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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사회가 껴안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자유주의는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지향한다. 다양성은 다름에 대한 관용에 의해서만 보장된다. 그러나 관용에는 한계가 있다.
Written by. 류근일   입력 : 2013-12-01 오후 9: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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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사회를 달구는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정부의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에 대한 찬반논란이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해산찬성이 45%, 해산반대가 33%였다. 반대의 이유는 ‘다양성을 위해서’라 했다. 이런 결과는 무얼 말하는가? “자유민주주의는 어디까지 다양성을 껴안을 수 있는가?” 그리고 “어디서부터는 껴안을 수 없는가?”가 쟁점화 했음을 의미한다.

 이 쟁점은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의 대립을 연상시킨다. ‘해산찬성 45%’가 자유주의인 셈이고, ‘해산반대 33%’가 다원주의인 셈이다. 자유주의와 다원주의는 서로 비슷한 듯해도, 둘 사이엔 세계적으로 첨예한 대립이 있어왔다.

 자유주의는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지향한다. 다양성은 '다름'에 대한 관용에 의해서만 보장된다. 그러나 관용에는 한계가 있다. 관용할 용의가 있는 상대만 관용하는 것이다. 관용할 용의가 없는 상대는 관용의 공동체에 끼워줄 수 없다. 이게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이런 국가에서 사람들은 사적(私的) 영역에선 모두가 서로 다르다. 다를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러나 공적(公的) 영역에선 ‘시민’이란 직분에서 모두가 서로 같다. 같을 의무가 있다(civic unity). 그리고 이 '같음'에 충성선서(civic allegiance)를 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런 다양성과 관용을 공동 관리하는 포괄적인 잣대다.

 다원주의 또는 다문화주의는 소외된 인종(집시, 유색인), 소수민족, 이슬람 이주민 등 비주류들의 ‘다름’을 인정하라”는 요구다. 여기까진 자유주의와 다원주의가 엇비슷이 간다. 자유주의도 그런 요구엔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원주의가 “자유민주주의만이 포괄적 원리가 아니다.” “그와 반대되는(iliberal) 입장도 대등한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하면서부터, 둘은 갈라서게 된다.

 자유주의는, 자유를 깨려는 입장도 자유 공동체의 주주(株主)가 돼야 한다는 다원주의의 주장은 모순당착이라고 반론한다. 자유주의는 나치와 볼셰비키에는 독(毒)이고, 나치와 볼셰비키는 자유주의 사냥꾼이기 때문에, 독과 사냥꾼더러 ‘한 지붕 두 식구’로 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설령 한 집에 든다 해도 결국은 파국으로 치닫게 마련이란 것이다.

 이래서 자유국가들은 다원주의의 요구를 어느 정도만 받아들인다. 소외된 집단들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시민권을 늘리는 것은 오케이(OK)다. 그러나 자유사회를 파괴하는 집단까지 인정하라는 요구는 노(No)다. 문화, 사회, 법익(法益)의 폭은 넓히되, 자유사회의 울타리만은 엄격히 지킨다는 것이다. 관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선 긋기’인 셈이다.

 이 ‘선 긋기’는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에게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 자유주의는 다양성을 위해 국가가 더 많은 ‘다름’을 껴안을 것을 요구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헌법 밖 다름’은 안 된다고 해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표까지도 “헌법 밖 진보는 안 된다”고 했다.

 통진당이 ‘헌법 밖 진보’인지 아닌지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판결은 아직 나와 있지 않다. 정부는 그래서 해산심판을 ‘청구’ 한다고 했지, 해산을 ‘집행’ 한다고 하지 않았다. 다원주의자들은 정부가 그런 ‘청구’를 한 것까지 반대하지만, 그건 정부더러 헌법이 정한 일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피니언일 순 있어도 법치주의 차원은 아니다.

 다원주의자들은 또 “통진당을 그냥 내버려 두면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그들은 ‘정당보조금 369억+6억’을 받아갔다. 국회엔 ‘혁명 교두보’라는 것도 생겼다. 민주당과 이면합의를 해선 지자체 자리들도 훑어갔다. 이렇게 그냥 내버려진 상태를 ‘변혁’ 쪽에선 ‘합법토대 구축’이라고 자부한다.

 다원주의자들은 “선거로 심판할 일에 왜 정부가 나서느냐?”고도 했다. 그러나 투표는 내막을 다 알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북의 대남공작부서는 왕재산 간첩단에 이렇게 지령했다. “진보적 민주주의, 반전평화, 민주변혁을 앞세워라.” 이러면 일부 대중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 말들이 뭐가 나쁘냐?“ 이래서 RO가 조종하는 자동차를 정치 레이싱 경기장에 방치할 수만은 없는 게 자유국가의 법치다.

 문제는 북한-민혁당-왕재산 같은 흐름이 통진당에도 와 닿았는지 안 닿았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그러나 이건 사법부의 몫이다. 법정 밖 자유주의로서는 다만 자유국가의 통상적 원칙만 되새기면 될 것이다. 다양성은 네오 나치나 극좌까지 포함할 수는 없다고 한 왕년의 서독의 원칙 같은 것 말이다.

  *** 위 칼럼은 조선일보에 기고하기 위해 작성했던 것이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건(件)이 돌출하는 바람에 그에 관해 쓰기 위해 유보했던 것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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