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최고위급 대표단 방남(訪南)에 대한 사후 분석
북측 최고위급 대표단(11명)이 제17회 인천아시안 게임 폐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4일 10:10~22:25 인천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제외하고 우리 측 실세를 대부분 만났다. 그런데 이들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정되어 걱정스럽다. 결론부터 정리하면 북한 정권이 ‘갑(甲)’으로 행세하고 우리 정부는 ‘을(乙)’의 처지로 전락(轉落)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원칙에도 손상을 가져왔다. 자세히 살펴보자.
북측 대표단의 일정(10월 4일)
09:00: 김정은 전용기로 평양 출발
10:10: 서해 직항로로 인천공항 도착
11:14: 류길재 통일부장관 일행과 20분간 환담(인천 오크우드 호텔)
13:50: 김관진 안보실장 일행과 오찬 회담 (110분간, 인천 한정식식당)
15:50 아시안게임 북한선수촌 도착, 북한 선수단 격려
18:48 정홍원 국무총리와 14분간 환담(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
19:05 여야 국회대표 10여명과 10분간 환담
19:20 아시안게임 폐회식 참관(정 총리 임석, 김 안보실장, 류 통일장관 등)
21:33 정홍원 총리, 김관진 안보실장과 7분간 비공개 대화
22:25 인천공항 출발
무엇이 문제점인가?
① 북측은 하루 전에 방한 계획을 통보하고 우리는 당일 이를 수용했다.
북측은 우리의 국경일인 3일 개천절(공휴일) 오전에 방문계획을 전격 통보해왔다. 정상적인 판문점 채널이 아닌, 아시안게임 참관차 인천에 머물러 온 북한 김영훈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통일부에 구두로 전달했다. 청와대는 긴급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어 숙의 끝에 북의 제안을 수용키로 했다. 정부가 오후에 이 사실을 북한에 알리자 북한은 “대표단이 내일 아침 항공기를 타고 서해 루트로 인천공항에 내릴 테니 차질 없이 맞이해 달라”고 통보했다.
이후 청와대는 김관진 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NSC 상임위를 개최했다. 3일 야간에는 대통령 주재 NSC가 열렸다고 한다. 4일 오전에는 김기춘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하여 대책을 논의했다. 통상 국제대회 폐막식에 각국의 VIP 참가여부는 상당한 기일 이전에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국제관례다. 그래서 북한 정권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② 박근혜 대통령의 ‘북측 대표단을 만날 용의가 있다’란 제의를 북측이 거부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북측 대표단의 만남은 불발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북측 대표단을 만날 용의가 있었지만 북측이 이번엔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왔기 때문에 시간 관계상 청와대 방문은 이뤄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오찬 회담에서 우리 측은 “박 대통령을 예방할 뜻이 있다면 준비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했으나 북측은 “시간상 이번엔 어렵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남북 관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09년 8월에 북한 김기남 비서 일행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조문차 서울에 왔을 때 북측이 대통령 면담을 통일부장관을 통해 요청했으나 우리가 시간상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자 북측은 일정을 하루 연기한 후 이튿날 이명박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③ 북한이 2차 남북고위급 접촉을 수용한 것은 우리를 우롱하는 것이다.
우리 통일부 당국자는 오찬을 겸해 열린 회담에서 북측은 “2차 고위급 접촉을 남측이 원하는 시기인 10월 말~11월 초에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공개했다. 이 당국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남북이 모든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친서는 없었으나 모든 현안에 대해 협의하자는 그 자체가 메시지”라고 말했다. 또 북측은 “2차 회담이라고 한 건 앞으로 남북 대화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이라며 대화의지를 보였다고 통일부 관계자는 전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최대의 성과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난 8월 11일 우리 정부의 고위급 접촉 제안에 묵묵부답하던 북한이 4일 황병서를 통해 두 달 가까이 만에 답을 내놓은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북한의 대남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4일에 《화근은 하루라도 빨리 없애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켜 “청와대 악녀·늙다리 악녀·독초·역사에 다시없을 대결 광녀(狂女)” 등으로 비방하며 “없애치워라”라고 주장했다.
④ 북측에 제공한 과도한 의전은 국격을 손상했다.
북측 대표단의 황병서는 군 서열은 높지만 우리 군의 ‘기무사령관’에 해당한다. 최룡해는 우리의 ‘대한체육회장’, 통일전선부장은 ‘통일부장관’과 같은 격이다. 그런데 우리 측은 정홍원 국무총리,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장관, 천해성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 한기범 국정원 1차장, 김규현 NSC 1차장(남북 고위급 접촉 수석대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김학용·김영우·홍일표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원혜영·유기홍·윤관석·임수경 의원,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 등이 총동원됐다.
우리 언론은 이들이 대통령을 제외하고 우리 측 실세 대부분을 만난 것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북측은 황병서를 경호한다는 핑계로 호위총국의 경호원 3~4명을 밀착 경호하게 했다. 이는 국가수반을 제외하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리 좋게 분석을 해도 잘된 평가를 주기가 어렵다. 정부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북한의 ‘화전양면전술’에 속고 있지 않은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통상 새 정부가 들어서면 1~1.5년은 협박과 비난을 강화하여 소위 그들의 ‘남한 정부 길들이기’를 한다. 남북대화를 성사하지 못해 초조한 우리 정부는 8·15경축사 등을 통해 북한에게 대화를 제의(구걸?)하게 된다. 그러면 북한은 마지못해 유화책을 낸다. 우리 정부는 이를 평가할 여유 없이 바로 수용한다. 벌써 내년 초에는 남북정상회담도 가능하다고 다그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번 북측 대표단의 방남 행태가 과거와 다르지 않다. 2차 고위급 접촉(김규현 NSC차장-원동연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에서는 우선 해결과제로 ‘북한 핵문제,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대북지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Konas)
김성만 예비역해군중장(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 해군작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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