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체제전환 가능성과 최근 권력변동
김정은은 북한의 3대 세습으로 등장한 올해 20대의 지도자다. 선대가 초래한 사회주의 67년 폐허를 딛고 건국 초기 김일성의 모습으로 등장한 그의 행동은 현재 파격으로 치닫고 있다. 신통하게 33세의 김일성을 닮은 그는 최근 퍼스트레이디를 대동하고 나서는 등 새로운 북한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문맹률 90% 이상의 해방정국에 등장한 김일성과 컴맹률 90% 이상의 오늘의 북한에 등장한 김정은은 닮은 점이 너무 많다. 김일성의 사회주의가 산업사회주의(industrial socialism)이었다면 김정일의 사회주의는 병영사회주의(military socialism)이요, 김정은이 가야할 사회주의시장사회주의(market socialism)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분명 새로운 길을 걸을 조짐이다. 북한이 변하지 않고 ‘우리식 사회주의’ 길을 계속 간다는 것은 불가사의다. 하지만 변화의 의지는 있지만 변화의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김정일로부터 상속받은 3대 고갈(리더십의 고갈·재화의 고갈·희망의 고갈)의 언덕을 넘어 과연 김정은이 북한 땅에 새로운 체제를 이식해 낼지 의문의 여지가 너무 크다.
북한적 현상의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아젠다는 왜 북한은 붕괴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그 해답을 정치 문화적 관점에서 찾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김일성 체제가 들어선 후 북한에서는 단 한 번의 시민봉기도, 군사 쿠데타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소규모 징후는 있었지만 대규모저항은 찾아볼 수 없다.
북한사회는 정치 문화적으로 전형적인 권위주의 형이며 나아가 가부장적 성격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근대적 민주주의 경험이 전혀 없었고, 외부로부터의 민주적 충격도 없이 다만 왕조사회에 이어 일제 식민통치를 거친 후 고스란히 스탈린식 김일성체제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는 유교적 정치문화 외에 포겔(Karl A. Wittfogel)이 말하는 이른바 동양적 수력전제주의(Oriental hydraulic dispotism)의 논리적 뒷받침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사회보다 강력한 1인 중심체제의 전근대적 수리국가(水利國家)의 정부는 전제적 권력을 부여받으며, 이 권력의 특징은 첫째, 효과적인 헌법적 규제 장치가 없고, 둘째, 사회적 억지수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배집단이 실제적인 자연조건 하에서 그 시대에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전제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문화형태가 통치자의 행동양식의 틀을 제공하게 되며, 셋째, 따라서 효과적인 억제를 위한 자연법칙과 문화형태 역시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북한정치에서 세습은 불가피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정당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김일성·김정일 정권 60여 년 동안 정치적 대안세력이 양성되지 못한 데로부터 포스트 김정일 체제는 세습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만약에 김정일이 좀 더 생존하였더라면 김정은 후계체제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일은 생전 후계문제에서 세습을 거부하면서 대안을 모색하던 중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자 서둘러 김정은으로의 세습을 대안으로 확정하였다. 세습의 후견그룹은 당연히 장성택·김경희 노동당 비서 등 만경대 가문, 그리고 최룡해 등 북한판 ‘태자당’ 친위그룹이었다. 히라이 히사시 저, 백계문·이용빈 역, 『김정은 체제』(서울: 한울, 2012) 참조.> 우려와 달리 현재의 북한 상황은 3대 세습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배의 분산과 책임 분담
김정은 체제에서 지배방식은 분산되고 책임 분담도 제도화 되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생전 김정일의 통치방식은 최측근 소수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측근정치’였다. 측근정치는 중앙에서 지배의 효율성을 부분적으로 드러낼 수는 있지만 권력의 정당성(legitimacy)을 여지없이 추락시켰다. 김정일의 측근정치의 특징은 ·군·정 각 분야를 수직적 종속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병렬관계에 놓고 김정일이 한 손아귀에 틀어쥐고 직접 통치하는 소수 통치방식이다. 이러한 권력의 집중과 분산은 위기관리 체계로서는 유용할지 몰라도 국가의 효율적 관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재앙과 피해를 불러오는 반민주적 통치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합리주의자인 장성택은 측근정치의 일부 수혜자일지는 몰라도 절대적 피해자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자연 장성택의 후견을 받고 있는 김정은이 이와 같은 구태를 박차고 지배의 분산과 책임의 분담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먼저 김정은은 기존의 선군정치에서 노동당 지배라는 전통적 지배방식으로 복귀 이와 같은 구태를 박차고 지배의 분산과 책임의 분담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먼저 김정은은 기존의 선군정치에서 노동당 지배라는 전통적 지배방식으로 복귀하는 데서 지배질서의 확립을 시도하고 있다.
