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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최고위급 전격 방남(訪南)에 대한 사전 분석

Written by. 김성만   입력 : 2014-10-04 오후 5: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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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인민군 차수),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대남 비서 등 11명이 4일 오전 10시15분에 고려항공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북한 선수단을 격려하고 오후 7시 폐회식에 참석한 후 밤 10시께 돌아갈 예정이다. 우리 언론은 북한 실세 3인방이 동시에 방한한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은 전날 우리 측에 고위 대표단의 방문계획을 통보했고 우리측은 이에 동의했다. 이들은 오전에 인천 오크우드 호텔에 도착하여 류길재 통일부장관 일행과 만남을 가졌다. 오후 1시50분부터 호텔에서 오찬 회담이 열렸다. 우리 측은 김관진 청와대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장관, 김규현 NSC 1차장 등이 참석하고 있다. 

 북한 최고위급 3인은?

 황병서(65) 차수는 지난 5월 총정치국장에 오른데 이어 지난 8월 25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2차 회의에서 북한 최고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승진하여 그야말로 실세임을 과시했다. 그는 지난 3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에서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고, 4월 초 대장으로 진급한 사실이 확인된 데 이어 같은 달 차수 계급까지 오르고 나서 군 총정치국장이 되는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황병서의 한국 방문은 그가 군에서 최고사령관인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뒤를 잇는 사실상의 ‘권력 2인자’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최룡해(64) 당 비서는 2012년 4월 제4차 당 대표자회에서 총정치국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등 요직을 맡았다가 지난 5월 황병서에게 총정치국장을 내준데 이어 8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 부위원장직에서도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장성택 후임으로 지난 8월 국가체육지도위원장에 임명된 것으로 확인돼 건재를 과시했다.

 특히 최룡해는 국방위 부위원장에서 물러나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왔음에도 국가체육지도위원장에 임명된 데다 근로단체 핵심인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등을 담당하는 근로단체 담당 당 비서를 맡은 점 등을 들어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양건(72) 비서는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원회 위원,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며 오랫동안 대남정책을 총괄해 온 ‘대남통’이다. 2007년 통일전선부장에 오른 그는 그해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직전인 9월 서울을 극비 방문해 정상회담 의제를 합의한 데 이어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남북회담 성사의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또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조문단)으로 김기남 당비서와 함께 서울을 방문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했다.

 방남한 이유?

 아시안 게임 폐회식 참석 이상의 목적으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북화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우리를 협박하기 위해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이렇다.

 ① 북한은 최근까지 우리 대통령 실명을 거론하면서 비난을 계속해왔다.

 북한의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의 정책국 대변인은 지난 2일 박근혜 대통령을 ‘미친개’, ‘정신병자’, ‘특등 대결광’이라고 맹비난하며, “짧은 혀 때문에 긴 목이 날아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지난달(8월) 24일 UN총회 연설에서 북핵 포기와 북한 인권 문제를 직접 거론한데 이어 국무회의에서도 이를 언급한 것을 놓고 “대북정책이라는 것이 실지로는 우리의 존엄 높은 사회주의 제도를 압살하기 위한 동족대결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꺼리낌 없이 드러내 놓은 셈”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쳤다.

 대변인은 “우리는 박근혜가 악청을 돋구어 줴쳐대는 북핵포기, 북인권 복닥소동을 절망에 빠진 가련한 정신병자의 몸부림으로, 비참한 말로를 앞둔 죄인의 단말마적 비명으로 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② 황병서가 군복을 입고 온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황병서는 총정치국장으로 김정은 다음의 군 서열이고 사실상 북한 통치권력의 2인자다. 김정은과 함께 핵무기 등 무력을 총괄하는 자다. 과거 총정치국장인 조명록 차수가 2000년에 미국을 방문하고 군복으로 클린턴 대통령을 예방했다.

 당시 조명록은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에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는 빅딜’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2013년 5월 중국을 군복으로 방문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중국 시진핑 주석은 최룡해(사복)를 만나 김정은의 친서를 받았다. 최룡해는 ‘김정은의 방중 요청, 중국과 북한 사이에 형성된 긴장관계 완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지 요청’ 등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방중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 남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 천안함 폭침에 대한 언질’ 등 당근을 제시하면서 ‘북한 핵과 인권 문제 거론 금지, 대북전단 살포 완전 중단,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국내의 좌파·종북 세력에 대한 압박 금지, 쌀과 비료 지원’ 등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들은 우리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무력도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할 수 있다는 수준까지 언급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따라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당한 과거 사례를 교훈삼아 북한의 협박과 화전양면전술에 속아서는 안 될 것이다.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를 조문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김기남 비서, 김양건 비서 등은 이명박 대통령을 청와대로 예방하고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김정일의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따라 제17차 이산가족 상봉(888명)이 2009년 9월 26일~10월 1일 금강산에서 있었다. 그리고 9월부터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남북 간 비밀접촉이 11월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북한이 5~6억 달러 상당의 대북지원을 요구함에 따라 추진이 어렵게 되었다.

 이를 핑계로 북한은 대청해전(2009.11), 서해5도 근해 대량 포격(2010.1), 천안함 폭침(2010.3) 등 무력도발을 해왔다. 그리고 북한의 우리 대통령에 대한 끊임없는 비난 등을 고려할 때 대통령이 이들을 만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김정은의 친서가 있다면 김관진 안보실장이나 폐회식장에서 정홍원 국무총리가 받으면 될 것이다. (Konas)

김성만 예비역 해군중장(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 해군작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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