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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의 몰락과 북한체제의 전망

Written by. 김강녕   입력 : 2011-12-07 오후 3: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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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비아(Libya)를 42년 동안 철권 통치하던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Gaddafi)가 지난 2011년 10월 20일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압제에서 시달리던 리비아 민중의 봉기로 권좌에서 밀려나 시민군에게 쫓긴 끝에 하수 배수로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었고, 결국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이로써 42년의 철권 독재권력이 지구상에서 또 사라졌다.
 
 지난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된 이른바 ‘재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 2010년부터 2011년까지 튀니지에서 일어난 혁명을 튀니지의 국화(國花)인 재스민에 빗대어 부르는 명칭)의 불길이 중동을 휩쓸며 30년 독재의 이집트 무라바크 정권을 축출시켰으며 마침내 카다피의 사살로 리비아에서의 시민혁명도 성공했다.

 지난 2011년 2월 15일 리비아 제2의 도시인 벵가드에서 타오른 리비아 시민혁명이 8개월에 걸친 카다피 친위군과의 내전 결과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NTC)에 의해 지도되는 시민군에 의해 종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액튼 경(Lord Acton)의 말대로,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absolutely).” 카다피의 몰락은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망한다’는 역사의 진리를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제 세계의 관심은 30년 독재의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 시리아 대통령, 33년 독재의 알리 압둘라 살레((Ali Abdullah Saleh) 예멘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쏟아지고 있다.
 
 카다피의 최후를 보는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북한 김정일 정권을 떠올리게 된다. 북한은 1945년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한 이래 3대 권력세습을 공식화 내지 공고화를 획책․추진하며 2011년 현재 66년째 장기독재를 지속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수시로 공개처형을 자행하며 대규모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혹독한 주민 감시체제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인권침해 국가이다. 그런 북한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다면 김정일의 경우는 카다피의 경우보다 더 잔인해질지도 모른다. 
  
 세계 대추세로서의 민주화

 탈냉전 이후 우리는 정보화․세계화․개방화․민주화로 압축되는 세계질서 또는 시대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정보통신과 교통의 혁명적 발달, 냉전체제의 붕괴와 자유민주주의 확산, 자유시장경제체제의 보편화, 환경문제의 전지구적 대응, 상호의존적인 세계문제해결의 필요성 등으로 세계화가 촉진되고 있으며,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적으로 세계화 현상은 점차 보편화․다양화․일상화되고 있다.
 
 ‘재스민 혁명’은 지난 2010년 12월 튀니지(Tunisie)에서 경찰단속에 항의한 한 노점상 청년의 분신자살로 촉발되었다. 이로 인해 지네 엘 아비네 벤 알리의 독재체제가 지난 1월 그의 해외망명으로 무너졌으며, 지난 2011년 10월 23일 제헌의회의 구성을 위한 선거가 실시되어 217명의 제헌의회 의원이 선출된 바 있다.
 
 ‘재스민 혁명’은 중동일대로 확산되었다. 그것은 철옹성 같던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의 23년 독재를 순식간에 무너뜨렸고,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의 30년 장기집권도 끝장냈다. 시리아(Syria)에서는 지난 3월부터 하페즈 알아사드와 바샤르 알아사드 부자(父子) 대통령의 41년 장기독재에 저항하는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33년 집권한 예멘(Yemen)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도 계속되는 시위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이처럼 2010년 12월 튀니지(Tunisie)에서 한 노점상 청년의 분신자살로 촉발하여 2011년 1월 시작된 재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 열풍은 튀니지의 벤 알리와 이집트의 무바라크에 이어 42년간 독재정권을 유지해온 카다피를 몰락케 했다. 아랍의 민주화 시위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Social Networking Service)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결집했다. 아랍 세계의 시민혁명 성공에는 정보통신의 발달과 민주세력, 그리고 국제적 지원이 큰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후술하는 바와 같이, 북한의 경우는 이러한 나라들과 국내외적 사정이 다르다. 북한은 중국이라는 든든한 언덕이 있고, 북한 내부의 상황이 리비아처럼 나쁘지 않다. 중동에서처럼 시위나 봉기가 일어나려면, 먼저 북한주민이 의식화되고 조직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김정일 폭압정권에 대항할 시위나 봉기의 구심점 즉 주도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카다피 철권통치의 몰락

 카다피는 1969년 친(親)서방 성향의 왕정을 무혈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리비아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1977년에는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인민권력)’ 체제를 선포, 인민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며 헌법을 폐기한 뒤 석유 등 국가기반시설을 국유화하여 독재권력을 강화하는 등 42년간 전제(專制) 권력을 휘둘러왔다.

