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칼럼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영주권병사 수기4] 새롭게 이해하는 ‘위국헌신 군인본분’

‘나’를 버리는 군복무를 통해 우리는 이처럼 참된 성숙과 참된 자유, 혹은 실질적인 자기발전과 같은 값진 보물을 얻게 된다
Written by. 이훈   입력 : 2012-01-20 오전 11:17:16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이 글은 지난해 12월 병무청이 해외거주 영주권 병사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수기집「대한사람 대한으로 2012」에 실린 군생활 수기입니다.

“B대위님, 앞으로 전쟁이 정말 일어나겠습니까?”
“그걸 알았으면 내가 여기 있겠냐?”
“다 헛되지 않게 죽으려고 여기 있는 것 아니겠어?”

 B대위님께 전쟁의 가능성에 대해 여쭈어 본 데에는 두 가지, 곧 내가 그러한 가능성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과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걱정과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는 전제들이 깔려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가 아직 전쟁 중이라는 사실은 망각하기 쉬우며, 전쟁에서 전사한다는 생각은 일단 왠지 모를 억울함과 거부감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괜히 걱정과 겁이 많은 나는 아마 내가 믿고 싶은 현실, 곧 전쟁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신뢰성 있는 출처’로부터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마음을 지닌 나를 과연 진정한 군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흔히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영주권자들은 ‘자진입대’를 했으니 무언가 다를 것이라고. 과연 나와 함께 입대한 영주권자 훈련소 동기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었다. 일생을 해외에서만 살아온 30대 미국 시민권자, 그는 다리에 큰 수술을 한 적이 있어서 본래 군 면제임에도 자진입대를 하였다. 대한민국 군인으로 살아보고 싶다며. 또 어떤 친구는 건강한 한국 남자라면 군복무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첫 돌 이후 브라질에서만 살아서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데도(늘 자신을 ‘여권자’라고 불렀었다. 야 영주권자겠지...) 오로지 군대 때문에 입대를 몇 주 앞두고 입국을 했다고 한다.

 물론 내 안에도 대한남아의 피가 흐르긴 흐르는지, 훈련소에서 정훈교육을 받을 때나 거의 10년 동안 듣지 못했던 애국가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들을 때에는 이곳이 슬프고도 위대한 역사를 지닌 나의 조국이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대한민국의 자손으로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하는 군인일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곤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들은 말 그대로 그 순간이었을 뿐, 조금만 힘들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나는 ‘내가 지금 여기서 이걸 왜 해야 하지’부터 시작해서 ‘시간이 아깝다’‘갑갑하고 답답하다’‘시간아 언제 가니’ 등 여러 부정적인 생각들을 갖기 십상이었다. 이처럼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마음이 곧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전제를 지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런 나를 알기에 나는 나를 ‘자진 입대자’라며 좋게 바라봐주는 사람들에게 항상 황송무지하고 민망할 따름이다.

 하지만 B대위님의 말씀은 나에게 자그마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사실 그분과의 대화가 있기 얼마 전, 북한군의 수상쩍은 움직임을 탐지한 우리의 군이 대응조치를 한 일이 있었다. 무슨 우연인지, 이 사건은 마침 그러한 상황에 대응하는 훈련을 막 마친 후에 일어났던 것이었다. 나는 순간 뜨끔했다. 비록 작은 사건이었지만, 그러한 상황을 접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우리가 매순간 군사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B대위님의 말씀을 되씹어보았다. 쓸데없이 걱정과 겁이 많은 나, 그런 나는 단순무식에 상상력도 풍부해서 ‘전쟁’이라는 생각에 바로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거기에 심취하게 된다.

 B대위님과의 대화 이후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바로 그때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한 당연하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답이 나의 머리를 강타하였다. 우리에게는 확실히 실제적인 위협이 상시 현존하고 있는데, 그 위협이 정말 발생한다면 그저 일상처럼 하루를 살았을 뿐인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실질적인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몹쓸 나의 상상력이 이 장면을 멋지게 그려낸 그 순간, 나의 마음이 나의 머리를 앞질렀다. 그들을 지키고 싶다고 아니 지켜야만 한다고.

