있는가에 관한 문제가 바로 이 ‘국가 진실’의 핵심이 아닌가.

국가는 사람들이 월드컵 축구나 겨울올림픽에서 신나게 응원하는 열기에서 일부 느낄 수 있다고 하나, 그것이 실체의 전부는 아니다. 외국에 나가면 공항에서부터 눈에 확 들어오는 한국 기업들의 대형 광고판에서 대한민국이 읽힐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국가의 온전한 모습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피’와 ‘눈물’ 및 ‘땀’으로 구현되는 희생과 헌신, 책임과 같은 가치들을 생각할 때 비로소 국가의 실체와 마주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며 느꼈던 환희만이 아니라 아침 햇살의 이슬처럼 하루아침에 소리 없이 스러져간 아들이나 남편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이른바 ‘단장(斷腸)의 슬픔’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국가적 삶의 징표임을 천안함은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국가가 희생과 헌신으로 이루어져 있는 실체라는 생각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이어져올 정도로 오래된 전통이다. 한 공동체에서 ‘시민’으로 산다는 것, 즉 ‘시민다움’의 절정은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고 그 공동체의 존속과 안녕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에서 나타났다. ‘공동체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가운데 가장 위대한 가치로 칭송받았고, 자신들의 공동체를 위해 죽음으로써 이 사랑을 보여준 사람들은 다른 모든 잘못을 용서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이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경외서의 속담이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은 전장으로 떠나는 자기 아들들에게 말했다. “방패를 가지고 돌아오든지, 아니면 방패 위에 누워서 돌아오라.” 이것은 전쟁터에 나가면 승리해 돌아오든지, 아니면 목숨을 바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국가의 진실’을 입증하라는 지상명령과 같은 것이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인들과 싸우다 죽은 아테네의 전몰자를 기리는 페리클레스의 추도사에서도 이 점은 뚜렷하다. 아테네를 위해 죽은 전사는 아테네를 위한 최고의 사랑, 즉 ‘필로폴리스(philopolis)’를 실천한 용사로 추모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와 동일한 정서가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이 자리에서 분투한 용사들은 이 땅을 신성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되풀이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천안함의 용사들은 자신들의 죽음으로 우리 바다와 우리나라를 거룩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추모하는 자리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을 신성하게 만드는 자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가 신성한 존재로 만들어지는 자리인 것이다.

일찍이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읊조렸다.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얼마나 달콤하고 명예로운 일인가(dulce et decorum est mori pro patria)!”라고. 분명 여기서 ‘달콤하다’는 표현은 과도한 표현이리라. 나라를 위해서 죽는다고 해도 죽는 것은 참담한 고통인데, 어떻게 ‘달콤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달콤하다’는 표현은 ‘용기 있다’거나 ‘영웅답다’라는 말로 바꾸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천안함 장병들의 죽음과 같은 영웅적이고 명예스러운 죽음이야말로 우리 국가가 지탱되고 있는 비결이며 원천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그들의 죽음이 ‘국가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들을 바다도 아니고 현충원도 아닌, 국민들 가슴속 깊이 묻어 그들을 국민적 기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다.

한 국가가 지속가능성을 구가하려면,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갈파했던 것처럼 용기와 지혜 및 절제가 요구된다. 천안함의 장병들은 용기를 실천함으로써 ‘국가의 진실’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살아있는 우리가 지혜와 절제를 발휘함으로써 그들의 용기에 보답하고 국가가 무엇으로 지탱되는지를 보여주어야 할 차례가 아니겠는가. http://www.joins.com/

박효종(서울대 교수·윤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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