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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군인" - 故 장태완 장군 영전에!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0-07-29 오전 8: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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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밤 9시가 지난 시각, 1979년 신군부 세력에 의한 12.12 쿠데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이들과 맞섰던 제27, 28대 전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이던 故 장태완(예, 소장) 장군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장군을 기리던 많은 예비역 장성과 선 후배, 동료 전우 등 관계자들이 조문,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서러움과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지병으로 병원 입원 중 79세를 일기로 타계해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葬)으로 치러지는 장태완 장군의 빈소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들의 조화, 박희태 국회의장을 비롯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정세균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등 정치권과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육 해 공군 참모총장을 위시한 군과 사회단체 등 각계의 조화가 떠나가는 고인의 한 많으면서도 꼿꼿한 군인으로서의 참 기상을 절절한 빛으로 지켜보는 듯 했다.

 이 날 빈소에는 12.12쿠데타 당시 30경비단장으로 고인의 직속 부하였지만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주도한 신군부에 가담했던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이 조문해 방명록에 이름을 올렸고, 이종구 전 국방장관도 4시30분 경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또 영정을 중심으로 한 빈소 안에는 투병으로 거동이 불편해 외부 출입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유난히 눈길을 끌며, 김영삼 전 대통령 조화 옆에서 고인의 영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때는 군 선후배로 전우였던 이들이 12.12를 기점으로  연(緣)을 끊었다가 장군의 별세를 계기로 화해의 몸짓으로 비쳐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장례식장에는 방송 카메라를 포함한 많은 기자들이 몰려 취재경쟁에 나서기도 했다. 그것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한 사람을 기다리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나 조화는 보이지 않았다.

 필자가 빈소를 찾았을 때 26사단 옛 전우라는 연세 지긋한 한 분의 눈물 글썽이는 울먹임이 귓전을 스쳤다. "그 한(恨)을 어찌 다 품고 가려고 이렇게 홀연히도 가셨단 말입니까. 내 가슴이 이리도 아프고 먹먹한데...어찌..." 향불을 피우고는 영정 앞에 앉아 한없이 바라보며 한마디 한마디를 토해내는 노병(老兵)의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식당 쪽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나누던 머리가 하얗게 센 몇몇 사람들의 입에서도 장탄식이 새어 나왔다.

 또 수경사령관 시절부터 장군을 모시고 강제 예편된 뒤 사회활동에 나서 향군 최초의 자유경선으로 치러진 재향군인회장에 당선된 뒤에도 고인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한 향군 직원은 "어느 누구도 회장님의 가슴 속 응어리진 상처를 치유하기엔 턱없이 모자라고 역부족이었을 것" 이라며 "최근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찾아뵈었는데 이렇게 가실 줄은 상상도 못했다" 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생전 12.12사태가 역사적으로 재조명되면서 장군의 이름 석자 뒤에는 항상  참 군인 이라는 세 글자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그리고  군인의 표상 으로 회자되었다. 하지만 강제 예편된 뒤 장군의 삶은 드러난 것처럼 평탄스럽지가 못했다. 황망(慌忙)스레 맞아야 했던 부친의 죽음, 누구보다 총명하고 영민했던 사랑하는 외아들을 가슴 깊이 묻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이 날 장군의 사진을 품에 안고 오열을 터뜨리던 부인 이병호 씨의 한 서린 사부곡(思夫哭)에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하지만 장군이 평소 바른 길을 걷는 강직한 성품의 군인으로서, 모든 회원을 끌어안은 재향군인회장으로서, 발자취를 남긴 정치인으로서의 뚜렷한 업적과 부하 직원들에게 베푼 남자의 용기와 사랑, 조국애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고인을 아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우리 현대사 전환기의 한가운데서 역사의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군인의 길 이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었던 장군. 6 25전쟁 때는 육군소위로 참전해 최전선에서 조국수호를 위해 산야를 누볐고, 세계 평화와 자유수호를 위한 파월 한국군으로, 휴전 이후 끊임 없이 지속된 북한의 도발에는 기민한 현장 지휘관으로서 장군은 늘 필요한 그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후 1994년 4월부터 2000년 3월까지 6년 동안은 2차에 걸친 재향군인회장으로서, 향군이 안보의 제2보루임을 각인시키면서 전국 시 군 회는 물론, 읍 면 동회까지 조직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16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서는 짧은 기간에도 정치발전과 특히 참전용사 복지 증진을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

 혹자들은 말한다.  정치는 생물이다 고. 그리고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고 한다. 정치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번뜩이는 생명체처럼 움직이듯이 당대의 역사 또한 그 역사로서만 존재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어디에서라도 다시 재연되며 누군가에 의해 필연적으로 심판되며 재조명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가 보여주는 진리다.

 당시 신군부 측에 대항해 수경사 탱크에 올라가 "반란을 막자. 역모자들을 체포해 사살하라"고 호령호령하는 장군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밤늦은 시각까지 조문객을 맞는 사위와 손자, 손녀 등 너무 단촐하고 고요해 보이는 상주였지만 그러나 그 빈소가 결코 쓸쓸하거나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인 연유였을까!

 이제 대전 국립현충원 제2 장군묘역에 안장돼 부근에서 잠든 경북 칠곡군 인동면 고향 친구요,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후임 회장이기도 한 故 박세직(31.32대, 2009년 7월27일 별세)회장과 더불어 그토록 사랑하고 염원했던 조국 대한민국이 날로 새롭게 발전하고 번영하는 모습을 흐믓 함으로 지켜봐 주시기를 비는 바이다.

 대한민국의 '참 군인' , 진정한  '군인의 표상'  故 장태완 장군의 영전에 삼가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장군님, 평안히 가시옵소서. 그리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konas) 

이현오(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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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석기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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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29 오전 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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