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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 생각나는 그대 영웅들!

"어느 사회든 영웅(英雄)을 영웅(英雄)으로 인정하고 받들지 못하면 결정적 순간 영웅배출에 실패하는 우(遇)를 겪을 수도 있다는 점. "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2-10-29 오후 9: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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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이천을 향하는 도로 양 옆 길섶에는 색색의 코스모스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넓다랗게 펼쳐진 들녘 논에서는 아직 탈곡되지 않는 잘 익은 벼이삭들이 머리를 조아린 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파란 하늘과 더불어 깊어 가는 가을을 수놓고 있었다.

 지난 10월23일 오전 이천 국립호국원으로 100여명이 넘는 할아버지들이 당도하고 있었다. 62년 전 꺼져 가는 등잔불과도 같은 조국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온몸으로 적진(敵陣)을 향해 내달렸던 6·25참전 유공자분들이었다. 더러는 지팡이를 짚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기곤 했지만 함께 싸우다 이 땅의 별이 된 동료 전우들을 추모하는 '충용비' 앞에 선 노병(老兵)들은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6·25전쟁 초기 소대장은 말 그대로 총알받이 소모장교였다. 오죽했으면 아군(我軍)을 향한 총탄이 '쏘위' '쏘위' 하며 허공을 갈랐다는 표현까지 이어졌을까!

 그렇게 소대장은 최선두에 서서 부하대원들과 더불어 '나를 따르라'를 외치며 진두지휘에 나섰으니 전투 간 소대장 손실은 어느 계급, 직위의 장교보다 가장 컸으니, 나라 위해 거룩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이 날 이천호국원에서는 1950년 전쟁 초기 전시 긴급 증·창설에 따른 장교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단기과정으로 설립된 육군종합학교전우회(전시사관학교)회원들이 모여 62년 전 전장(戰場)에서 용전분투(勇戰奮鬪)하다 전사한 전우를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단체에 의하면 그 해 육종전우회는 총32개기 7,288명이 임관해 조국의 방패가 되었다고 한다. 7천 여명의 노병들은 전사 또는 전상으로 시달리다 이제 1,300여 명에 불과하단다. 용사들의 붉어진 눈자위처럼 숙연한 분위기가 파란 가을 하늘위로 설핏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에 앞서 지난 8월30일 국립 서울현충원 '1950년도 현지 임관전사자 추념비' 앞에서는 20여명의 노병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제가 거행되었다. 소대장이 부족함에 따라 각 전투부대에서 우수한 고급 하사관과 준사관을 선발, 국방부장관 특명으로 야전에서 곧바로 육군소위로 현지 임관한 '50동우회' 회원들의 전우 추모행사였다.

  '50동우회'도 1950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전투병과 1,932명, 지원병과 693명 등 2,652명이 임관해, 전쟁기간 전사 416명, 실종 123명, 전상 278명 등 3년간 전투손실은 817명으로 전체 임관자의 3분의1에 달할 정도였다. 그만큼 초급장교들의 희생은 크고도 깊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잊지 않아야 한다. 이분들이 계셨기에 오늘 대한민국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이적인 경제기적을 이루고 민주화를 달성해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고 세계평화를 위해 국군을 파병하는 놀라운 국가로 성장했음을.

 돌아보면 살신성인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한 6·25전쟁영웅들이 안 계셨다면 대한민국의 풍향계는 어찌되었을까? 거대한 병영집단이자 세계 최악의 독재, '동토(凍土)의 땅' 북한 주민이 처한 오늘을 비교해 볼 때면 머리끝이 쭈뼛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민주통합당의 김광진의원이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의 한 발언이 알려져 국민적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김 의원은 살아있는 우리 군의 전설이자 최고의 원로로 존경을 받고 있는 6·25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을 '민족반역자'로 매도하는 망언을 발해 6·25참전용사는 물론 재향군인회와 성우회 등 보수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참전단체들이 규탄 대열에 나서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세상이 다양한 인간 군상들로 점철되고 얼굴 생김생김 마냥 사고도, 의식도 생각의 방식이나 차원도 각양각색이라 할 수 있다지만 어찌 전선을 누비며, 다부동에서, 평양입성에서, 사자후를 토하며 끝내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 인천상륙작전으로의 일대 전환점을 이루게 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노(老) 장군을 '민족반역자'로 매도하다니. 그의 해괴한 논법에 참으로 어안(魚眼)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인생관에, 연령의 차이를 차치 하고라도 막말을 토로하는 김 의원의 심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나라가 보위되고 국운이 융성해지기 위해서는 찬·반론자를 포함해 당대를 살아가는 위인 영웅, 보통시민들이 함께 호흡을 맞출 때 가능한 것일 게다. 그렇다 치더라도 가슴 저 아래로부터 스멀대며 솟아오르는 이 참담한 기분을 어떻게 저며야 할까?

 29일 아침, 다부동 전투에 참전했다는 참전용사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아무리 이 나라가 요지경이라 한다지만 이래도 되는 겁니까? 백 장군님이 1950년 8월 사단장으로 선두에 서서 죽음을 불사한 채 우리 전우들을 독려하고, 나라를 구할 때 국회의원이란 그 XX는 대한민국에 태어날지 북한에 태어날지 가늠도 되지 않은 상태 아니겠어요? 그런 X이 어찌 망발을 해도 유분수지 그런 돼먹지 않은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답니까? 그런데도 이 나라는 그 X을 방치하고 있어요. 이래가지고도 법치국가라 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사무실로 전화해도 받지를 않아요................."

 이 가을 앞 뒷산을 울긋불긋 수놓은 고운 단풍과 길가에 피어난 코스모스 행렬이 '상추객(賞秋客)'들의 눈길을 자극하고, 가을에 푹 빠져 행복감으로 젖어들게 하고 있다. 이 또한 발전된 나라가 있고, 나라를 지켜낸 6·25전쟁영웅들이 계셨기 때문 아닌가. 우리가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게 또 있다. 어느 사회든 영웅(英雄)을 영웅(英雄)으로 인정하고 받들지 못하면 결정적 순간 영웅배출에 실패하는 우(遇)를 겪을 수도 있다는 점을.

 23일 이천 국립호국원의 육종전우회 전사자를 추모하는 '충용탑' 비문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나라 찾아 광복된 지 三十一년 창군이래 우리 국군 잘도 싸웠다.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이 땅 지켰네. 아세아의 비극인 잔인 무도한 북괴를 물리쳤고....." 

 풍요로운 가을 들녘을 수놓은 10월이 깊어가고 있다. 6·25전쟁영웅들의 탄식 맞물림과 함께.(konas)

이현오(코나스 명예기자)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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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0-30 오후 2: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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