한때 북한의 선군담론은 그 의미영역이 급속하게 확장되면서 북한 사회전체의 규범적 어휘(normative language)로까지 등극하였다. 김정은은 군이 병영으로 복귀하지 않는 한 북한의 재건을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이르렀고 2009년부터 노동당 지배로의 복귀를 시도하게 된다. 김일철 前무력부장·김영춘前무력부장·이영호 前총참모장 등이 심하게 반발하였지만 김정은의 지배질서 복구는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바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김정은의 신 통치철학이 대의명분으로 반대세력을 억제하고 있다. 현재노동당은 어느 정도 권위를 회복하였으며 경제총사령부로 불리는 내각도 제 기능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20여 년간 지속되어온 ‘선군지배’의 구질서가 북한 통치에서 완전하게 사라지려면 아직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 체제는 책임분담에서 노동당의 총체적지도 몫은 김정은이, 그리고 행정지도의 몫은 당 행정부장 장성택이, 경제발전의 책임은 내각총리 박봉주가, 현지독려의 몫은 총정치국장 최룡해 차수가 분담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수령제 사회주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배를 분산하고 책임을 분담하는‘분권형 정권’이라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물론 아직 당과 군이 절대적 힘을 행사하는 기형적 지배구조의 틀이 분쇄 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그 시도만은 평가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정치의 폐단은 언제나 당이 국가 위에 군림하면서 경제발전보다 이데올로기적 독트린의 프레임에 얽매어 자중지란을 일으킨 것이다. 북한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세습의 폐단은 정치에서 시작되어 경제를 고갈시켰고 결국 군대가 위기관리의 전면에 나서면서 사회주의 본래의 통치방식인 집중지도의 흔적마저 지워버렸던 것이다. 여기에 3대 세습까지 단행한 북한의 경우는 이제 그 체제의 존재가 신비스러울 정도에 이르렀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기존 질서를 바꾸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김정은 체제 정치권력의 특징
가신그룹의 부상과 후견통치
김정은 체제 출범에서 장성택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김정일이 2008년 여름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김경희와 장성택은 다급함에 사로잡혀 포스트 김정일 준비에 착수했다. 김정일은 생전 심각한 건강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2인자’를 절대로 만들지 않고 새로운 친정체제를 이끌면서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망으로 장성택은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2인자’로 되었다. 장성택은 현재 북한군 총정치국장 차수 최룡해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김정일의 최측근이었던 최룡해는 장성택이 당 중앙에서 청년동맹사업을 맡아 볼 당시 그 밑에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비서를 지냈던 인물이다.
2010년 6월 장성택의 최대 정치적 라이벌인 이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제강은 권력의 컨트롤타워인 당조직지도부에서만 37년을 근무했으며, 2004년 장성택 당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숙청을 주도했다. 또한 김정은 후계자 결정 내용을 당내에서 가장 먼저 전달한 인물이다. 이제강의 죽음이 장성택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임명 닷새 전에 발생했다는 것은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의 결과로 읽혀진다. 이제강 뿐만 아니라 조직지도부에서 군조직·인사업무를 1994년 이후 16년 동안 맡아온 이용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도 2010년 4월 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김정일 후계체제의 본산이며 ‘당 속의 당’으로 불리는 조직지도부 내에서 중앙당과 군부를 맡고 있던 제1부부장 두 명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조직지도부의 권력을 급격하게 추락시켰다. 또한 2010년9월 제 3차 당 대표자 대회이후 장성택의 최측근인 박정순 또한 이제강의 빈자리인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임명됐지만 지병으로 사망했다. 현재 조직지도부 내에 제1부부장은 김경옥이 독보적이다.
결과적으로 조직지도부의 약화는 조직지도부를 대체하는 장성택의 당 행정부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직지도부의 약화는 곧 김정일의 측근정치가 사라지고 공개된 행정력으로 지배하는 시대의 개막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 행정부는 북한 내 공안기능을 담당하는 곳으로 국가안전보위부·인민보안부·법원·검찰 등을 총괄하고 있다.