 그동안 장기집권, 독재정치, 인권탄압, 테러지원, 핵실험 의혹 등으로 수많은 국제적인 비난과 경제제재 조치가 뒤따랐다.
 
 카다피는 국제관계 경색을 타파하기 위해 2000년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자 이라크와의 외교를 단절함과 동시에 서방 국가에 개방을 선언하고 화해정책을 쓰기도 했다.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 포기선언 후 2004년에는 대미외교관계 복원에 힘써, 이에 미국은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였다. 또 과거 리비아를 식민 지배했던 이탈리아의 사과를 받아 들이고 과거 리비아가 이탈리아에 행했던 보복활동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달하는 등 대외 관계에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해왔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서방 아랍국가를 비난하면서 외교분쟁은 계속되었고, 국제사회는 국유화한 석유를 통해 획득한 막대한 재원이 정권유지와 국제 테러 단체에 대한 지원에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 비난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카다피는 리비아 민중이 봉기하자 모두를 죽일 듯이 맞섰다. 수십 년 리비아 민중의 고혈을 짜내 모은 막대한 자금으로 값비싼 용병을 고용해 시민군을 공격했다. 강력한 화기로 무장한 카다피 친위대의 공격은 시민군과 일반 시민조차 가리지 않는 무차별 학살이었다. 카다피는 2011년 2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자 전투기까지 동원해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진압했다.
 
 이에 아랍연맹이 국제사회의 개입을 요청하고 리비아 반군 국민들이 세계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사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국제사회가 제지하고 나섰다.

 유엔 안보리가 결의안 제1973호를 통과시킴에 따라 국제사회가 결정적으로 리비아의 시민들을 보호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수 있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연합군이 카다피 친위대의 예봉을 꺾었다.

 7개월간 9,600여 차례 공습을 받으며 궤멸한 카다피 진영은 결국 카다피의 고향에서 최후를 맞았다. 리비아 해방은 무고한 시민의 학살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결의와 연대가 큰 역할을 했다. 유엔은 ‘국민보호책임’이라는 개념에 따라 리비아 사태에 개입함으로써 반인륜적 범죄를 응징하는 소중한 선례를 남겼다. 국민보호책임은 ‘어떤 나라에서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종청소, 비인도적 범죄가 발생했을 때 국민보호를 위해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유엔의 결의와 이에 근거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군사적 개입이 리비아 국민을 도와 민주화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자국민을 학살하는 정권은 존재해선 안 된다는 21세기적 정의를 구현한 것이다.
 
요컨대 카다피의 몰락은 자국민을 상대로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해 지탱되는 정권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카다피 독재정권의 붕괴는 그 어떤 권력도, 그 어떤 무자비한 탱크와 총칼의 힘도 이성적 양식과 보편적 양심 앞에선 맥없이 무너진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겼다.

 북한체제의 실상과 전망

 이제 세계의 관심은 30년 독재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33년 독재의 알리 압둘라 살레 예맨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에게 쏟아지고 있다. 현재 시리아와 예멘은 정권퇴진 운동이 진행되고 있고 대규모 유혈사태가 심화되어 독재정권의 축출이 그리 멀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다.

 중동지역에서 불길처럼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재스민 혁명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부자세습의 수령절대주의 폭압정권이 하루빨리 종식되어 북한동포에게 자유와 인권을 되찾아주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김정일은 카다피 이상 가는 국제 테러범이다. 그는 1968년 청와대 기습 시도, 강릉삼척 무장공비 침투, 1978년 판문점 도끼 만행, 1983년 아웅산 폭파 테러를 저질렀다.

