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내 아들은 나라 지키다 갔지만 대통령은 월드컵 구경갔던 나라”

제2연평해전 8주기 맞은 故 박동혁 병장 어머니의 하소연..“저희 아들, 김대중이 버린 軍人입니다”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0-06-30 오전 8:58:52
공유:
소셜댓글 : 1
facebook

  29일 오전 10시 전쟁기념관에서 거행된 ‘제 2 연평해전’ 8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故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해냈다.

 “아들의 두 다리가 잘려나가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월드컵 경기장에서 빨간 넥타이를 매고 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다 죽은 우리 아들은 바로 김대중이 버린 군인입니다.”
  
 지난 2002년 6월 29일. 온 국민이 월드컵 열기에 휩싸여 있을 때 북한의 경비정 2척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기습공격을 강행했다. 우리 군은 31분간의 사투 끝에 북한군의 총탄에 피투성이가 되고 숨통이 끊기면서도 방아쇠를 놓지 않고 NLL을 사수했다. 북측 경비정도 30여명의 사상자를 낸 채 도주했다.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을 포함한 5명이 교전 중 전사. 교전이 끝난 뒤 의무병이었던 박동혁 병장(당시 상병)은 부상을 입어 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그는 두 다리가 잘려나가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뒤 3개월 후 6번째 전사자가 됐다.

정운찬 국무총리도 기념사에서 유가족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고(故) 윤영하 소령, 한상국,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제2연평해전 전사자 6명과, 당시 생존했으나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故 박경수 상사, 제2연평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이희완 대위 등 20명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박동혁 병장 어머니는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며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다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더라... 그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이곳이 저리고 아프다”며 가슴 한쪽을 손으로 두들겼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을 이 나라의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모두 외면했다. 영결식조차 오지 않았다. 박동혁 병장 어머니는 “나라를 지키다가 죽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지켜주지 않더라...”며 당시 힘든 시간을 토로했다. 이어 “효순이 미순이 사고에 온 국민이 촛불을 들고 나왔지만 나라를 지키다 죽은 6명의 아들들에게 촛불 한번... 단 1초도 들어준 적이 없었다”며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우리 해군이 이렇게 희생을 당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북한이 쏘기 전까지 먼저 총을 쏘지 말아야 한다”는 교전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군은 그 당시 북방 한계선을 침범한 적에게 먼저 총을 쏠 수도 없었다. 故 박동혁 병장 어머니 역시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총을 먼저 쏘지 말라는 것은 패전하라는 의미가 아니냐?”며 비통해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백두산    수정

    연평해전 전에 북한의 군합이 격침되었지요. 김정일이가 억울했을 것이다. 김정일과 친한 대중이는 장기 두는 식으로 "그래 미안하다 이번에는 자네가 내 것을 하나..." 그러니 우리의 군함이 격침될 때 의도적으로 태연히 일본가서 축구 구경하고, 폐회식까지 다 보고 왔지요. 속으로는 김정일이 원을 풀어 주엇으니 .... 장기 두는 식으로... 억울한 것은 우리의 군인입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

    2010-07-02 오후 5:22:54
    찬성0반대0
1
    2026.10.10 토요일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한미연합연습 축소에 따른 우리 군의 대책
1. 들어가기2026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습적인 지..
포토뉴스 더보기
핫클릭 뉴스
깜짝뉴스 더보기
공소청·중수청 시대 오늘 개막…
이재명 정부의 검찰 개혁으로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