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구보다' 기자의 촌철살인
12월 오후 2시 30분부터 2시간 반 동안 서울 프레스 센터 19층 목련실에서 계간 시대정신(이사장 안병직)이 주최한 <원로 긴급 시국좌담회>가 있었다. 연평도 포격사태에 대한 것이었다. 나도 참석자의 하나였다.
이 좌담회의 백미(白眉)는 일본 산케이 신문의 구보다 루리코 정치부 편집위원의 질문이었다. “지금 한국인들은 대단히 화가 나있는 것 같다. 대통령도 화가 나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로 화가 나 있는 건지 아니면 한 석 달 뒤엔 다시 흐지부지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답변해 달라.”는 게 구보다 편집위원의 질문 요지였다. 질문을 듣는 순간 나는 공석상임에도 불구하고 배꼽을 잡았다. 촌철살인 같은 질문이었다.
사회자인 안병직 이사장이 답했다. “미래에 속하는 일이라 예단할 수 없다” 나는 답했다. “나는 후자에 걸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답변이 아니다. 구보다 편집위원의 질문 자체다. 그 기자가 오죽했으면 그런 포복절도할 질문을 던졌을까 싶었다. 일본인인 그녀는 한국 사람의 어법과 행태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 사람의 당장의 격정(激情)은 언제 어떻게 거꾸로 뒤집힐지,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서부터는 아닌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1974년에 일본인 두 사람이 소위 민청학련 사건에 휘말려 팔자에 없는 옥살이를 했다. 옆 감방에 있는 한국인 관련 학생에게 몰래 통방을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오?” “아이고 죽을 지경입니다. ” “네? 죽을 지경???? 크크크 큰일 났네요...이걸 어쩌나 정말 어쩌나, 죽을 지경이라니?” ‘죽을 지경’이란 말은 우리는 예사로 쓴다. 그런데 일본인은 아마도 정말 죽게 됐을 때라야 ‘죽을 지경’이란 말을 쓰는 모양이었다.
이런 한국인의 어법과 행태를 잘 아는 구보다 기자인지라, 그녀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 여론이 지금은 화가 잔득 나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이게 과연 어느 정도의 것인지, 그게 얼마나 가는 것인지를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게다가 천안함 폭침 당시의 이명박 대통령 연설과 한국인 여론하고, 지방선거 후의 이명박 대통령의 처신과 한국인 여론이 어떻게 180도 뒤집어졌는지를 생생히 목격했을 그녀로서는 이번에도 혹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일행은 구보다 기자의 질문을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웃었다. “우습게 보는 거지 뭐”하고 누가 말했다. 그러나 이게 사실이라면 웃을 일이 아니다. 외국 인들이, 한국인들은 작심삼일(作心三日)의 대가(大家)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항상 적당이 깎아서 듣거나 그게 어는 날 아침 갑자기 홱 하고 바뀔 수 있다는 걸 늘 유념해야 한다고 믿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거창하게는 국가 신용등급과도 직결될 수 있는 ‘중대사태’가 아닐런지.
대통령이 화를 내도 “정말?” 하고 반신반의 한다는 건 우리가 이미 그런 인식을 심어줬다는 이야기다. 양치기 소년이 된 한국의 리더십과 여론. 이번에도 천안함 때처럼 “아 돈 좀 쥐어주면 될 걸 가지고 왜 그러지? 그러다가 공연히 김정일 쳐내려오게 만드려고...” 하는 뒤집혀진 여론과 뒤집혀진 리더십이 작심삼일로 되돌아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과연 있을까?
애고,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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