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鐵驥) 이범석 장군 43주기 추모식
철기(鐵驥) 이범석 장군 43주기 추모식이 11일 오전 10시 30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철기 이범석 장군 기념사업회’주관으로 거행된다.
이번 추모식은 조국의 독립과 대한민국의 건국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숭고한 나라사랑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유가족 및 광복회원, 국가보훈처 관계자 그리고 군 장성 및 기념사업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장군은 1900년 10월 20일 서울에서 출생, 1910년 사립 장훈학교와 1913년 이천공립보통학교를 거쳐 경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15년 조국광복의 큰 뜻을 세우고 중국망명을 결행해 중국군 정규사관학교인 운남 육군강무학교 기병과를 수석 졸업한 후 만주 항일무장독립운동의 요람인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 장교 양성에 매진하였다.
20세이던 1920년 10월에는 독립군 북로군정서 연성대장으로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함으로써 총사령관 김좌진 장군이 대승을 거두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1940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참모장과 주력부대 제2지대장(支隊長)을 역임하며 항일무장독립 투쟁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더불어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합작하여 국내 진공작전 수행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였으나 8·15광복을 맞이하여 실현하지 못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민족청년단을 창립하여 청년인재 육성에 진력하였으며,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하여 국가기틀 마련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50년에는 주중국대사, 내무부장관을 역임하였고 이후로도 정치적 활동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훈하고 1972년 5월 11일 향년 72세에 별세하여 동년 5월 17일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2묘역(1호)에 안장되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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