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재판의 국제법적․역사적 재조명
안중근 의거 105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 재판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입장을 분석하고 국제법적으로 재조명하는 토론회가 동아시아역사시민네트워크 주관으로 10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8층 배움터에서 열렸다.
이번 ‘안중근 의사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역사적 재조명’ 주제의 시민대토론회는 우리 민족의 독립회복 뿐만아니라 동양평화를 위해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위해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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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국이 본 안중근의사 재판의 역사적 분석, 평가’ 발제에서, 일본이 안중근을 사형에 처하기 위해 전개한 치밀한 공작과정과 그 공작의 결과 안중근재판을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으로 이첩하고 변호사로 일본인만을 임명했다며 안중근의사 재판 관할권 문제와 재판공작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또 러시아가 의거가 일어난지 12시간 40여분 만에 안중근을 일제에 넘긴 역사적 배경은 한인에 대한 일제의 사법권 침탈에 대한 러시아의 묵인과 불법적인 재판선례에 따른 것이며, 러일전쟁 이후 한국의 사법권을 장악하려는 일제의 끊임없는 공작과정의 최고 정점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고 주장했다.
동국대 방광석 연구교수는 ‘일본에서 본 안중근의거와 한국병합’ 발제에서 “일본에서는 안중근의거를 통해 한국병합이 이루어졌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데, 안중근 의거가 한국병합의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1909년 중반에 이미 일본 정부의 병합방침이 정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병합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구미 열강과의 관계였다”며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기 위해서는 구미 열강의 승인이 필수적이었으나 1910년 7월4일 제2차 러일협약이 체결됨에 따라 일본의 한국병합 환경이 조성됐고, 특히 간도문제를 둘러싸고 열강의 간섭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어 일본이 서둘러 한국병합 시기를 앞당겼다고 주장했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는 ‘안중근 의사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분석과 평가’ 발제에서 일본이 안중근 의거를 테러리즘과 유사하게 보고 있지만 “일반 테러리즘이 특정 종교적 동기나 금전적 동기 등 국제사회의 전반적 동의를 받을 수 없는 목적으로 행해지나, 안중근 의거는 민족자결권에 기초한 일본식민제국으로부터 국권회복과 동양평화 수립이란 국제사회의 정의 실현 등 인류적 불의에 대항한 보편타당성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일반적 테러행위가 불특정 무고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안중근 의거의 대상은 일본 제국주의의 핵심인물인 이등방문에 한정됐고, 안중근 의사는 의거 이후 자신의 입장을 당당히 밝혔으며, 국제적으로 피압박민족들의 자결권 회복에 큰 동기를 부여했다”며 안중근의거는 국제법상 합법적인 교전행위의 한 형태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안중근 의거는 민족해방전쟁 성격을 띤 국제적 무력충돌로서 일본형법 적용은 불가하며, 만국공법인 전시 국제인도법인 1899년 헤이그 육전법 및 관습에 관한 협약 및 동 협약 부속서 규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재판 관할권 문제에 대해서도 당시 하얼빈은 청국 영토로서 러시아가 조차를 하고 있는 동양철도 부속지인 동시에 모든 나라에 자유지역이었으므로 러시아나 청국에 이 사건에 대한 재판권은 없고 안중근은 한국 국적이므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의 관할임을 주장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이 교수는 안중근 의거는 대한제국 의병과 일본제국 사이의 교전중에 발생한 사건이므로 테러리즘이나 단순 형사 범죄사건이 아니며, 안중근은 조직화된 의병의 참모중장으로서 교전자격을 가지며, 국제법상 군민병에 속하므로 1899년 당시 헤이그법에 근거하여 포로규정의 대우를 받아야 했고, 한국 변호사의 접근 금지, 짧은 재판기간, 언론권의 제한, 일본 형법의 적용 등 재판의 불공정성과 편파성 등을 국제법적 관점에서 지적하면서 안중근 의거 재판에 대한 역사인식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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