또한 인민군 총정치국과 호위총국·군 보위사령부도 직간접적인 영향범위에 들어간다. 김정은의 후계체제가 등장했지만 후계자의 조직체계를 마련해야 할 조직지도부는 오히려 공백상태가 됨으로써 김정은이 빠른 시간 내에 전국적인 조직체계를 만들 기회를 놓쳤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조직지도부를 내어 줌으로써 후계자에게로 급속하게 권력집중이 될 것을 부담스럽게 여긴 김정일의 판단 때문이다.
김정은 신진세대의 약진
김정은 체제 진입 후 북한의 권력구조는 두드러지게 젊어지고 있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당과 국가기구 인적구성은 김일성종합대와 평양·평안남도 출신, 남성으로 대표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 5월 통일부가 ‘김정은 체제의 당·정 주요인물’ 106명을 분석,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출신 대학은 김일성 종합대학이 35.5%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그 뒤는 김일성 군사종합대학(17.7%), 김책공업종합대학(9.7%) 순 이었다. 출신지역은 평안남도가 18.6%로 가장 많았고 평양(16.3%), 함경북도(16.3%), 함경남도(14.6%)가 그 뒤를 따랐다. 평남·평양·함북·함남 출신이 전체의 65.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연령은 69세(당 72세/내각 63세)로 내각 인사들이 당보다는 상대적으로 젊은 것으로 분석됐다. 정책지도기관인 당은 60~80대가 주축 이었지만 집행기관인 내각은 50~60대가 주류를 이뤘다. 당과 내각을 분석한 결과 당은 김일성·김정일 시대부터 현재의 김정은 체제에 충성을 바쳐온 인물들이 중심을 이뤘지만 내각은 실무형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중심으로 꾸려진 것으로 파악됐다. 남녀 성비는 남성이 무려94.3%를 차지해 남성중심 단면이 여실히 확인됐다. 내각의 상(相)급 이상의 여성비율은 2%에 불과했다.
북한은 최근 1년 사이 인민무력부장을 세 번이나 바꾸는 파격을 드러내고 있다. 75세의 김격식의 뒤를 이어 50대의 장정남(전 1군단장)을 등용하더니 물러난 김격식은 군 서열 2위인 총참모장으로 승격되어 혼란을 주고 있다. 또 총참모장직에서 물러난 현영철은 중부전선의 제5군단장으로 내려갔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명실상부한 후견자임에도 공식 직함이나 권력 서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최근에는 권력 전면에 나서는 등 정치적 위상을 과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장성택은 우선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조치로 지난 2012년 11월 29일 새로 제정됐다는 첫 ‘항공절’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기념행사의 참석자 호명순서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날 북한 매체들은 행사 참석자들을 소개하며 장성택의 이름을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했다.
이날 김정은 제1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총리 등 나머지 3명의 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불참했다. 장성택은 노동당 정치국 위원 중 가장 먼저 소개됐는데 특이한 것은 그의 이름이 김경희 노동당 비서보다도 앞서 호명됐다는 점이다. 북한 매체의 호명 순서에서 장성택의 이름이 김경희보다 앞선 것은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19일에도 북한 매체들은 김 제1위원장이 인민군 제534군부대 직속 기마중대 훈련장을 시찰한 소식과 함께 수행자를 소개하면서 장성택의 이름을 김경희의 뒤에 내보냈다.
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경희가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고 장성택은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남으면서 매번 김경희의 이름 뒤에 소개됐다. 장성택은 2012년 4월 4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했음에도 그동안 김경희보다는 ‘공식서열’이 낮은 것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북한 매체가 간부들의 이름을 소개하는 순서인 소위 ‘공식서열’은 실제 권력서열과는 차이가 있다. 장성택은 지난 2009년 1월 김정일 위원장이 김정은 제1위원장을 후계자로 내정할 때 김경희와 함께 김 제1위원장의 ‘후견인’으로 지목된 후부터 공식서열과는 별개로 북한의 실질적인 ‘2인자’로 불렸다.
