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太極 물결, 송파를 사로잡다!
한동안 가로수를 장식한 벚꽃으로 길가는 시민들은 시린 눈을 붙잡아야 했다. 지난 4월초 경남 산청군에 출장차 찾았을 때도 방문지 초등학교 운동장은 활짝 피어난 벚꽃으로 온통 눈(雪) 세상을 연출하고 저녁이면 인근 상가에서 흘러나온 불빛을 조명삼아 특출한 꽃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전국의 유명 벚꽃 길도 그랬지만 서울의 벚꽃 명소로 해마다 많은 상춘객들이 찾는 여의도 윤중로는 올해도 어김없이 형형색색의 빛을 자랑하더니, 필자가 거주하는 강동구 천호대로도 그에 질세라 크고 작은 벚나무들이 천호역 인근에서 암사역 까지 근 1km 거리를 하얀 눈 세상으로 변모시켰다. 봄의 향연은 벚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사람도 자연도 매 한가지. 세상을 물들였던 벚꽃은 불과 며칠 뒤 그 뒤를 쫒는 새로운 자연의 힘에 의해 스러지고, 시일의 변화 속에서 겨우내 앙상하기만 하던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며 새 옷으로 갈아입는가 싶더니 이번엔 좀체 보기 힘든 새 꽃나무가 두 눈을 사로잡으며 가던 발길을 붙잡는다.
바로 무궁화로 피어난 대한민국 태극화(태극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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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향심은 애국심에서 나온다’를 모토로 태극기 사랑운동,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오고 있는 서울 송파구(구청장 박춘희)에서다. 4월 마지막 주 일요일, 하늘은 높고 맑았다. 날씨는 초여름을 연상케라도 하듯 해맑은 햇살아래 봄날의 따사로움은 코 끗으로 스며드는 바람결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초록으로 물든 가로수들엔 또 다른 계절을 예비라도 하는 듯 파릇한 잎사귀들이 점차 무성해질 모양새를 갖춰가고.
자전거로 암사역에서 천호역, 몽촌토성역을 거쳐 잠실 송파구청을 지나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변 장식물들을 감상하다 급히 자전거를 세웠다. 구청 앞 탁 트인 잔디마당에 작은 태극기 수백여 개가 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가운데로는 마치 물위를 유영하는 수영선수의 힘찬 몸놀림과 같은 자태로 가슴을 휘어잡는 태극화(太極花)가 때맞춰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깊은 향기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정경을 보는 순간 지난 2012년 언젠가가 불현 듯 떠올랐다. 그 때도 봄날이었다. 중형·소형 태극기 수백 개가 잔디정원을 물들이며 눈길을 강하게 사로잡았었는데, 이번에는 더 진화된 아름다운 꽃으로 승화된 것이다.
가까이 다가갔다. 태극화는 또 다른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니 다른 그 꽃이 태극화로 피어난 것이다. 바로 우리나라 꽃, 대한민국 무궁화였다. 빨깡 파랑 검정 분홍색으로 장식된 어린아이 주먹만큼 한 무궁화 하나하나가 태극무늬를 만들고, 무궁화는 태극화, 태극기로 탄생돼 있었던 것이다.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으로 한 컷 사진을 담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태극화가 이렇게 피어날 수도 있구나’ 하는 마음에 선뜻 자리를 뜰 수가 없다. 봄 내음을 마음에 담아서일까, 나 또한 휴대폰에 몇 장의 사진을 담은 뒤 현장을 떴지만 그 날의 깊은 감명은 쉬 사그라들지 않았다.
다음날 업무를 대략 마무리한 뒤 송파구청으로 전화를 돌렸다. 담당 공무원의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애향심은 애국심에서 나온다’의 실천이라는 얘기다. 지역 내 버스나 택시업체와 협조해 태극기를 차량에 달거나 가정의 고장 난 국기 꽃이대를 고치고 교체 등 얼핏 보기에는 소소한 것으로 보이는 것에서부터 국경일이면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 수 있도록 장려운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고 알려준다.
구청 관계자는 또 “올해는 광복70주년으로 더욱 각별한 해가 되는 만큼 태극기 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며 “지난 3·1절을 기화로 태극기 정원을 조성해 구민들에게 태극기의 소중함과 나라사랑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는 지역 유치원생으로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가 모여 손도장 태극기도 만들며 나라사랑의 마음을 모았다”며 “아직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정원에 제작된 태극기(태극화)도 나중 석촌호수에 전시해 호수를 찾는 시민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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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공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필자의 마음이 더 환해지고 있었다. 지난 18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및 800여개 좌파단체들이 참가한 ‘세월호 참사 1년 전국 집중 범국민대회’에서 한 젊은이에 의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태극기가 불태워진 것이다. 일본인도, 북한 김정은 지령을 받은 자에 의한 것도 아니다. 우리 국민에 의해 수난을 당한 뒤여서 ‘태극기 사랑운동’을 전개하는 송파구에 감사하고 가슴 뿌듯한 마음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극기를 보호해야만 한다. 그리고 태극기를 사랑해야 한다. 태극기를 자랑스러워하며, 태극기를 국가의 일부요, 국민을 대표하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한번 돌이켜보자.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는 서양세력과 일본의 각축이 일기 시작한 1882년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하던 중 메이지마루호 선상에서 그려서 사용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후 1883년 3월 6일 당시 ‘조선국기’로 불린 태극기가 국기로 제정되었으며,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최초로 국기를 ‘태극기’라고 이름 붙여 사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민족과 더불어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같이한 태극기는 우리로 하여금 뼈저림과 저력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저력이 강할 때면 세계인 앞에 우쭐해 하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의 아픔은 이미 일제 강점기를 통해 뼈저리게 겪었다. 김연아 선수를 위시한 숱한 선수들이 세계 유수의 국제대회에서 시상대에 설 때 얼마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의 대상이었으며, 월드컵에서는 또 우리 국민을 어떻게 하나로 만든 단결의 매개체였던가.
지금도 난 첫 해외 나들이에서 겪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다르지만 1990년 말 그 때 대만과 우리나라는 가까운 수교관계였다. 타이뻬이 시 대사관을 예방해 대사관 옥상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뜨겁게 타오르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경험했는지 모른다. 절로 국기에 대한 경례가 올려 졌으니 말이다.
올해는 광복70주년이자 분단70년이 되는 해다. 태극기가 만들어진지 133년이 된다. 더 많은 국민이, 더 많은 가정이 태극기를 사랑하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송파구청 하늘위로 너울대는 태극화를 떠올리면서.(konas)
이현오(칼럼리스트, 수필가. 재향군인회 안보대응부장 / 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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