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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서울 시가전 승리의 역사적 의의

“우리나라의 해방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쟁취한 것’”
Written by. 이영찬   입력 : 2013-10-29 오후 3: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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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침략자에게 빼앗겼던 우리나라, 어떻게 찾은 나라인가? 를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선열님들의 피와 눈물을 늘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광복 직후의 교육에서는 우리나라가 연합군의 승리와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되고 독립 된 것 인양 가르쳤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일본의 패망이 조국의 해방을 앞당긴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가르칠 때, 거기에는 51년 동안(1894∼1945) 30여만 겨레가 목숨을 바친 독립항쟁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 대한민국(임시정부) 27년간의 ‘독립운동 총괄 지도’가 있었다는 역사 사실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해방과 독립이 연합군의 승리로 ‘주어진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쟁취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열단원으로 활약하면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과 교전 중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의 생을 조명하는 ‘서울 시간전 승리 90주년 학술세미나’가 29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사)김상옥 의사 기념사업회와 (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공동 주관으로 열렸다.

 ▲ 일제하 서울 시가전 승리 90주년을 맞아 김상옥 의사의 역사적 공훈을 기리는 학술대회가 29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사)김상옥 의사 기념사업회와 (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공동 주관으로 열렸다.ⓒkonas.net

 이들 단체는 학술회의에 앞서 김상옥 의사에 대해 “한 사람의 노동자, 애국자, 장군, 의로운 선비, 혁명가, 신자 그리고 전혀 두려움 없이 물러서지 않던 영웅호걸”이었다며 “김 의사의 장쾌한 의거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처단 하얼빈 의거와 더불어 항일 독립투쟁의 ‘또 다른 전설’이 되어 당시 독립지사들에게 독립투쟁의 궁극적인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국의 광복을 되찾고 오늘날 번영된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 되고 있다”고 김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드높였다.

 이어 윤우 (사)의병정신선양중앙회 회장은 ‘김상옥 의사의 일제하 서울 시가전 승리와 그 의의’에 대한 주제발표에서 “김 의사는 독립유공자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투쟁 방략을 실천한 투사”라면서 “서울 시가전은 장소 면에서 식민통치의 심장부인 서울 한복판이었다는 특성상, 만주의 독립군이 부대단위 전투에서 승리한 것과 맞먹는 승리이자 역사상 서울에서 거둔 유일한 항일 승리이자 값진 유산”이라고 평가 했다.

 김상옥 의사 서울 시가전 승리 90주년을 맞아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주최로 김상옥 의사를 주인공으로  의열단의 활약을 다룬 연극 '불령선인'을 제작해 11월28일부터 12월8일까지 열흘 동안 NH이트홀에서 공연한다.

 김상옥 의사(1890∼1923)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1917년 조선물산장려운동과 일화(日貨) 배척운동을 전개하면서 3·1독립운동 이후부터 독립운동에 본격 투신했다.

 1919년 12월에는 암살단을 조직해 일본 고관 및 민족반역자에 대한 응징 및 숙청을 기도 했다. 1920년 4월에는 한훈(韓焄)·유장렬(柳漳烈) 등과 함께 전라도 지방에서 친일민족반역자 서(徐)모 외 수명을 총살하고 오성헌병대분소(烏城憲兵隊分所)를 습격해 장총 3정과 군도(軍刀) 1개를 탈취하였다.

 1920년 10월 상해로 망명, 11월에는 임시정부요인 김구(金九)·이시영(李始榮)·조소앙(趙素昻)·신익희(申翼熙) 등과 독립운동 거사계획에 참여하는 동시에 의열단에 입단했다.

 1922년 10월 권총 3정과 실탄 800발 및 폭탄 그리고 항일 문서를 휴대하고 서울에 잠입한 뒤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인 경찰 및 어용신문 매일신보사의 사원 1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후 은신처가 발각되어 19일 일경과의 총격전에서 일경 15명을 살상했지만 중과부적으로 다리에 총상을 입고 남은 한 발의 총탄으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겨 33세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이에 정부는 김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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