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부두에서 구한 미래
“생명을 구한 이들과 그 자손들은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로 일구어낸 대한민국 현대사의 일부분이자 산증인이 됐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고난과 역경을 담은 영화 ‘국제시장’이 개봉을 앞두고 영화 애호가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아버지 세대를 상징하는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가 어린 시절 맞이한 고난의 첫 관문으로,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이 등장한 것은 더욱 뜻깊다.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도 피란민들을 최대한 구출해 내자는 지휘관들의 결단이 없었다면, 현재 이 땅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압록강까지 진출했던 우리 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거듭하던 1950년 12월, 퇴로마저 끊긴 채 함경남도 흥남부두에 집결한 국군과 유엔군 병력 10만여 명은 수송선을 통해 해상 탈출을 감행해야만 할 긴급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애초에 유엔군의 철수계획은 군 병력만을 수송하는 것이었지만, 무자비한 숙청을 벌이며 남하하는 공산군을 피하려는 피란민 10만여 명을 차마 버리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미군 소속 민간고문이었던 현봉학 박사의 적극적인 설득 노력과 피란민과 함께 가지 못한다면 수송선을 거부하고 걸어서 철수하겠다는 국군 장병들의 결연한 의지로 결국 피란민들도 모두 구출하기로 결정됐다.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간 전개된 피란민 구출 작전 바로 다음 날인 25일에 중공군이 흥남으로 밀어닥쳤다는 당시의 기록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극적인 장면이다.
특히 이때 상선(商船)으로서 구출작전 참가를 거부할 수 있었음에도 선적했던 물자를 모두 내리고 피란민 구출에 앞장섰던 메러디스 빅토리아 호가 태운 민간인은 무려 1만4000여 명에 달했다. 이 배는 이후 ‘단일 선박으로서 가장 큰 규모의 구조작전을 수행한 배’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생명을 구한 이들과 그 자손들은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계 최빈국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로 일구어낸 대한민국 현대사의 일부분이자 산증인이 됐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피란민 10만 명의 생명을 구하기로 한 그날의 결단과 인도주의 정신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2014년 한국사회는 조금 다른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이들 10만 명과 이후 그들이 낳은 자식, 손자들, 그리고 그들이 인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이 현재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보면 그날의 결정이 ‘미래를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권희 (북한연구소 연구원)
* 출처 : 국방일보 12월10일 16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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