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복, 그의 정신도래가 필요한 오늘의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이승복 기념관이 위치한 개방산자락에 하얀 솜사탕 같은 눈발이 흩뿌리더니 이내 소복소복 쌓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솜사탕 눈발은 다시 빗방울로 변해 때 아닌 겨울비로 주룩주룩 내린다. 어쩌면 그 눈비는 자연 그대로의 ‘눈과 비’ 이기에 앞서 누군가의 아프고 서러움을 애달퍼 하는 눈물로 비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손끝에 와 닿는 초겨울 바람은 구태여 차가운 빗물이 아니더라도 몸을 움츠리게 할 판인데 얼어붙을 듯한 귓불과 새파래진 입술, 투박한 손끝을 스치는 용평면의 겨울 한기(寒氣)는 결코 예사롭지가 않다.
개방산, 운두령 고개, 새 무덤 오솔길..... 설핏 들어서는 연세 지긋하신 어른도 고개를 갸웃하게 할 지명일지니 요즘 대학생 등 젊은이들에게 이 지명과 더불어 ‘반공소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와 같은 어휘는 낯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68년 11월 울진․삼척지구로 침투한 120명 무장공비 잔당에 의해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주인공 이승복 소년과 관계된 얘기다.
하나 필자에게 있어 이 지명은 결코 낯설지 않다. 아니 잊을 수 없는 낯익은 용어로 다가옴은 동시대 같은 나이 또래에 자주 그를 기리는 노래에 익숙해져 있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필자 당시는 국민학교 였다)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승복은 그해 12월9일 저녁무렵 강원도 용평면 노동리 두메산골 외따른 오두막집으로 난입한 공비들의 공산당 선전에 학교에서 배운 대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9살 어린 소년의 입을 찢고 돌로 내리치고 칼로 난자해 거름더미에 내던졌다.
꿈에서도 잊지 못할 엄마와 여동생 승자, 남동생 승수, 그리고 이승복 본인은 그렇게 공비들에 무참하게 학살돼 개방산 자락에 잠들어 있다. 형은 40여군데를 찔려 버려졌다 구사일생(九死一生)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이후 각종 정신질환으로 몸져누워야 했다. 그래서 그 때 학교에서 불려 지던 이승복 추모 노래는 더욱 애절하고 각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3년 12월9일, 이승복 45주기 추모일이다. 그의 9살 생일이며 비극의 가족사이자 비명(悲鳴)에 눈을 감아야 했던 9일 12시, 어머니 동생들과 함께 누워있는 이승복 기념관 내 묘역에서 추모제가 거행됐다. 눈발이 쏟아지는 속에서도 160여명 예비역 노병(老兵)들은 미동(微動)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묵상에 잠겨 들었다. 이내 눈발은 빗물로 뚝뚝 떨어지며 묘역을 적시기 시작했다.
매년 이 날이면 울진․삼척지구 침투 무장공비토벌작전에 참가했던 분들을 비롯한 예비역 영관장교연합회(회장 권오강) 회원들이 참석해 기일 추모제를 올린다. 올해로 벌써 15년째다.
매해 추모제가 열리는 날 묘역을 찾아 취재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짙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을 채우는 변함없는 사실은 ‘역사는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아무리 미미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 사실 자체에 의미가 있는 한, 또 그를 잊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바른 역사는 결코 잊혀 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좌파정권과 좌파세력들에 의해 우리사회는 한 때 국시(國是)로 여겨지던 ‘반공’ 용어 자체를 입에 담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사용하는 정치인, 지식인은 상대방에 의해 매도(罵倒)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외침도 ‘조작’이라는 주장과 분위기가 사회저변에 형성되었다. 1992년부터 2006년 11월까지 무려 14년 동안 이어진 진실공방은 그해 대법원에 의해 ‘조선일보의 이승복군 사건 보도는 역사적인 진실’이란 인정과 함께 조작설을 유포한 당사자들에게는 합당한 형이 확정됐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이승복 사건은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해졌다. 가족들의 정신적 육체적 피폐는 두말할 나위 없고, 기념관과 그를 기리는 추모행사는 형식적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장학기금은 유명무실해졌다. 교과서에서도 사라졌다. 초등학교 교정에서 가녀린 몸짓으로 나라사랑정신의 표상으로 대변되던 그의 동상은 무너트려져 창고 한편에서 뒹굴거나 땅에 파묻혀졌다. 북한을 찬양하는 무리들은 기고만장, 그의 역사적 진실을 지우고자 광분(狂奔)했다.
바로 그 시기에 우리 군 창설의 주역이자 제주4.3사건을 비롯해 6.25한국전쟁과 이후 북한의 제반 대침투작전 등에 참전하고 군의 중추적 임무를 수행해 온 역전의 용사들로 구성된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영관장교연합회’ 회원들이 이승복 사건 알리기에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의 행동은 일회성 내지 구호성 행사에 그치지 않았다. 기일 추모제를 복원했다. 매년 ‘이승복 사건 역사 다시 알리기’ 책자를 발간하고 전국 학교 도서관과 정부부처, 국회,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 배포하고 직접 어깨띠를 매고 거리 캠페인에도 나선다. 이 날도 이들은 추모제가 끝난 후 결의대회를 갖고 그의 역사가 복원될 때까지 이승복 역사 알리기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다졌다.
(예)영관장교연합회 회원들이 이 운동을 끊임없이 펼치는 이유는 오직 국가에 대한 무한사랑,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는 사명 하나다. 그 결과 그의 추모식에는 지역 내 기관장, 교육관계자, 지자체 등에서 빠짐없이 참석한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변화다. 군에서도 ‘국군정신교육기본교재’ 에 관련 내용을 수록해 정훈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회원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 다시 초등학교교재에 수록되고 그의 동상 역시 교정에 세워지는 그 날까지 변함없이 이 운동을 벌여나간다는 게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권오강 회장의 변함없는 계획이다.
최근 우리사회는 ‘이석기’로 통칭되는 RO 혁명조직과 내란음모 사건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심각한 수준의 위협과 도전을 받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권력의 2인자이자 그의 고모부 장성택을 반당(反黨) 반혁명(反革命) 종파분자(宗派分子)로 낙인찍혀 측근세력을 공개처형하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암시하면서 권력쟁패가 시작되었다.
국내 종북세력들의 현 정부체제 무너뜨리기 행태도 날로 도를 도해가고 있다. 통합진보당을 필두로 국회에 입성한 종북의원들의 합법적 의원활동(?)을 기저로 국민을 기망하고 있다. 끼리끼리의 세력은 서로 연대 야합하면서 대통령 사퇴를 주장하는가 하면 국가정보원 힘 빼기에 공권력 무력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저들의 최종목표는 확고하다.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연방제를 통해 김정은 일당에 헌납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태는 북한당국의 지도와 지원을 받아 합법 비합법 투쟁을 병행하면서 언론을 통한 비폭력 및 무력과 폭력을 통한 수순을 밟아 날로 극한 상황으로 이어지며 그렇게 갈 것은 뻔한 이치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45년 전 소년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당당하고도 의연한 외침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며, 자유민주주의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는 길인가를 되새겨야 한다. 대한민국이 요구하고 있다.
이현오(칼럼리스트, 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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