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 “죽어도 고향에 가서 죽고파”
추석 명절을 맞이해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여성회(회장 민경자)와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서울․경기지역에 거주하는 3명의 국군 귀환용사 가정을 방문해 위로하는 행사를 가졌다.
성동구에 거주하는 김 모(87세) 옹은 6․25전쟁 발발 당일 경기도 연천지역에서 인민군에 피포됐다가 지난 2003년 입국했다. 피포 당시 나이 20세였다.
김 옹은 일제 치하와 해방 후의 혼란한 정국에 이어 북한에 끌려가 산 인생까지 80평생 온갖 모진 고생을 겪었지만 “‘죽어도 고향에 가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며, 탄광에서의 고된 노동일, 결혼, 국군포로란 이유로 공부 잘하는 자식이 거듭 대학입학 추천에서 떨어진 일, 중국으로 탈출해 한국에 입국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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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옹은 조국을 위해 군대에 갔으면 싸우다 죽었어야지 포로가 되어서는 안되는데 정부에서 이렇게 배려해 주는 것이 감사하다며, 북한에 묻힌 국군포로의 유골을 한국으로 가져오는 일은 북한에 남은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특히 김 옹은 입국 후 북한의 탄광에서 같이 일했던 국군포로 90여 명의 명단을 제공하기도 했다.
중랑구에 거주하는 김 모(87세) 옹은 ’50년 7월1일 황해남도 옹진군지역에서 피포됐다가 지난 2001년 입국했다. 이후 ’06년에 부인이 입국해 현재 같이 살고 있으나 브로커를 통해 북한의 자녀를 한국으로 입국시키려다 적발돼 자녀는 북송되고 현재 생사확인이 불가한 상태다.
자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건강이 악화됐지만 다른 사람에게 신세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경로당조차 가지 않는다고 한다.
김 옹의 부인은 방문한 이들에게 “무한히 행복한 줄 알라”는 말로 평생 감시와 두려움 속에서 산 북한 생활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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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이 고향이라는 경기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김 모(74세) 옹은 휴전협정 직전인 ’53년 7월18일 피포돼 7월25일 군사재판에 회부, 징역 13년과 3년간 선거권 박탈형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교도소와 공장, 27년간 탄광에서 노역하면서 두 번의 탈출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해 독방에 감금되기도 했고, 사회에서도 감시대상 1호로 찍혀 김만철 일가 탈북, 푸에블로호 사건, 도끼만행사건 등 남북간 주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보위부의 집중 감시를 받았다.
23세에 북으로 끌려간 이후 53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으나 정착금을 모두 사기 당하고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로 연명하고 있다.
현재 북에 생존한 국군포로는 500여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80명이 입국, 40명이 사망하고 40명이 생존해 있다.
한편 재향군인회는 조남풍 회장 취임 이후 첫 안보자문회의에서 금년도에 중점적으로 추진할 안보활동으로 국군포로 송환문제에 향군이 주도적으로 나설 것을 결의했다.
이에 발맞춰 재향군인회 여성회는 각 지역단위 별로 사각지대에 놓인 귀환 국군용사를 주기적으로 방문, 위로하기로 하고 이날 위문품과 위문금을 전달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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