 튀니지의 벤 알리 독재정권은 29년, 이집트 무바라크는 30년, 리비아 카다피는 42년 만에 무너졌지만 북한은 66년째 장기독재가 계속되고 있다. 레닌도 스탈린도 마오쩌둥도 하지 않은 3대 세습을 강행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언론의 자유는 차단되고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체제에 불만을 가진 자들은 공개 총살되고 있다.

 북한은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선군정치와 3대 세습독재체제를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야 한다. 이를 거부하면 카다피 같은 몰락을 맞게 될 것이 역사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2011년 3월 리비아에서 민주화 운동이 폭발하고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되자, 이를 자신들의 핵무장과 선군정치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들고 나온 바 있다. 즉 리비아가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무장해제를 당하고 군사적 침략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군의 길은 천만 번 정당하고 자위적 국방력은 더없이 소중한 억제력”이라고 강변했다.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를 보면서 우리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수시로 공개처형을 자행하며 대규모(20만명)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는 동토(凍土)의 나라다.

 특히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혹독한 주민감시체제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인권침해 국가이다. 유아와 영아에게 지급되어야 할 식량조차 부족하고,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는 행렬에 줄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이처럼 북한 김정일은 우민정책으로 국제적 고립과 폐쇄된 사회를 만들어 주민들을 우물 안의 개구리로 세뇌시켜왔으며 선군정치와 핵개발로 3대 세습독재체제를 강행하고 있다.

 북한은 지정학적 상황이 북아프리카나 중동과 다르고, 중국이 체제를 방어해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국제사회를 지도하는 강대국으로서 무조건 북한 편을 들기만은 어려울 것이다.

 북한을 인권 유린과 경제 실패의 지옥으로 만든 독재왕조에 대해 대다수의 북한 주민이 결국 반기를 들어 ‘아래로부터의 주민봉기’가 이루어진다면 철옹성 같은 북한 김씨 왕조도 카다피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비극적 종말에 이르지 않으려면 북한은 지금부터라도 대남적화전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북한 주민의 인권과 복지의 향상을 위한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해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대응 및 결어

 아랍 세계의 시민혁명 성공에는 정보통신의 발달과 민주세력, 그리고 국제적 지원이 큰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아랍 민주화로 권좌에서 축출된 튀니지의 알리 대통령과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 그리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리비아 카다피 대통령은 모두 장기간 정보통제와 민주화 욕구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무시하고 국민의 살림살이를 도탄에 빠트린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높은 인플레와 실업률로 인한 서민의 분노가 대규모 시위로 이어져 독재자를 축출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철옹성 같은 독재체제에도 ‘민주화의 봄’은 올 것이며 기필코 와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이다.

 재난이나 전쟁 상황도 아닌 평시에 매년 수십 만 명씩 굶어 죽는 지독한 가난과 비왕조국가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현실화한 3대 세습체제, 더욱이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한 무차별 인권탄압과 자유의 탄압과 유린은 북한 민주화를 불가피한 요인으로 보게 만들고 있다.
 
 카다피가 어떻게 해서 시민저항을 불러 일으켰는지, 그리고 왜 국제사회가 리비아 사태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북한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제대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북한 스스로 핵 개발 야욕을 중단하고 국제사회와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해 나갈 때 살 길이 보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남 군사도발을 중단하고, 남북관계를 상생과 공영의 관계로 진전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김정일은 핵에 더 집착할 것이 우려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족공멸의 시한폭탄인 핵을 머리에 이고 진정성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군사적 긴장은 지속되고, 무엇보다도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더욱 가중될 것이다. 군사력에 의존한 ‘강성대국’은 허장성세에 불과하다. ‘반인륜 정권은 반드시 몰락한다’는 교훈을 스스로 증명할 뿐이다.

 우리는 북한의 어떠한 오판(誤判)이나 이판사판식 도발(理判事判式 挑發)의 가능성에 대해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튼튼한 안보 및 국제사회와의 협력의 바탕위에서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지속해 나가면서 북한의 비핵화 및 개혁․개방을 유도해 나감은 물론, 북한의 어떠한 급변사태에도 유연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단․중․장기적 대응책 마련하는 일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때라 생각된다.(konas)
* 이 칼럼은 월간 '자유' 12월호에도 게재된 내용임. 

김강녕(조화정치연구원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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