 이렇게 나의 두 가지 전제가 깨지는 순간, 문득 훈련소 때 배운 ‘위국헌신 군인본분’이 떠오르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아, 참 좋은 말이구나!’하면서도 쉽게 그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했지만, 나의 뒤늦은 깨달음은 나로 하여금 안중근 의사의 명언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는 것 같다. 물론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실천하는 방법은 사람의 생김새 만큼이나 다양하다.

 우리들은 모두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밥을 먹으며 같이 잠을 자지만, 삶의 배경부터 시작해 개인적인 취향까지가 하나 같이 다 가지각색인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군대에 들어오게 된 계기나 동기, 입대 전후로 지녔던 마음가짐 역시 다 다를 것이다. 많은 이들은 ‘대한사람이기에’ 다소 어쩔 수 없이 들어왔을 것이고, 일부 영주권자 동기들처럼 정말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기 위해 입대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방금 언급한 간부님처럼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아니면 우리 대장님처럼 젊은이들의 병영생활에 긍정적인 공기를 넣어주고자, 또는 나의 훈련소 소대장님처럼 ‘운명에 이끌려’ 직업군인의 길을 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군복을 입게 된 이상 ‘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관건은 앞으로 ‘어떻게’살 것인가라고. 비록 ‘왜’에 있어서 너무 다양한 우리일지라도, 바로 이 ‘어떻게’에서 우리는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동일한 정체성 아래 하나가 되는 것인지 도 모르겠다.

 군복무란 어쩌면 사랑하는 이들과 조국을 위한 이러한 마음을 점차 키워나가는 것, 대부분의 우리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수동적인 ‘의무’가 능동적인 ‘헌신’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잠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여기서 내가 이 글을 끝내면 살짝 마치 내가 한 번의 깨달음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 안중근 의사 버금가는 애국자가 되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이처럼 다짐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한 번 현실을 들여다보려 한다.

 특별한 훈련을 제외하고는 주로 행정병으로서 일하는 나의 업무들은 전방에 배치되었거나 매일 훈련을 하는 다른 전우들에게 미안하고 민망할 만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가끔은 확고한 목적의식을 지니고 싶은 마음에 ‘이러한 나의 일도 궁극적으로는 나라를 지키는 일이다’라고 혼자 생각해볼 때도 있지만, 커피를 타거나 문서작업을 하면서 이런 마음을 굳게 지키기엔 내가 너무 나약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나의 일과 속에서도 나는 철없이 굴 때가 많다는 것이다. 전화 받기 정신없다, 계속 컴퓨터 앞에 있으니 눈이 아프다, 일이 많다, 피곤하다 등 만약 최전방 GP, GOP 산골짜기에서 나보다 훨씬 열심히 보다 힘겹게 임무를 수행하는 전우들이 들으면 어이를 상실할 것이다.

 이런 내가 어떻게 군인의 본분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하루를 살 수 있을까?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팔과 다리로 가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잠시 부대를 떠나 타부대원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파견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몇몇 병사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며 ‘여기서는 정말 불평 없이 군 생활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니 그들도 나름대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몇 년 전 철학사 수업 때 배운 임마누엘 칸트 생각을 했다. ‘정말 우리들의 현실은 우리 각자의 틀에 의해 구성되었기에 주관적인 것이 아닐까?’ 무엇이 힘들다고 할 때나 누군가가 싫다고 할 때, 그 ‘힘든 것’과 ‘싫은 것’의 기준은 곧 ‘나’ 아닌가? 그렇게 되면 나의 현실은 곧 ‘나’가 창조해 낸 일종의 ‘나’만의 세상인건가?