결론에 대신하여
세상에 출범한 지 꼭 2년을 맞이하는 김정은 체제에 대해 성급한 진단을 내리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상속인이지만 선대가 걸은 실패의 길을 절대로 답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들은 앞에서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본다. 고갈과 피폐의 절정에 이른 북한 사회의 하부구조와 김정은 주변 후견인들이 김정은을 선대가 머물렀던 그 자리에서 안주하도록 또한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변화의지를 드러내는 몇몇 돌출 행동과는 달리 현재 북한의 현실은 아직 보편적 개혁·개방과는 거리가 먼 위치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수령과 당의 영도라는 수직적 질서 및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된 폐쇄와 고립은 북한 후진성의 근본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북한체제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으로 요새국가(fortressstate)를 들 수 있는데 요새국가는 폐쇄적이며, 정권안보를 제일 가치로 여기고, 여타 행위자나 제도의 간섭을 받지 않고 국가의 제반 업무를 총괄하는 우월적 지도자가 존재하며 구성원들을 목표의 달성을 위해 총동원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김정은이 김정일 사망 직후부터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내각 총리 최영림(후에 박봉주)에게, 그리고 행정지도에 대해서는 당 비서 장성택에게, 또 공사현장 시찰에 대해서는 총정치국장 최룡해 등에게 역할분담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역할 분담을 권력분산 내지 조정으로 이해 하기에는 아직 성급하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김정은은 책임을 회피하려 이와 같은 역할분담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정은 체제의 또 다른 딜레마는 요새국가의 명운과 개혁 개방의 진전이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딜레마는 결국 수령중심의 요새국가가 점차 변화하면서 개혁과 개방을 점진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에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요새국가로 남아 있으려 한다면 김정은 체제는 붕괴를 자초하게 될 것이고, 과감한 변화의 길을 선택한다면 김정은 체제에는 밝은 미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체제가 앞으로 정상국가로 되기 위해서는 ‘만경대 가문’의 혈통 승계는 이번 김정은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김정은은 통치에서 ‘세습’의 흔적을 과감하게 지우면서 권력구도를 개편해 나가야 한다. ‘태자당’의 줄 이은 세습, 군부의 권력독점, 기형적인 부의 편중, 이 모든 악재를 극복하면서 김정은이 과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지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제 김정은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과오의 유산’을 새롭게 정리하고 진화시켜야 할 ‘개발의 리더’로 자리매김하여야 할 것이다. 변화를 지향하는 김정은의 진로에 새로운 장애물도 등장하고 있다.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 아래 ‘우대’받던 군대가 상대적으로 소외되면서 불만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군단 사령부별로 옥수수를 구하기 위해 태국과 베트남 등지로 ‘출장단’이 나가고 있는데 이들은 무서운 저항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최고위 탈북자인 김00은 현재 북한에서 군부는 또 다른 불만세력으로 커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김일성의 외가인 강 씨 집안들이 4군단ㆍ8군단을 장악하고 있는데 이들이 고영희 부각 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2012. 7. 5 인터뷰 진행.>
북한의 ‘사상진지’는 무너지고 그 자리에 시장경제의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사상진지의 폐허를 딛고 새로운 경제개발론을 주창하고 있는 김정은 체제가 과연 어떤 결실을 거둘 수 있을 지 관심이 지대하다. 북한에서 당장 수령제 사회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겠지만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에 대해 학습과 수용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중국 청화대 국정연구센터 후안강 주임은 “눈부신10년, 중국 성공의 길은 어디에 있나”라는 글을 통해 중국이 세계 제2위(G2)로 올라서게 된 주요 원인이‘정치국상무위원회’란 ‘집단대통령제’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집단 대통령제는 다섯 가지 특징을 갖는다. 집단으로 학습하고, 집단으로 연구하며, 집단으로 결정하고 집단으로 업무를 나눠 협력하며, 집단으로 세대교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오늘 중국이 상전벽해의 개혁·개방성과를 이룩한데는 바로 이와 같은 서구의 ‘1인 대통령제’보다 더 민주적이고, 더 협조적이며, 더 효율적인 집단지도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집단대통령제는 곧 정치국 상무위원제를 말한다. 특히 중국은 등소평 이후 순리적으로 총서기직이 교체되어 이제 시진핑시대를 맞이하였다. 또 정치국 위원 65세, 정치국 상무위원 68세 최고위직에 연령 정년제를 도입해 나이가 든 고위층들은 자연적으로 물러나도록 권력 교체를 제도화하였다.
북한은 어떤가.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5인 중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80세가 넘었고 前 내각총리 최영림도 80대 초반이다. 그 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오극렬과 이용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양형섭 등이 80대 고령이다. 모두 관 속으로 들어가야 할 고위층이다.
김정은 체제가 최근 중국의 ‘사상해방’을 본따 모든 정치행사에서 김일성 부자의 노래 대신 애국가를 부르는 등 ‘우상해방’을 시작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고 있는데 일단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희생 없는 그 어떤 일시적 조치도 결코 북한의 체제 재생산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김정은은 알아야 할 것이다.(konas) 출처: 월간충호
안 찬 일(중앙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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