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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역사의 香氣에서 '安保'를 맡다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 "국방에는 남녀가 없다" 그리고 "향군은 하나다" ...역사와 함께하는 그 숨결 그대로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0-10-10 오후 6: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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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화문(남한산성 남문)을 통과하자 숲 해설가로서만 명성이 자자한 줄 알았던 코나스 편집장의 "역사의 숨결이 담겨 있는 '단결의 문'이자 '화합의 문'인 이 지화문을 통과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는 안보의 역군 향군가족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합니다"하는 우리 문화, 역사해설이 시작되는 순간, 가슴 저 밑으로부터 뜨겁게 올라오는 무언가 깊고 찡한 전류가 휘감아 도는 것을 선연히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순간 그 자리에 함께 한 우리들 100여명 모두의 감정이  그렇게 관통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싶다.

 초가을 하늘이 유난히도 높다랗게 다가오던 지난 8일 오후, 향군직원들은 민족자존의 역사와 호국정신이 깃든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 남한산성에 있었다. 그리고 산성에 부는 바람결을 통해 우리가 호흡하며 살고 있는 내 나라 내 땅 대한민국이 어떤 역사를 이어왔고, 지금 어떻게 나아가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현재에 임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것은 아름드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에서 뿜어지는 진한 송진 향을 맡으면서도, 성벽을 둘러싸고 피어난 이름 모를 들풀과 키가 작아 더 앙증스런 꽃송이들, 퇴색돼간 한웅큼 이끼더미 속에서도, 그리고 숱한 총 안구 사이사이에서도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남한산성.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산(산성)으로 한번도 외적에게 피탈되지 않은 성(城)이며, 북으로는 북한산성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사적 제57호, 1963.1.21)이다. 하지만 이곳은 조선조 치욕의 역사인 삼전도(三田渡)의 한(恨)을 안고 있는 역사와 안보교육의 산실이기도 한 민족문화유산이다.

 인조 2년(1624)부터 축성 공사가 시작돼 인조4년(1626년)에 완공되면서 산성 내에는 행궁을 비롯한 인화관, 연무관 등이 차례로 들어서 수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선조 임금에서 순조 임금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 없이 발휘한 남한산성은 특히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에게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함께 하게 한 곳이기도 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폭정(暴政)과 전횡(專橫)을 일삼은 큰아버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反政)에 성공한 인조대왕이지만 재위5년인 1627년 1월, 만주족에 의해 새롭게 일어난 후금의 누르하치(태조) 군대에 의한 정묘호란의 침략을 당해 '형제의 맹약(盟約)'을 맺기에 이른다.

 그리고 후일 국호를 청(靑)으로 고친 태종이 1636년(인조 14년) 12월 '형제의 맹약'을‘군신의 의(義)'로 바꿀 것을 요구하며 친히 청군 7만, 몽고군 3만, 한군 2만 등 총 12만 대군을 이끌고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남하해 수도 서울을 압박하기에 이르른다.

 결국 조정에서는 한양이 위태롭게 되자 강화도로 피난하고자 하지만 이미 청군에 의해 강화도로 가는 길은 차단된 상태. 이에 인조를 위시한 주전파(主戰波·斥和波)들은 남한산성에서 성을 굳게 지키고 45일 동안 적과 항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항복하게 되니 1637년 한겨울인 1월30일이었다.

 인조는 소현세자를 포함한 대신들과 더불어 청의 지휘본부인 삼전도(三田渡)에 나아가 쌓아 놓은 수항단(受降壇)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의 예로 세 번 절하고 아홉번 고개를 숙이니 이른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인 '삼전도 굴욕'인 것이다. 온 백성이 땅을 치고 통곡했으니 어찌 군왕인들 군왕이라 할 수 있으며 백성의 핍박한 삶은 또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기록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차가운 북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조선의 왕은 삼전도에 나와 침략자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의식을 치렀다. 언 땅에 머리를 아홉 번 내리친 인조임금의 이마에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고.

 나라의 힘이 미약하고 국력이 쇠퇴해 국내외적으로 외국과 불화로 타협하지 못하고, 왕실과 조정이, 신료와 만백성이 화합·단결하지 못하고 의기투합하지 못할 때 그 시대의 역사가 어떤 수난(受難)을 당해야 했으며, 백성의 삶이 어떠했던가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바로 100년 우리의 근현대사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이명박 대통령은 재향군인회 창설 58주년을 맞이한 기념 메시지를 통해 "향군이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국가발전을 위해 단합할 수 있도록 선도적인 역할을 위해 앞장 서 줄 것"을 당부했다. 국민 각 계층 간 단합의 중요성을 일컫는 말이다.

 이어“지금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지역사회에서 국가안보를 담당하고 있는 여러분의 덕분”이라 강조한 뒤“참전 유공자와 제대군인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재향군인 여러분의 헌신에 보답하겠다”고 850만 향군회원의 역할에 대한 감사함과 정부의 변함 없는 지원에 대한 의지도 분명히 했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어제의 일상이 오늘에 이어지고 또 내일과 모레에도 전해지듯이 1천년 전 역사도 1백년 전의 역사도 오늘 우리 곁에서 숨쉬고 호흡하는 것이다. 다만 그 역사의 숨결을 어떤 가르침과 교훈으로 받아들이느냐는 집권자의 속내와 국민의 바른 역사의식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흥(興)하고 망(亡)함, 성(盛)하고 쇠(衰)함, 승(勝)하고 패(敗)함이 어느 한 순간에 갈릴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이 날 남한산성 수어장대 앞에서 두 주먹 불끈 쥐면서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 "국방에는 남녀가 없다" 며 "향군은 하나다"를 외치는 향군인들의 땀방울 맺힌 얼굴에 남한산성에 서린 역사의 숨결과 향기가 그대로 묻어나는 듯 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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