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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선생 순국 73주기 추모

도산공원 묘역에서 선생의 뜻 기려
Written by. 강치구   입력 : 2011-03-10 오후 2: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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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이자 민족계몽운동가로 흥사단을 창립해 자주독립과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도산 안창호선생의 순국 73주기 추모식이 10일 오전 11시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내 선생의 묘역에서, 광복회원, 흥사단원, 학생,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 도산 안창호선생의 순국 73주기 추모식이 10일 서울 신사동 도산 선생의 묘역에서 시민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konas.net

 이날 추모식은 (사)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 백낙환)와 흥사단(이사장 반재철) 주관으로 엄수됐으며, 선생의 약전봉독에 이어 추모사, 추념사, 그리고 압구정여성합창단과 방배어린이합창단의 추모가 제창, 헌화·분향의 순으로 진행됐다.

 ▲ 도산 안창호 선생의 묘역 앞에서 약전을 봉독하고 있는 윤경로(도산학회) 회장ⓒkonas.net

 기념사업회 백낙환 회장은 “도산 안창호 선생은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바친, 위대한 선각자요 애국자”라며 “앞으로 계속해서 선생의 뜻을 영원히 이어나가 한데 뭉쳐,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국론을 통일하자”고 추모사를 전했다.

 이어 우무석 보훈처 차장은 “선생은 민족의 자주독립과 겨레의 나아갈 100년을 제시한 선각자”라고 기리면서 “도산 선생이 강조한 ‘단결 없이 국력 없다’는 단결정신을 이어 받아, 국민의 마음과 힘을 하나로 모으겠다”고 말했다.

 한편, 다음은 보훈처에서 요약한 도산 선생의 연보이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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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창호선생(1878.11. 9~1938. 3.10)은 평남 강서에서 출생하였으며, 청년시절부터 탁월한 웅변가이며 뛰어난 조직가로서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자주독립과 국민의 자각을 호소하였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05년 상부상조와 조국광복을 목적으로 동 회를 공립협회로 재창립하여 초대회장에 취임, 공립신보를 발행하였다.

 1906년 귀국하여 1907년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하여 구국 운동을 전개하였고, 1909년에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10년 통감부의 도산내각 조직 권유를 일축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였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19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1913년에 “흥사단”을 조직하여 민족계몽운동과 국권회복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선생의 선각자적 사상은 이 땅의 청년들을 분발시켰으며, 민족교육운동을 통해서만 자주독립이 가능하다고 믿어온 도산(島山)의 「민족개조론」과 「무실역행(務實力行)」을 바탕으로 한 흥사단 정신은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19년 2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파리강화회의에 국민회 대표 파견 계획을 추진하다가, 국내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난 후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들어서자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하여 연통제 실시, 독립신문 발간 등 독립운동의 방략을 지도하였으며, 1923년에는 “대독립당”을 결성하고 중국 만주 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근거지로서 이상촌 건설 시도, 1924년에는 남경에서 명학원을 설립하여 실력배양운동의 기초를 다지는 등 평생을 조국독립에 헌신하셨다.

 또한 1930년에 “동인호조사”(同人互助社)를 조직하여 한인들의 합심 협력을 기획하였고, 1931년 1월에 흥사단 제17회 원동대회를 주재하여 대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흥사단보를 발행하는 등 국민의 자질혁신과 청년 인재양성 등 흥사단의 이념 구현에 주력하시다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병을 얻어 동년 12월 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38년 3월 순국하셨다.

 순국 후 망우리에 안장되었다가 1973년 현 도산공원으로 이장하였으며,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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