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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추모

(예)영관장교연합회 회원 등 150여명 참석, 42주기 추모식 거행... 이승복 역사복원 결의 다져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0-12-10 오전 11: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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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수의 총칼 앞에 피를 흘리며 / 마지막 주고 간 말 공산당은 싫어요 / 구름도 망설이는 운두령 고개 / 새 무덤 오솔길을 산새가 운다"

 9일 정오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해발 720미터 계방산 자락 중턱에서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노래 가락이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반공소년 이승복의 노래-공산당은 싫어요' 였다.

 ▲ 9일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이승복 기념관 내 이승복 묘역에서 열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주인공 고 이승복 42주기 추모식에서 형님 이학관씨 내외가 젯상에 향불을 피우고 있다. 왼쪽 안경쓴 이는 이승복 조카 이경빈씨. ⓒkonas.net

 쭉쭉 뻗은 소나무들로 에워 쌓인 계방산 중턱 아늑한 곳에 4기의 묘가 자리를 잡고 고(故)이승복 군의 묘 앞에 놓인 상석(床石)으로 제상이 차려진 가운데 씽씽 불어대는 바람결을 타고 묘역 그윽하게 향내가 주변 산 능선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1968년 울진-삼척 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다 무장공비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이승복 42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이 날 정오 이승복 기념관이 위치한 경내 묘역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당시 학살 와중에서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형님 이학관씨 내외와 조카, 최현길 평창교육지원청 교육장과 이만재 평창군 의회의장, 심춘택 속사초등학교장을 비롯한 지역 내 교육관계자와 마을 주민, 군 관계자 그리고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회장 권오강, 예 대령)원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특히 이 날 추모식에는 1968년 울진-삼척지역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120명(118명 사살)중 생포돼 전향한 김익풍(69. 당시 북한군 중위)씨가 작년에 이어 이번 추모식에도 참석해 이승복 묘에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려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연계해 남북 분단의 아픔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했다.

 이승복 기념관장의 초헌으로 시작된 추모식에서 기념관장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안보의 중요성이 새삼 더 크게 다가오는 시점에서 님의 정신이 재조명되고 있다"며 "님의 정신을 널리 알려 홍보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추모와 영면을 고(告)했다.

 권오강 (예)영관장교연합회장은 추도사에서 "용감했던 고인의 반공정신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마지막 절규가 자라나는 학생들과 국민에게 반공교육의 상징이 돼 초등학교 교재에도 실리고 동상과 기념관 건립, 장학회가 설립돼 학생들의 반공교육의 상징이 되었다"고 그의 정신을 기렸다.

 ▲  권오강 영관장교연합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konas.net

 그러나 지난 좌파정권에 의해 '왜곡, 날조, 허위 보도 유포'와 관련한 내용이 14년 간의 법정공방으로 이승복 사건("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발언 보도)이 진실임이 확정 판결된 사실을 짚으면서 "지금 이 나라는 북한군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국민의 분노가 폭발 직전에 있다"며 "42년 전 오늘 고인께서 죽음으로 북한 무장공비에게 대항한 그때의 반공애국정신이 몹시 그립다"고 추모와 함께 오늘의 현실을 대비시켰다.

 이승복 군의 조카이자 형님 학관씨의 아들인 이경빈(27)씨는 "이맘때만 되면 마음이 착잡해지고 특히 북한에 의한 도발이 이어질 때마다 삼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면서 "다시는 그와 같은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게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날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승복 추모식에 참석한 당시 공비 김익풍(이승복 가족 학살과는 무관)씨는 묘에 술잔을 올리고 이학관씨 내외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 김익풍씨가 묘에 술잔을 올리고 있다. ⓒkonas.net

 1968년 11월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124군부대 소속 중위로, 울진-삼척으로 침투했던 무장공비 중 한 명이었던 김잎풍 씨는 지난 11.23 연평도 포격과 관련해 "전우가 옆에서 죽는데 100배, 1000배 응징해야 하는 것이 군인이다. 교전은 전쟁이고 군인은 전쟁에서 싸워 이겨야 한다"고 군의 임무와 역할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전향 후 한 때 전국을 돌며 반공 강연에도 나선 바 있는 김씨는 "국민의 안보의식도 문제지만 군인까지 해이해지면 안 된다"며 "교전수칙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군인에게 정신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추모식이 끝나고 (예)영관장교연합회 권오강 회장과 점심을 함께 한 김씨는 "침투 당시 생포되었던 다른 한 명과도 연락해 언젠가는 같이 묘소를 찾을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 날 이승복 묘역 앞에서는 (예)영관장교연합회 주관으로 이승복 역사복원을 위한 결의다짐도 함께 이어졌다.

 지난 2008년부터 올해로 3년 째 정부 요로 등 각계에 호소하며, 이승복 역사 되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예)영관장교연합회는 이 운동의 취지에 대해 "이승복 사건은 (당시)120명의 무장공비가 침투해 온갖 만행을 자행한 6.25 전쟁 이후 가장 큰 사건으로 애국 안보교육의 상징으로 역사에 길이 남겨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역사복원 운동이 국민운동으로 승화돼 해이해져 가는 국민의 안보관이 확고히 확립될 때까지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다음은 이 날 회원들이 결의를 다진 결의문 내용임.(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결의문]

고(故) 이승복 군의 제 42주기일을 맞이하여 우리 다함께 고개 숙여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아홉 살의 어린 초등학생 이승복 군이 죽음 앞에서도 외치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숭고한 애국 안보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이승복 역사를 다시 살리고자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하나. 국회와 정부 그리고 교육정책 당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학교 교육정책을 확고히 하라.

하나. 좌퍼세력들에 의한 좌편향 교육정책을 일소하고 일선 교육현장으로부터 좌편향 교육을 발본색원하라.

하나. 북한이 변할 때까지 학생들에게 반공안보교육은 절대 지속 강화되어야 한다.

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이승복 사건의 역사를 초등학교 교재에도 다시 싣게 하고, 그의 동상도 전 초등학교 교정에 다시 세워야 하면 기념관을 찾는 사람도 연중 줄을 잇게 하여야 한다.

하나. 우리는 이승복 42주기 추모제에 참배하여 고인의 명복을 비는 자리에서 이승복 역사복원운동을 국민운동으로 승화시켜 국민 모두가 함께하는 이승복 역사 다시 살리기에 앞장서서 총 매진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2010년 12월 9일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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