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농단, 국가파괴 세력 엄단하라
법과 법치의 존재는 법을 어기고 지키지 않기 위해 만들고 존치하는 게 아니라 어기고 지키지 않는 자를 제어하기 위해 존속한다. 이제는 법치가 바로서야 한다. 단호해져야 한다. 그게 자유민주주의사회를 지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갈가리 찢기고 찢어지며 발기발기 뒤엎어지는 현상을 되풀이할 것인가. 뉘를, 어떤 누구를 이익 되게 하려고 이토록 죽이고 죽이려는 혈투를 계속해 나갈 것인가. 오늘의 이 극한을 보고 두 눈으로 확인하노라면 참으로 찢어지는 심회를 풀길이 좀체 없을 것만 같다.
8‧15광복의 아침, 이 날도 태양은 어김없이 8월의 뜨거움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지난해도, 그 지난해도, 그리고 68년 전 해방의 그 날도, 그리고 65년 전 건국(建國)의 그 날도 뜨거운 빛을 발하는 해방과 광복의 ‘해’, 건국의 ‘해’는 대한민국 온 누리를 뒤덮었다. 그것은 감격과 흥분의 열기, 나라를 되찾았다는 벅찬 희열과 새로운 자유민주주의국가,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를 열었다는 희망의 빛, 뜨거움이었다.
그런데 2013년 8월 우리 앞에 다가온 8‧15의 열기는 68년 전과 65년 전 온 국민이 열광적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로 쏟아지던 그 뜨거움과는 전혀 다른 열기로 우리를 옥죄이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왜 인가?
매해 찾아오는 8월은 해마다 맞는 다 같은 8월이요 더 힘차고 굳세게 뻗어나가야 할 빛나는 역사의 분수령이 깃든 달인데 왜 오늘 이 시기에 우리는 ‘종북세력 타도’ ‘반역세력 척결’ 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하며 언제까지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는 양분된 구호를 남발한 채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는 국정 농단 선동세력들과 맞서야만 하는 것인가?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다. 서울역 광장과 청계광장에서 구부정한 허리에 지팡이를 짚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연호하는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의 분노 가득한 외침은 무엇을 표방하는 것이며, 시청광장에서 어린 자식까지 대동해 촛불을 켜고 몸을 흔드는 이들의 몸짓은 무얼 또 의미하고 있는가를....
올 8월은 이렇게 서로 상반된 외침이 대지를 달구고 있다. 우리는 안다. 아니 숱한 세월이 흘러간 당대의 시대를 열었던 어른들은 선연히 알고 계신다. 그 때도 그랬음을. 애국인사‧우익진영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의 열망과 좌익진영의 공산사회주의 건설을 향한 그 험악했던 행위가 얼마나 서로 사맞디 아니하게 표출되고 있었음을.
그런데 지금에 또한 그 시대의 동일한 현상이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호국선열이 목숨 바쳐 지켜온 위대한 대한민국을 미래세대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자고 국가수호 영토주권 강화를 외치는 반면, 한쪽의 종북세력들은 ‘민주주의 삭제’ ‘국정원 납치 민주주의’ 를 들먹이며 국가보안체제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국가의 안전보장을 무너뜨리려는 흉계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이젠 아예 노골적이다.
어떤 게 국가와 미래를 위한 것인가? 퍼뜻 하면 장외로, 유리한 기회(?)가 포착되었다고 하면 여지없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게 과연 이 땅의 미래를 위하는 것이고, 약방의 감초처럼 내세우는 민주주의며 미래세대의 주역을 위한다는 외침인가?
‘한국에서 민주주의 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낫다’는 절망적으로 봤던 그런 나라가 세계 8위의 경제대국,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고, 은혜를 갚는 나라로 성장하고 세계가 선망하는 자유민주주의국가로 발돋움 했다면 더더욱 미덥고 흥취가 솟구치는 국가로 발전의 동력을 가일층 점화시켜 나가야 하는 게 이 시대 우리들 모두의 책무를 지닌 책임 있는 자들의 소임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어디로 향하고자 하고 있는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위해 행동하고 일을 벌이고 있는가? 왜, 어찌하여 지금 당장의 순간도 헤아리지 못하면서 내일을, 미래를 위한다고 떠벌리며 촛불을 켜는 것인가? 촛불을 켠다는 자체가 그릇된 것이라는 게 아니다. 입만 벌리면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다’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지향점, 그 분명한 목표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서이다.
일국(一國)을 들었다 놨다(?)하는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국정책임자들이,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고 국민을 위해서 가겠다고 허세를 늘어놓는 ‘위정자’랍시 하는 선량들 정치꾼들, 민주주의와 평화를 논하는 세력들의 말장난에, 문화적 행태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TV앞에 나와 “NLL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논의도 없었다” 고 100퍼센트 거짓말로 국민을 우롱하고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8월의 거리를 활보하는 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렇기에 8․15전야 서울역 광장에서 재향군인회원을 비롯한 애국진영 인사들이 목이 메이도록 힘찬 외침을 가하며 ‘반역’ ‘반역자 처단’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을까.
지금 종북 무리들과 그들에 경도(傾倒)된 이들은 길거리 광장에서 다시 또 떼법을 동원해 국기(國基)를 뒤흔들려 하고 있다. 이제는 분명해져야 한다. 무엇이 ‘정의’이고 어떤 것이 ‘사악함’ 인가를 분명히 가늠해야 한다. 나라의 안위와 내 자식, 미래세대를 위한 길이 어떤 방향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나간 역사적 사실이 그저 지나고 흘러온 기록으로서의 역사만이 아님을 직시하자. 개인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가 말로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듯 국가안보 역시 행동의 수반, 피와 땀의 댓가 없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그저 얻어진 자유로서의 자유가 아니듯 국가의 통치행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어떠한 행위든 행위는 행위 그자체로서 책임을 수반하는 길임을.
8‧15해방 68주년, 건국 65주년 아침 태극기를 내걸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이 땅에 태어나 태극기를 다는 나 자신이 자유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하는 역할론과 책임의식이.
옳은 판단일지는 모르겠으나 법과 법치의 존재는 법을 어기고 지키지 않기 위해 만들고 존치하는 게 아니라 어기고 지키지 않는 자를 제어하기 위해 있을진데 왜 이 사회는 그간 그런 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이제는 단호해져야만 한다. 그게 자유민주주의사회를 지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현오(칼럼리스트. 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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