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①〕공 익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3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최우수’ 글임. (편집자 주)
2013 6월 xx일
‘아, X발‘ 욕부터 나온다. 물기 가득 머금은 스펀지 같은 몸을 일으켜 세운다.
동료 A가 말한다.
“1번 창구 앞, 휠필!”
“알았어.”
10년도 더 된, 흰 옷을 입고 누우면 시커먼 먼지가 묻어져 나오는 소파에서 일어나 아무렇게나 너부러진 공익 상의 남방 하나를 대충 골라잡는다. 서로 엉켜져 있는 휠체어들 중 제일 멀쩡해 보이는(?) 놈으로 하나 골라잡고 매표소 1번 창구로 느긋이 걸어 나간다.
‘새벽 댓바람부터 내 단잠을 깨우는 xxx는 누구야..’
세상에서 가장 얄미운 사람이 매표소 앞 자그마한 쇠의자에 앉아있다. 푹 꺼진 어깨가 누가 봐도 노인이다.
“할머니, 휠체어 부르셨죠?”
중학교 2학년 사춘기 소년처럼 날카롭고 차갑게, 찌르듯 묻는다.
“너무 고마워”
그 노인네는 대뜸 ‘고맙다’ 한다. 더 열 받는다.
“어서 앉으세요..”
여전히 뾰루퉁한 말투다. 연이어
“할머니, 표 주세요.”
할머니가 건네는 표를 낚아채듯 잽싸게 받아든다. 그리고 ‘도우미 신청서’에 날치기 글자로 대충 받아 적는다. ‘출발시간, 도착시간, 도착지역. 몇 호차, 몇 호실’ 내가 종이에 열차정보를 적어내는 중에도, 할머니는 휠체어에 채 앉지 못하셨다. 내가 휠체어의 발 받침대를 올리고 뒤에서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게끔 받쳐드리고 나서야 간신히 달팽이보다 느린 속도로 앉으셨다.
나는 할머니 귀 가까이에 입을 대고
“동대구역에서도 도우미 필요하시죠? 누가 역에 나오세요?”
라고 물었다. 노인은 잘 듣지 못한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난 항상 노인에게 말할 때, 귀 가까이 대고 소리치듯 말한다.
“아냐, 안너와. 거쪽에서도 이거 좀 혀줘”
행동이나 외모에 비해 목소리는 꽤 명쾌하고 쨍쨍하시다.
“네”
로봇처럼 대답하고 잽싸게 휠체어를 끌었다. 그 노인은 어찌나 가벼우신지, 아무도 앉치지 않고 밀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가 조금 애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 할머니도 참 말랐는데.’ 5번 홈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움직이는 네모상자 안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침묵이 싫어서 인지, 처음에 모질게 대했던 할머니께 죄송해서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할머니께 괜히 말을 걸고 싶었다. 무엇이라도 여쭈어 이 정적을 깨고 싶었다.
“원래 집이 부산이신거에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는
“아녀”
이어서
“친구들 모임한다거.”
“근데 왜 이렇게 아침 일찍 돌아가시는 거예요?”
“친구 집에 며칠 지내구 몰래 살짝 나왔셔.. 집에를 못 거게 허니..나 원”
“아, 그럼 대구에 사시는 거?”
“응. 대구는 너무 더워. 부산은 그려도 시원허네”
“아닌데.. 부산도 많이 더운데..”
“나 때문에 더운가벼. 미안혀. 땀나네. 얼굴에”
“아니에요. 괜찮아요.”
억지미소를 지어 보인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5번 트랙에 닿았다. 문이 열리고 깃털처럼 가벼운 그녀를 다시 밀었다. 아까보다 더 가벼워진 듯하다.
[13호차 11B]
훨체어가 13호차 까지 가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낡은 가죽 가방을 주섬주섬 뒤지기 시작했다. 뒤에서 보니 마치 귀여운 아기두더지 같았다. 13호차에 다다르고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발 받침대를 세우고, 브레이크를 꺽어 놓고, 천천히. 혹여나 자신이 넘어질까, 그녀는 내 손을 꽉 쥐고 일어났다. 악력이 꽤 세다. 갓 태어난 아기 돌보듯 조심히 계단을 함께 오르고, 좌석까지 조심히 모셨다.
그녀를 자리에 앉힌 뒤,
“그럼, 할머니, 동대구역에서도 도우미 나오게 하는 거 맞으시죠? 제가 연락 해놓을게요”
“응, 너무 고마워.. 학상. 너무 너무 고마워. 내가 작년에 무릎 수술 한번하고는 몸이 반병신 다 뎟어. 너무 고마워”
껄껄 하고 웃는다.
“네, 괜찮아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
“잠만, 잠시만”
급하게 내 옷자락을 갑자기 잡으시더니, 할머니는 내 손에 구겨진 종지뭉치를 쥐어주셨다. 뭔가 싶어 봤더니, 역시나.
“어우, 할머니. 저 진짜 괜찮아요.”
아까 아기 두더지처럼 땅 파던 모습이 아마 이 종이뭉치를 준비하시던 것 이었던 모양이다.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열차 내에는 사람이 많았다. 보는 눈이 많아서 나는 오버하며 할머니의 종이뭉치를 극구 사양했다.
