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병사 수기8]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 위한 발걸음
저는 2개국(과테말라, 한국)의 영주권을 갖고 있는 육군 상병 김학배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군대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 미주리주립대학교를 다니면서 한인학생회 총무를 맞게 되고 우리나라를 알리는 일을 하다 보니 뒤늦게 대한민국 사람으로 군 입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처음에는 ‘군대가면 고생한다’는 생각 때문에 반대를 하셨지만 저의 강고한 의지를 보시고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학교 4학년1학기를 마치고 16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날의 느낌, 공기, 신선함, 설레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6년 전 한국을 떠나기 전 모습하고는 너무나도 달랐고 해외에서 느꼈던 IT강국 우리나라..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3월말에 서울병무청에서 1급으로 신검을 받고 5월10일 논산훈련소에 입대를 하여 훈련소장님, 병무청 관계자분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군대라는 곳을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그러던 중 입소 3주차 때 폐렴에 걸려 열이 39도까지 올라 논산병원에 입원을 하여 유급이 되었습니다. 저는 유급이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지 알고 너무 싫었는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입소한 동기들과 훈련소 퇴소도 같이 못하면서 ‘내가 여기까지 와서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을 했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사회에서도 패배자가 된다는 생각에 폐렴이 완치되는 5주 동안 내 자신을 더 강화시켰습니다.
그때 항상 옆에서 소대장님이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해주셨고, 남은 군 생활동안 열심히 하는 것이 감사의 표현이라 믿고 더욱 더 열정적으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여곡절 속에 다른 사람들은 5주 만에 끝나는 훈련소 생활을 10주 만에 마치는 퇴소 전날 자대배치 결과를 받으면서 ‘어느 부대를 가던지 잘 할거야, 학배를 믿는다’라는 말을 듣는데 너무나도 감사했고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가득했습니다.
퇴소 날은 그동안 나도 모르게 정이 들었던 소대장님과 헤어지려고 하니 어느새 눈물까지 글썽거려졌습니다. 자대는 다행히도 친척분이 있는 서울에 위치한 부대의 군수병으로 배치가 되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외국영주권을 갖고 있는 병사는 거주지가 있는 곳으로 최대한 배려를 해주며 훈련소 2주차 때 이미 어느 부대로 배치될 것인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항은 외국 영주권을 갖고 앞으로 입대할 병사들한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자대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대대장님, 정통대장님, 그리고 군생활의 멘토인 행정보급관님이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도 군 생활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에게 “군대에 안와도 되는데 왜 왔나요?”라고 물어보면, 저는 “왜 군대를 안 가려 하나요?”라고 다시 물어봅니다.
제가 느끼는 군대라는 곳은 많은 경험으로 배울 것도 많고, 힘들거나 아플 땐 가족처럼 따듯하게 챙겨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간부님들과 전우들이 있는 곳입니다.
저의 가족은 모두 한국에 없지만, 또 다른 가족인 군대에 있는 간부님들, 선임병, 후임병, 동기들이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해외 영주권을 갖고 있는 청년 여러분 군대에서 힘든 상황이 와도 그 순간일 뿐이며, 절대 불가능한 일을 지시하지도 않습니다. 2년이라는 군 생활은 짧은 기간이며 전역이 5개월 밖에 안남은 지금 이 순간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는 전역 후 다시 미국에 가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세계 방방곡곡에서 생활을 할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군대에서 겪은 많은 경험으로 어느새 나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설 것이며 인생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저처럼 되고 싶은가요? 이제는 바로 여러분들 차례입니다!!(konas)
김학배(상병) 3정보통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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