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 순국 82주기 추모식
“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이봉창 열사의 한인애국단 선서식 선언문)
대일 항쟁기에 동경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여 일제의 침략성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한민족의 자주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이봉창 의사를 기리는 제82주기 이봉창 의사 추모식이 10일 오전 효창공원 내 의사 묘전에서 열렸다.
(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문국진) 주관으로 열린 이 날 추모식에는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광복회 부회장 및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사 보고 및 식사에 이어 서울지방보훈청장의 추모사와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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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8월10일 서울 용산에서 출생한 이봉창 의사는 용산 문창(文昌)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초년시절 일본인이 경영하는 과자점 점원으로 일하다 1919년에는 철도국에 들어가 역부로 근무했다.
1925년 11월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노동으로 생활을 영위하면서 1928년 히로히토 일왕 즉위식을 참관하려고 교토로 갔다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9일간 구금을 당하면서 반일감정을 싹틔웠다.
1930년 임시정부를 찾아 상해로 망명한 이 의사는 한인애국단에 입단 선서식을 거행한 후 1932년 1월8일 일본 요요끼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환궁하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경시청 정문 바로 앞에서 폭탄을 투척하고 현장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
선생은 1932년 9월30일 동경 대심원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10월10일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임시정부는 광복 후 이듬해인 1946년 7월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돌려받아 1946년 서울 효창공원에 윤봉길, 백정기 의사와 함께 안장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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