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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화를 향한 함성, 대한독립만세

“3월 1일은 우리나라가 독립국임과 우리 민족이 자주민임을 전 세계에 선포한 날”
Written by. 박경목   입력 : 2015-02-27 오전 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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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일은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날이다. 지금의 우리에게 3월 1일은 봄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기 前 쉬어가는 공휴일, 묵은 겨울을 털어내고 새봄을 맞이하는 휴식을 취하는 공휴일 정도의 의미인 것 같다.

 3·1운동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운동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3·1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1919년 4월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1920년대 이후 해외에서의 강력한 항일무장투쟁도, 1943년 카이로에서의 미국·영국·중화민국의 조선에 대한 독립 보장도, 1945년 해방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3·1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이 됐고, 항일무장투쟁의 기폭제 역할을 했으며, 우리 민족의 독립을 보장받고 해방 이후 강대국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3·1 독립만세운동은 대외적으로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2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이었고, 대내적으로는 군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인 근대국가로 거듭나는 혁명운동이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은 국민의 염원을 담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정부 수립을 계획해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정부 내각을 구성했다.

 반대급부로 일제는 한국민의 강한 저항을 실감하고, 기존의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전환해 식민지배정책의 기조를 바꿨다. 그러나 이것은 허울뿐이었고 경찰 병력을 대폭 늘리고, 전국 각지에 대대적인 감옥시설을 짓는 등 한국민에 대한 감시와 처벌이 더욱 심해졌다.

 이런 식민지 상황을 극복하고자 한국민은 해외에서 일본 정규군에 맞서 강력한 항일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1920년 홍범도의 봉오동 전투, 김좌진의 청산리 전투, 1932년 한국독립군의 쌍성보 전투, 1933년 대전자령 전투 등이 대표적인 성과다.

 우리가 편히 쉬는 공휴일 3월 1일은 ‘독립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된 가슴 벅찬 우리 역사의 자랑스러운 날이다. 더욱이 일부 사회 지도층 인사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학생, 농민, 노동자, 상인, 포수 등 계급과 계층, 종교 등을 초월해 전 민족이 주체가 돼 참여했기에 큰 의미가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독립을 위해 뭉쳤던 것이다.

 이제 3월 1일은 훈련과 업무가 없는 단순한 공휴일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독립국임과 우리 민족이 자주민임을 전 세계에 선포한 날임을 기억해야 한다. 또 국내는 물론 중국·일본·미주 등 해외 각지에서 우리 민족 전체가 일제에 저항해 만세운동을 펼치며 자유와 평화를 되찾기 위해 투쟁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장)

* 국방일보 2월27일 19면 ‘오니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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