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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記] 이승복과 평창동계평화올림픽

"소년 영웅 이승복의 저항 · 항거의 안보정신이 평창동계평화올림픽으로 승화, 세계적 평화의 기념관으로 우뚝 서지기를!"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5-12-15 오후 4: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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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雪)의 고장이자 2018년 세계 동계올림픽 개최현장인 강원도 평창을 찾았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하면 우리나라 스키의 메카로 유명했던 용평면,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어릴 적 노래가사로 평창-용평을 먼저 배운 속사리 계방산 자락 운두령이다. 2011년 12월9일 이후 2015년 12월9일이었으니 정확히 3년만인 것 같다. 아마 2006년 겨울로 기억된 첫 만남으로부터 회사의 속사정으로 만나지 못하다 찾게 되었으니 그래도 적지 않은 만남인 것 같다.

 12월9일은 4~50대 이후라면 대부분 기억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다 북에서 남파된 무장공비의 손에 무참히 입이 찢기고 칼로 난자돼 학살된 당시 9살, 속사초등학교 계방분교 1학년이던 故 이승복군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그가 사랑하던 엄마와 남동생, 여동생이 잠들어 있는 계방산 묘역에서 열렸다. 묘역에는 새로운 가족도 함께였다. 아내와 어린 두 자식을 비명에 잃고 안타깝도록 지난(至難)한 삶을 살아오다 지난해 8월 죽도록 그립고 보고 싶은 부인과 아들 딸 곁에 영원히 함께 잠든 아버지 故 이석우님도 함께 였다.

 ▲ 계방산 자락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이승복기념관 내에 서 있는 고 이승복 상. ⓒkonas.net

 이 날 추모식은 매년 10월 평창군 교육지원청이 대관령에 개관(1975.10.14)했던 이승복 반공관이 평창군으로 이전 개관(1982.10.26)한 날을 기점으로 하는 추모식과는 별도로 (예)영관장교연합회가 그의 기일(忌日)을 맞아 12월9일 개최해 옴에 따라 기자도 동행한 것이다. 구태여 오랜 시간의 흐름도 아니었건만 그러나 3년은 긴 시간이었나 보다. 매년 서울에서 이승복 추모제에 참석하는 (예)영관장교연합회 회원들은 100명이 훨씬 넘어 항상 버스3대에 나눠 타 참석하곤 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차량 1대에 참석자도 40여명이었다.

 참석자들의 연령도 6·25한국전쟁참전 유공자로부터 월남전 참전 회원, 거기다 1968년 울진·삼척지구무장공비 소탕작전 등 숱한 대간첩작전에 직접 참가한 역전의 노병(老兵)들이었다. 세월은 이들 노병들의 발걸음도 비켜 갈 수는 없었다. 이승복 군의 묘역이 위치한 산비탈을 오를 때는 호흡도 거칠어지고 발걸음 또한 더디고 늦어지기도 했지만 눈빛만은 눈 덮인 산야를 굴하지 않고 호령호령하던 그 기개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1968년 12월9일 저녁 동네일을 위해 아랫마을로 내려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평화스럽게 바느질하던 엄마와 건넌방에서 동생들과 숙제를 하고 있던 아홉 살 이승복 군은 갑자기 들이닥쳐 먹을 것을 내 놓으라 윽박지르며 공산당 선전을 늘어놓는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잔당들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외쳤다. 이에 공비(共匪)들은 무자비하게 승복군의 입을 찢고 돌로 치고 칼로 찔러 학살만행을 자행했다.