“정말로 진짜 괜찮아요.”
그 얇고 가느다란 몸에서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끝내 그 종이 뭉치를 받고 말았다.
“아, 정말 괜찮은데..”
“아이라.. 내가 너무 고마버서 그라지..진짜로 너무 고마워. 진짜로”
“아휴.. 아니에요. 이제 차 출발하겠어요. 저 내릴게요.”
“진짜 너무 고마......”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
차가 출발 할까봐 후다닥 뛰어내렸다. 아니다. 사실은 더 이상 할머니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서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었다. 메아리처럼 울리던 그녀의 쨍쨍하고 귀여운 목소리. 텅 빈 휠체어를 끌고 되돌아가는 나를 누군가 계속 쳐다보는 듯 했다. 뒤통수에 뜨끈한 것이 느껴졌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고 싶었지만 보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고개 숙여 고맙다 할 일을 나는 걸음 몇 번, 팔 짓 몇 번이면 특별한 힘 들이지 않고 해낼 수 있다. 내가 내미는 손이 그 할머니에게는 암벽가의 든든한 밧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이렇게 나의 하찮은 도움 하나에 이정도로 고마워 해주시다니. 단잠을 깨웠다는 이유만으로 속으로 욕했던 내 자신이 차마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쥐새끼가 고양이를 보면 쫓기듯 도망치는 것처럼 후다닥 그 자리를 피했다.
트랙에서 벗어나 ‘맞이방’으로 나왔다. 2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이 성격 급한 ‘여름의 태양’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하늘이 유난히 맑고 청량하다. 부산역의 어마어마한 유리창으로 뜨거운 햇살이 쏟아졌다.
갑자기 생각났다. ‘아, 종이뭉치!’ 역 내에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시원한 쭈쭈 하나 골라잡았다. 드넓은 부산역 앞 광장과 거대한 분수, 개미떼 같이 어디론가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한눈에 다 보이는 곳으로 갔다. 휠체어에 브레이크를 넣고 앉았다.
‘아그작’ 탱크보이를 크게 한입 베어 문다.
할머니는 혼자 사실까? 왜 역에 아무도 안 나오는 거지? 가족들은? 나에게 돈 준다고 자기는 아무것도 못 사먹는 건 아닐까? 할머니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에 맘이 편치만은 않다. 갑자기 누군가가 머릿속에 번뜩인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휴대폰을 꺼내 문자 한통 보낸다.
[할머니, 아침 먹었어?]
에필로그
저는 부산역 공익근무요원입니다. 올해 1월 훈련소 입대 하였고, 2월부터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자신을 소개할 때, ‘부산역의 공익요원’이라고 하면
첫째, 다들 “지하철?”하고 묻습니다.
둘째, “거기도 공익이 필요해?” 라고 합니다.
그만큼 지하철 공익은 흔해도, 철도공익은 드뭅니다. 하는 일은 비슷할지 몰라도, 규모면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루이용객만 수 천 수 만 명에 달하고 명절이나 휴가철이 되면 ‘대한민국이 이곳을 지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 만큼 우리 부산역 공익들은 힘듭니다. 하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 자리를 못 찾는 시각장애인들을 대신해 그들의 눈이 되어주기도 하고, 신체적 결함 혹은 장애가 있어 움직임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휠체어를 이용해 그들의 다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타고 있는 전동휠체어를 무사히 열차 안까지 태워다드리는 천하장사가 되어드리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여행 중에 열차 내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물건을 찾아 드리기도 합니다.
이만큼 ‘공공의 이익 공익’ 이라는 두 글자에 적합한 일이 또 있을까?
항상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익도 사람인지라, 힘든 상황이 계속되고 밀려드는 도우미 일거리로 인해 열 받고 짜증 날 때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야간근무를 할 때 수면시간이 따로 있지 않은 부산역 공익은 굉장히 힘든 때가 많습니다.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항상 지쳐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공익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의 든든한 목발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통하는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를 가족처럼 생각할 순 없지만, 휠체어를 태워드리고, 부축을 해드리는 그 시간 동안만이라도 우리 집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대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위 이야기는 제가 직접 겪은 실화입니다. 저 일을 계기로 제가 모든 분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친 손자처럼 변했다고 자부 할 순 없지만, 일이 차 넘칠 때 마다 되새깁니다. ‘남을 돕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날 할머니가 그토록 고마워하시며 꼭 쥐어주셨던 종이뭉치의 진짜 가치는 무엇인가’ 하고 말입니다.
남을 돕는 행복은, 별 것 아닙니다. 값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대가가 아닙니다. 별똥별처럼 드물고 보기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초여름 새벽, 습기 가득 머금은 축축한 바람을 맞으며, 황금같이 쏟아지는 햇볕 아래에서 갓 뜯은 탱크보이 한입. 와그작 깨무는 것입니다. 자신이 도와준 사람으로부터 받은, 작지만 감사와 은혜 가득한 그것을, 온 마음을 다해 만끽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남을 돕는 행복입니다.(Konas)
김성중 (한국철도공사부산경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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