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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러시아군 연합, 항일 군사활동 전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한반도에서 전개된 러일전쟁 연구」발간, "한민족이 러일전쟁의 주체자였다” 밝혀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1-07-28 오전 10: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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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에서 전개된 러일전쟁의 육해상 전투를 총정리한 연구서가 군사편찬연구소(소장 최북진)에 의해 처음으로 발간됐다.

 군사편찬연구소는 2000년 이후 대외군사사 연구편찬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러시아 문서보관소의 1차 군사사료를 수집해 오던 중 2005년 러시아군역사문서보관소에서 수집한 러일전쟁 관련 사료(전투화보, 군사지도, M/F 문서 등)를 정리, 해제해 「한반도에서 전개된 러일전쟁 연구」를 발간했다. 연구서에 공개된 일부 전투화보는 국내 최초로 공개된 자료다.

 러일전쟁은 ‘0’차 세계대전이라 불릴 정도로 대륙국가와 해양국가 간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이었다. 일본으로서는 청일전쟁으로 다 얻었다 빼앗긴 ‘한반도 보호국’ 지위를 되찾으려는 침략전쟁이었다.

 때문에 일본은 공식 개전 이전부터 마산, 목포, 인천을 거쳐 병력과 군수물자를 한반도로 파견해 전쟁에 돌입했다. 서울을 점령한 이후에는 한반도 서해와 동해상에서 확보한 재해권을 바탕으로 평안도의 평양, 정주, 압록강에서 러시아군을 만주로 몰아냈으며, 함경도 동해 연안의 원산, 길주 등지의 교전에서 승리하면서 한반도를 장악해 나갔다. 전후에는 한반도를 식민지로, 동해를 내해로 삼는 동북아 패권을 쟁취해 침략전쟁을 완수했다.

 1904년 2월 8일 한반도 서해 인천앞바다에서 개시돼 1905년 5월 한반도 남해의 대한해협 동수로와 동해의 울릉도-독도 해상전투로 마무리 된 러일전쟁은, 한국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반도가 전장이었던 사실상 ‘한국의 전쟁’이었다.

 이렇듯 한반도 육해상에서 전개된 러시아전투를 시기별로 정리해 발표한 것은, 그동안 일본과 영미권 자료에 의존했던 연구한계를 벗어나 한국사에서 ‘열외’되었던 러일전쟁을 복원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 연구에는 러일전쟁에서 한민족이 방관자로 머물지 않고 주체자로 참여한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전쟁에 말려들지 않으려 선언했던 ‘국외중립’이 무산되자 밀지를 보내거나 군자금을 제공하고 러시아군 부대에 편입된 군사유학생을 격려함으로써 항일투쟁을 극비리에 지원했다.

 특히 국내에서 거병한 의병들이 러시아군과의 군사협력을 통해 항일 군사활동을 전개한 사실도 밝혀졌다. 러시아군은 ‘한인의용군’이란 한러연합군을 창설하려다 여의치 않자 '선견한국분견대(先遣韓國分遣隊)'를 결성하는 방식으로 한민족과 연합적 성격의 군사활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이 선견한국분견대에 ‘이범윤 부대,’ ‘함경도 한인포수회,’ 그리고 러시아 장교로 활동한 ‘김인수 부대’ 등이 참전해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한 것은 러일전쟁이 결코 러시아와 일본만의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역사적 증거라 할 수 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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