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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반(反)자유로부터 지켜야 자유이지, 잃으면 자유가 아니다’

파리의 반(反)테러 행진에 100만 명이 동참한 이유
Written by. 류근일   입력 : 2015-01-13 오전 8: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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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40여 개국 정상급 인사들이 파리의 반(反)테러 100만 명 행진에 동참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이날만큼은 손을 잡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멀어진 미국의 에릭 홀더 법무부 장관,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함께 참가했다. 유럽이 관용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선 불관용의 폭력만은 절대로 관용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한 사태였다.

 관용의 원칙 자체는 물론 불변이다. 그러나 극단적이고 정신병적인 광신(狂信)의 폭력만은 관용의 공동체에 끼워줄 수 없다. 이스라엘 총리와 팔레스타인 수반이 파리 100만명 시위에 ‘동반출연’한 것은 전 세계 모든 다양한 정파들이 그것을 함께 재확인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의 일부는 이렇게 말한다. “광화문 광장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를 수 있어야만 민주주의다.” “공산당이 합법화돼야 민주주의다.” “통진당을 해산한 것은 유신체제로 돌아간 것이다.” 운운.... 한 마디로, 대한민국을 없애버리려는 자유까지 관용하라는 소리다. 자유체제의 자유헌법에 기대서 ‘반(反)자유의 자유’까지 번식시키자는 소리나 다름없다. 이럴 때 적잖은 청소년들이 딱히 뭐라고 반박할지를 몰라 당혹스러워하곤 한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다. 당당하게 이렇게 선언해야 한다. ‘자유는 반(反)자유로부터 지켜야 자유이지, 잃으면 자유가 아니다.’라고.

 그렇다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파리의 100만 명 시위, 그것이 보여준 ‘다양성 속의 일치(一致)’ 그대로, 보수든 진보든, 여든 야든, 모든 정파들이 광신적 전체주의에 대한 공동의 거부(拒否)에 합의하고, 그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서 반(反)자유의 폭력에 '아웃'을 선언해야 한다. 통진당 해산은 바로 그 ‘아웃’의 첫 휘슬(whistle)이었다. 그래서 휘슬은 그것으로 끝날 수 없다. 우리 주변엔 자유를 악용해 자유 안에 둥주리를 틀고, 자유를 만끽하면서 자유를 깨려는 전체주의 음모들이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음모집단들이 다문화주의란 것을 자기들 식으로 왜곡해 “자유라면서, 다양성이라면서 왜 우리를 배척하느냐?”며 뻔뻔스럽게 대든다. 그들은 교활하고 집요하고 지독하고 야비하다. 이에 대항해 자유인들은 ‘자유와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선 반(反)자유와 전체주의에 온몸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고 정면으로 받아쳐야 한다.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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