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폭도와 희생자 조속히 선별해야 한다!
“당시 저는 16세 소년이었습니다. 선친은 우리 지역 선거관리위원장이셨습니다. 사건은 (1948년) 4월27일 일어났습니다. 폭도 20여명이 우리 집을 급습해 아버지를 끌고 가고, 집안에 있던 생필품들을 탈취해 갔습니다. 어머니가 경찰에 구조를 요청했으나 찾지 못하고 이후 5월8일까지 지역 내 선거관리 위원장들이 연이어 납치․피살되었습니다. 그리고 5월9일 마을 주민들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을 봤는데 인솔자가 무장폭도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5월10일 선거를 하지 못하게 끌고 간 것이지요. 그 뿐 아니라 인근 지역 선거관리위원분들이 하나 둘 숨져갔습니다. 선친께서는 납치 38일 만인 6월3일 야산 소나무 숲에서 피살된 채 발견됐습니다.”
발표자의 표정은 66년 전 일을 마치 엊그제 일어난 사건처럼 기억하며 준비한 원고 내용을 읽어갔다. 선친의 피살, 무장대에 의해 공포 속에 끌려가던 마을 주민들, 지역 내 선관위원들이 차례로 피살되던 당시 상황을 증언할 때는 비장감이 묻어나는 모습이기도 했다.
3월 17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제주4․3사건 바로잡기 대책회의’ 가 주최한 기자회견 자리에서였다. 무장 폭도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해 이후 지난(至難)한 삶을 살아야 했다는 희생자 유족대표 ‘ㅇ’씨는 한동안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이 날 ‘제주 4․3사건 바로잡기 대책회의’가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은 정부가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고자 하는데 대해 ‘폭도’까지 포함된 희생자를 추념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내외에 알리고 잘못된 내용을 정부에 상기시키기 위함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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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3일 제주도에서 발생한 4․3사건은 ‘남로당과 그 휘하의 유격대 등 좌익집단에 의한 5․10선거 반대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하여 일으킨 폭동사건’(세계백과대사전, 1967.3)이며 “제주 4․3은 공산당의 폭동으로 일어났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 주어야 한다”(김대중 전 대통령, 1998.11. CNN방송 인터뷰)처럼 공산당 폭동 사건이다.
결국 제주 4․3사건은 1948년 정부가 5․10총선거 일정을 공표하자 5․10선거 반대를 위해 남로당 제주도당 김달삼 외 400명의 좌익폭도들이 4월3일 5․10선거 반대를 위해 제주의 12개 경찰지서를 공격, 순경들을 살해하고, 양민을 학살하면서 시작된 무장반란이다. 그럼에도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단장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무이사. 현 서울시장)은 좌편향 왜곡보고서에 희생자 심사위원회(위원장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는 3대 남로당 인민해방군 사령관 김의봉 까지 전부 4․3사건 희생자로 만들고 이승만 대통령과 국군, 경찰은 가해자로 만들고 말았다.
그 날 기자회견에서 주최 측은 정부에 대해 강한 어조로 촉구했다. 4․3사건 추념일 제정에 앞서 좌익폭도들을 희생자 명단에서 빼야함을 주문한 것이다. “제주 4․3사건은 민중봉기가 아니고 5․10선거를 막기 위한 좌익폭동으로 무고한 희생자는 마땅히 추념해야 하지만 폭동 주모자까지 추념할 수 없다” 는 주장이다. 당연한 주장이자 논리였다.
대책회의는 이에 앞서 언론광고 성명을 통해 “남로당 제주도당 인민해방군사령관을 지낸 김의봉을 비롯해 강정호(국군41명 탈영사건 주모자, 대정지서 습격. 경찰 학살), 김완식(남로당 제주도당 인민해방군 참모장. 무장대 핵심간부) 등 관계자 등을 거명, 공산폭도 1천5백명이 희생자 명단에 포함돼 4․3평화공원에 위패가 있다”며 기자회견에서도 인적사항을 공개하기도 했다.
제주 4․3사건은 우리사회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제주도는 말할 나위 없고, 정․관계, 학계를 포함해 시민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격한 이념논쟁의 한 축을 형성해 왔으며, 역대 정권에서도 경중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4․3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크게 등장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불이 지펴 1999넌 말 국회에서 4·3 특별법이 제정되고, 정부는 이 법에 따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4·3 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대에 절정에 달했다.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가 4.3을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한데 이어 노 대통령은 2003년 10월 31일 제주 라마다호텔에서 가진 제주도민과 오찬간담회에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 차원의 사과를 표명했다. 노 대통령의 행보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2006년 4월 3일 대통령으로는 처음 ‘4·3 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12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유세차 제주를 방문, 서귀포광장에서 “전 국민의 가슴 아픈 역사로, 정부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며 “4·3추모기념일 지정을 포함해 제주도민의 아픔이 해소될 때까지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리고 1년 3개월이 지난 3월 18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제주4·3희생자 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하는 내용의 '각종 기념일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지금까지 민간 차원의 행사가 올해부터 정부 주관 행사로 격상케 된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촉구하는 ‘폭도’와 ‘희생자’의 명확한 구분과 선별이 이어져야 하고, 제주 4․3평화공원 내에 설치된 날조, 왜곡, 과장된 전시물들의 철거와 잘못된 진상조사보고서에 대한 재검토 작업도 이뤄져야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부가 ‘추념일 지정’과 관련해 “조속한 시일 내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에서 관련 법령에 따라 철저한 재조사 및 검증, 재심사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할 계획이다”고 밝혔지만 지지부진 시간끌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실무위원회 역시 분명하고도 올바른 시각을 가진 인물들로 선정되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4월2일 대표 발의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 의원은 이 개정법률안에서 “제주 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에서 희생자로 결정한 14,032명 중에 일부 남로당 핵심 간부와 당시 무장대 수괴급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희생자의 가족들이 ‘4․3희생자 추념일’ 지정을 반대하는 상황으로까지 번져가는 등 ‘4․3희생자 추념일’ 지정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며 “정확한 진상규명을 통하여 가해자와 희생자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정부 지정의 추념일로 확정된 상태에서 더 이상 왈가왈부 소모적 논쟁을 필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정부나 하 의원이 밝힌 것처럼 우선 폭도와 희생자는 분명하게 가려져야 한다. 그이후 후속조치들도 신속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프고 시린 비극의 현대사를 바로 잡는 게 되기 때문이다.(Konas)
이현오(칼럼리스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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