좌파정권과 사이비 언론의 조작, 사라진 이승복

 이승복 학살만행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북한공산주의·공산당에 대한 잔학상에 다시금 몸서리치며 대관령에 그의 반공기념관이 개관되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관련 내용수록이, 학교에는 동상 건립과 반공웅변대회가 전국적인 주요행사로 개최돼 첨예한 분단현실에서 전 국민에 대한 안보의식 강화의 일대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좌파정권이 들어선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1992년부터 98년까지 당시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보도가 ‘사실이 아니다’(?)는 사이비 언론인과 이를 동조하는 종북좌파 세력들에 의해 이승복 사건은 큰 흠집을 남기면서 1997년 교과서에서도 완전히 사라지고, 동상은 아예 파 뭉개지거나 학교 뒤편 자재더미에 뒤섞인 채 웅변대회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로부터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2006년 11월24일 형사재판과 2009년 2월12일 민사재판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발언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불순세력들은 법의 철퇴를 맞았고 잊혀져가던, 잃어버릴 뻔 했던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는 역사적 사건의 실체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故이승복 사건은 한 일가족의 비극사가 아니다. 한 시대 한민족 전체의 비극과 아픔을 대변하는 축소판이기도 하다. 평생의 악몽(惡夢)으로 점철됐을 지난(至難)했던 그 순간까지 비명에 가족을 잃어야 했던 아버지 故이학구씨와 마찬가지로 1968년 12월9일 공비들에 의해 수십군데 칼로 난자돼 거름더비에 내던져졌다 발견돼 구사일생(九死一生) 살아난 형 학구씨와 또 다른 가족들의 고통 또한 말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에도 국가안보를 위해 피와 땀을 흘렸던 역전의 용사들, 현역시절 영관장교로 군의 중추적 역할을 다하다 전역한 뒤에도 ‘안보’에 관한한 한목소리를 내며 오직 국가안위를 염려해오던 (예)영관장교연합회(회장 권오강. 예, 육군대령)가 이 문제에 나섰다. 1999년 31주기부터 기일(忌日)추모제를 지내며 ‘이승복 사건 역사 다시 알리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권오강 회장을 비롯한 단체 회원들은 강원도 평창 이승복 기념관에서는 물론 서울의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 시청 앞 지하도 등 거리곳곳에서 ‘이승복 역사 다시 알리기’ 운동에 계절과 시간, 몸을 아끼지 않았다. 청와대를 위시한 교육부와 국방부 등 정부, 국회, 학교 및 교육기관, 지방의 관공서와 산하기관단체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문서와 책자를 직접 제작해 나눠주며 이의 중요성 부각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이승복, 그의 외침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12월9일 추모식에 참석한 박용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강원도 부의장은 기자와의 대화에서 이승복 역사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고 전하면서 “그 중심에 영관장교연합회 어르신들의 노고가 있었다. 여러 어르신들의 노력이 하나하나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부의장은 “지난 10월 이곳 이승복기념관에서 이승복을 기념하는 전국 학생 웅변대회를 개최했다. 대통령상을 제정해 열기가 아주 뜨겁게 진행됐다. 내년부터는 더 크게 활성화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렇게 준비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강원대학교와 민주평통이 공동으로 이승복 관련 세미나도 열 계획이고 설명했다.

 ▲ 12월9일 고 이승복 묘역 앞에서 분향과 함께 술잔을 올리고 있는 이승복의 형 이학관씨. 뒤로 부인과 두 아들이 지켜보고 있다. ⓒkonas.net

 그러면서 더욱 주목되는 점은 오는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연계한 평화운동 사업계획의 준비가 그것이었다. 이승복 사건의 복원을 위해 이승복으로 대표될 수 있는 반공, 안보 상징의 평창 관광지 이미지와 함께 평화를 되새기고 기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계하겠다는 발상이다.

 “이승복기념관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평화이념과 맞물려 세계평화의 상징으로 발전시켜 나가게 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실무적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념관을 찾은 관광객은 12만6,000명이며, 올해는 지난 9월말까지 6만9,000여명이 찾는 데 그쳤다고 한다. 반공의식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경우 한 해 60만 명이 찾는 강원도내 주요 관광명소였다는 사실과 견주면 허허로워질 뿐이다.

  이 날 추모식에 이 지역을 관할하는 강릉보훈지청장이 참석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올해(2015. 10.14) 이승복기념관이 국가지정현충시설물로 승격되었다. 괄목할만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이승복 추모제를 취재하면서 기자가 느낀점은 강원도 교육청은 물론 지역 교육지원청에서도 가장 홀대받는 곳이 이 기념관이라는 것이었다. 기념관장의 직급도, 직원수도, 예산배정도 그랬다. 그런 점에서 지금 당장 어떤 현저한 변화가 일기는 어렵겠지만 국가현충시설물 지정이나 대통령상이 제정된 전국 웅변대회개최, 지역 내 통일기관단체와 학계가 공동으로 세미나를 개최할 계획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가슴 뜨거워짐을 접하는 한편, 최근 확정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집필이 머지않아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도 수록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게 된다.

 “이제 조금씩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 감사하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앞장서서 이끌어 주신 (예)영관장교연합회 어르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날 노동리 이승복 기념관에서 버스 출발 직전 차량에 올라 탑승한 연로한 예비역 영관장교연합회 회원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이승복 군의 친 형수님께서 한 감사의 인사말이었다.

 내년 48주기 추모제 취재차 방문 시에는 그간 ‘이승복 역사 다시 알리기’ 운동이 얼마나 변화발전된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기대된다. 더불어 네덜란드의 안네 기념관이 전쟁의 참상을 느낄 수 있는 세계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던 것처럼 강원도 평창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로 함축되는 소년 영웅 이승복의 저항 · 항거정신을 어떻게 접목, 승화시킬지 벌써부터 가슴 설레게 된다.(konas)

이현오(코나스 편집장. holeekva@hanmail.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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