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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구하기’가 말해주는 것

Written by. 류근일   입력 : 2011-09-17 오후 1: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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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운동단체들이 곽노현 석방을 위한 ‘공대위(共對委)를 만들어 촛불집회를 하겠다고 했다. 곽노현-박명기의 2억 원 수수(授受) 행위로 밀린 ’교육계 운동권‘이 다시 반격에 나섰다는 뜻이다.

 법정 안에서 법율구조 활동을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법정 밖에서 다중(多衆)의 위력으로 떠들겠다는 것이라면 그건 문제다.

부도덕 혐의로 몰리면 유무죄가 확정되기 전이라도 어딘가 창피해 하고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을 짓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의 상정(常情)이련만 저쪽 동네엔 도무지 그런 게 없다. “신성하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 “그걸 시비하는 X은 무조건 나쁜 X"이라는 식의 특권의식과 도덕적 우월감이라도 가졌다는 것인가?

 특정 운동권의 이런 특권의식과 우월의식은 자기들이 ‘역사’의 소명(召命)을 받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경우 ‘역사’란, 특정한 사관(史觀)이 말하는 ‘역사발전의 법칙’을 말한다. 그 ‘법칙’에 따라 오늘과 내일의 세상은 마땅히 이러이러한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은 그 ‘역사 만들기’의 사도(司徒)이자 전위(前衛)이며 투사라는 것, 그래서 자기들은 절대로 시비 받아선 안 될 거룩한 선민(選民)이라는 식이다.

 선민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 테두리 밖에서 ‘감히’ 시비를 걸어오는 행위는 신성모독(神聖冒瀆)이요 이단(異端)이다. 따라서 ‘역사’의 이름으로 저주받고 단죄 받아야 할 악(惡)이다. 이런 발상에서 그들은 자기들 선민에 대한 공권력의 수사, 소추(訴追) 따위는 그 정당성을 ‘당연히’ 인정하지 않는다. 이쪽 상식으로는 “저 사람들 왜 저렇게 공권력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고 두껍게 놀까?” 하고 의아해 하겠지만 저쪽 기준에서는 그게 오히려 ‘정의’인 셈이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뒤흔들릴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거기에 있다. 체제 안의 체제가 또 하나 있는 것이다. 그 또 하나의 다른 체제가 따로 노는 것이다. 따로 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공(人工) 지진을 일으키려 한다. 세상 돌아가는 판을 똑바로 투시해야 할 때다.(konas)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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