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㉔〕21개월의 자유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막막했다. 시계는 새벽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다섯 시간 후면 기말고사인데 수학 전공과목이라 남은 서너 시간 더 공부한다고 낙제를 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 이다.
성적이 좋지 않아 여름에 계절학기를 들어서 조금이나마 만회를 해보려던 것이 원래 목적이었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는 혼란속에 일단 좋은 성적이라도 거두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 계절학기라 뒤늦게라도 수강취소를 하면 환불은 안 되도 성적에 반영이 되지 않아서 시험을 보기 전에 수강취소를 하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어머니께 말씀은 드려야 될 것 같아 상황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걱정이 섞인 화를 내시며 당장 비행기표를 사서 최대한 빨리 입국하고 바로 입대하라고 하셨다.
전화통화가 일분도 채 되기 전에 입대하라는 말씀을 하셔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군 입대에 대한 생각을 전혀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미국 시민권도 있는데다 미국에서 사는 게 익숙해져서 미국 에서 졸업과 취업 등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면 군대를 안 가고 미국에서 눌러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애국심과 자부심을 가졌던 어렸을 적을 상기하고 한국에서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같이 보내 가족보다도 마음이 잘 통했던 중학교 친구들을 떠올리며 비록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싶지만 나중에는 한국에서 살고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이중국적을 위해 군대를 언젠가는 가야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이처럼 군 입대에 대해 상반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입대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으려면 무엇을 해야 될 지 너무나도 막연하기만 했던 나에게 군대에서 보내게 될 21개월의 시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나는 2011년 10월 24일에 덤덤히 입대를 했다.
영주권자들은 복무희망지역 순위를 정하고 정기휴가를 길게 나갈 수 있는 등 몇 가지 작은 혜택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혜택들 때문에 입대를 결심한 것도 아니었고 입대 전엔 아예 몰랐던 사실들이다. 내게 군복무가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이유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갈지 생각할 시간을 준 것과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미처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을 만회할 수 있는 패자 부활전과 같은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여단장님께서 병사들을 모아 교육하실 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군대에서 몸 건강히 다치지 않고 제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히 이뤄나가야 할 최저 요구사항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그렇다. 이제 건강하게 제대만 하는 군대시절은 지났다. 피가 끓는 나이에 꿈이 있어 야 된다. 꿈이 있어야 목표가 있고 목표가 있어야 이루는 게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입대하기 몇 달 전에서야 남는 것은 독서와 공부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지인의 권유로 읽게 된 책을 통해 나는 투자에 관심을 가져 기업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펀드 매니저가 되고 싶은 꿈이 생겼다.
내가 도대체 왜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싫어했을까 생각만 하면 화가 나고 게임에 쏟아 부었던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져서 이제라도 독서삼매경에 빠지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불타올랐다.
내 내면의 성장을 위해 읽어보고 싶은 자기계발 도서, 내 새로운 관심사이자 꿈이 된 경영과 투자에 관련된 도서, 교양을 쌓고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줄 소설 등 읽고 싶은 도서가 너무나 많아졌다. 남은 10개월 동안 책을 적어도 50권은 읽어 나가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내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분명 나는 내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사실에 뿌듯할 것이다.
내 개인적인 목표는 독서를 취미생활로 만들어 많은 양의 도서를 읽고 전역하는 것이지만 군대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정말 다양하다. 단체생활을 통해 만족스럽지 못한 자신의 성격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 수도, 게으르고 변명만 하던 자신의 몸을 가꿀 수도, 정해진 시간에 모든 것을 해야 되는 군대에서 체계적인 시간 관리를 습득해 갈 수도 있다.
21개월의 시간을 하루하루 불평하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저 전역일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짓이다.
아직 꿈이 없거나 군대에서 보내게 될 긴 시간 때문에 입대를 망설이는 사람들이게 말해주고 싶다. 군대라서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오히려 군대라서 더 간절하고 잡념도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 매일매일 함께 지내왔던 친숙한 사람들 곁에서 떨어지고 빠른 속도로 변하고 복잡하기만 한 사회에서 벗어나, 자기 성찰도 해보고 자신의 꿈을 키우고 목표를 세우기에 정말 좋은 환경인 것이다.
기회는 특별한 날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도전을 위한 기회다. 매일 무언가를 위해 열정적으로 도전하며 살고 있지 않다면 자신 의 꿈과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간을 군대에서 가져볼 것을 권한다.
성적과 돈 걱정 없이 자신의 앞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공짜 시간이기에, 자신의 꿈과 행복을 위한 소중한 시간이기에 길다고 느끼기엔 터무니없이 고마운 21개월의 자유를 누려보기 바란다.(Konas)
상병 정은재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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