 물론 ‘위국헌신 군인본분’에서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나의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내가 이것을 일상에서 간직하는 때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마 ‘목숨을 바친다’에서 ‘목숨’을 문자 그대로 받아 드렸기 때문인 것 같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기준에 따라 현실을 구성한다면 이런 ‘나’를 죽이는 일종의 자기부정 역시 목숨을 바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이것은 최근에 UFG 훈련을 통해서야 비로소 깨달은 사실인데 입대 후 ‘나’만의 현실을 구성한 가장 대표적인 틀은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잠재하고 있었던 서양의 개인주의적 성향이었던 것 같다(미군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이 굉장히 익숙했었고 그들을 보며 미국생활을 하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한 위계질서는 지키는 가운데 미군 이등병과 원사가 매우 친근감있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고등학생 시절 학년과 무관하게 모두와 친구였던 기억, 교장선생님과도 복도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며 지내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그 때문인지 훈련소 시절 동기들끼리 나이 한 두 살 차이를 따지던 모습이나 부대에서 확고한 선후임관계가 살짝 이해하기 힘들었었다. 나아가 일과 시간에는 자기가 맡은 일에만 충실하고 일과 밖에서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던 미군들의 모습은 개인적 성향과 관계없이 무엇이든 함께하는 이곳 문화에 비해 더 익숙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러한 ‘낯설음’이 가져다주는 단점들에만 집중하지 않고 긍정적인 시각을 가질 때 곧 어떤 것이 ‘나’와 맞지 않을 때 불평하기에 앞서 그 안의 좋은 면에 시선을 돌릴 때 나는 새로운 현실을 구성할 수 있었다. 서양의 수평적인 관계와 달리 이곳의 관계는 수직적이기에 불편함을 줄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전자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내리사랑’이 있다.

 넉넉지 못한 월급에도 나의 생필품들이나 간식들까지 손수 챙겨준다거나 나의 고민들까지 걱정하며 해결해주려 하는 분대 선임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처음에는 낯설었던 이러한 관계가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처음에는 살짝 불편했던 “뭐든지 함께하기”도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니 그 안에서 함께함이 주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실제로 최근에는 운동보다 독서를 선호하는 ‘나’를 잠시 잊으니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한 후 웃으며 간식타임을 갖는 데에서 오는 재미를 진심으로 즐길 수 있었다.

 위국헌신의 의미를 이처럼 ‘자기 버리기’로 확대해 볼 때 그 실천 범위는 매우 광범위해진다. 내가 원하는 것(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등)을 포기하고 불편한 점들을 인내하는 것도 위국헌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보다 긍정적인 현실 속에서 살 수 있게 된다.

 ‘나’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생각에 현실이 맞지 않음을 군대나 전우의 탓으로 돌리며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곧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며, 그 사람의 삶은 군대에서나 사회에서나 ‘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미성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나’를 버리고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 수 있는 수용성, 곧 참된 성숙과 참된 자유에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무언가를 위해 ‘나’를 버리는 군인의 본분은 곧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군 생활을 통해 참된 성숙,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공동체생활을 하는 군대는 이에 얼마나 걸 맞는가?!). 과연 여태까지의 군 생활을 통해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잠재해 있었던 개인주의적인 성향에서부터 조금씩 한국인의 별미인 공동체성에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또 이러한 ‘자기 버리기’는 우리로 하여금 이기심으로부터 벗어나 진심으로 남을 위할 수 있게 해준다. 전우애가 곧 그 어떤 것보다 무서운 전우애라고 생각해보면 이러한 작은 ‘자기 버리기’ 실천들은 그 무엇보다 효과적인 훈련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 시각에서 보면 모든 것을 군복무의 탓으로 돌리며 시간을 헛되이 돌리기보다 실제로 군 생활안에서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청소요령과 같은 생활의 지혜에서부터 시작해서 건강해 질 수 있는 기회,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 등).

 ‘나’를 버리는 군복무를 통해 우리는 이처럼 참된 성숙과 참된 자유, 혹은 실질적인 자기발전과 같은 값진 보물을 얻게 된다. 그러한 보물을 지닌 우리는 사회에서 그것들을 나눌 수 있고, 그렇게 우리의 보물들은 곧 우리들로 구성된 우리나라의 것이기도 할 것이다.
매순간 그렇게 살 자신은 없지만, 이처럼 뚜렷한 의식을 지니려고 노력하며 하루하루 ‘목숨을 바치며’ 살고 싶다.

 군인으로서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살아내기 위해, 함께 뭉치면 불가능 한 것도 가능케 하는 한국인으로서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버릴 때 진정 자유로워지는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기 위해...(konas)

이훈(이병) 제3야전군사령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6.9.26 토요일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북한의 드론 전력 위협에 대비한  민·관·군 입체적 대응 방안
한반도 안보 지형의 지각변동최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첨단 ..
포토뉴스 더보기
핫클릭 뉴스
깜짝뉴스 더보기
6·25 호국영웅 故한길진 하사 유해 신원 확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호국영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