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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이승만 박정희를 히틀러에 비유

Written by. 류근일   입력 : 2015-02-12 오전 8: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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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이 유대인의 학살에 대해 사과했다고 해서 유대인이 그 학살현장이나 히틀러의 묘소에 가서 참배할 수 있겠느냐.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했다고 해서 우리가 천황 묘소에 가서 절 할 수 있겠느냐”

 ‘정청래 발언’의 핵심부분이다. 히틀러의 나치즘과 군국주의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은 식민지 민족과 민중에겐 그야말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다. 히틀러의 나치즘과 일제의 천황제 파시즘은 또한 유태인 600만 명과 한국, 중국, 동남 아사아의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 살인자들이며 반(反)인도 전쟁범죄자들이다.

 ‘정청래 발언’은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을 그런 ‘악마 급(級)’들과 한 줄에 세운 셈이다. 그와 함께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공로도, 박정희의 산업화/근대화 공로도 더불어 먹칠당한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종류의 역사관은 “대한민국 건국은 이승만이 한 게 아니라, 김구 주석의 상해임시정부 때 이미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산업화도 박정희 혼자 한 게 아니라 민중이 한 것으로 돌린다.

 그러나 이는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짓이다. 김구 선생은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노선에 끝까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는 그야말로 ‘임시’였다. ‘임시’란 무엇인가? ‘미생(未生)’이란 뜻이다. 국가의 3대 요소인 영토, 인민, 주권 모두를 결여했다는 뜻이다. 이 3대 요소를 모두 갖춘 국제법상 국가의 실체는 1948년 8월 15일의 대한민국 건국으로 비로소 구현되었다. 그리고 그 건국을 주도한 리더는 다름 아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었다.

 산업화의 현장 역군들은 물론 근로자 등 대한민국의 일반국민이었다. 누가 이걸 부인하는가? 박정희 대통령도 늘 ‘산업전사들’ ‘자랑스러운 기능공들’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리더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산업화 혁명은 박정희라는 리더, 이병철, 정주영이라는 리더를 사상(捨象)하고선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셉 나이도 몇 해 전 어는 국내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산업화 성공은 (경제이론보다는) 박정희라는 퍼스낼리티(personality)가 이룩한 것이다.” 리더의 역할을 제쳐놓고 역사를 말할 양이면, 북한도 김일성 김정일을 빼놓고 이야기 하겠다는 것인가? 그럴 경우 평양은 아마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우리의 최고 존엄을 무시하고서도 살기를 바라는가?”

 중요한 것은 ‘정청래 식 발상(發想)‘을 가진 486들이 이승만, 박정희 부정(否定)을 통해 ’그들의 전혀 다른 역사관‘을 이 땅에 구현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이건 단순히 정책적인 다툼이 아니다. 세계관과 세계관 사이의 총체적 투쟁, 무한투쟁, 전면전이다. 이게 그렇게 무서운 싸움인 줄 모르는 채 어영부영 한 눈 팔고 있는 맹물은 오직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 뿐이다.

 국민은 ‘정청래 발언’에서 많은 것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간파할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바라는 것은 ‘정청래 발언’의 더 심한 후속편이 부디 많이 쏟아져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 교재(敎材)’가 될 터이니까...

 脚註 :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승만 박정희 두 리더의 과(過)를 덮자는 것이 아니다. 공(功)과 과(過)를 공정하게 갈라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정청래 발언'엔 그런 의미의 공정성이 없다.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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