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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수호의 역사를 통해 본 ‘서해수호의 날’ 제정 의미

Written by. 오제호   입력 : 2016-03-06 오후 1: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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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황해)는 한반도와 중국에 둘러싸여, 북으로는 발해만과 남으로는 동중국해와 맞닿아 있는 13만 6500㎢의 바다이다. 역사적으로 서해는 한반도의 안보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는데, 한반도가 분열되어 각 세력이 각축을 벌일 때의 서해는 한반도 패권을 위한 격전지였다.

 한편 한반도가 통일된 때의 서해는 한반도의 내해(內海)로써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서해는 전자(前者)의 상황에 해당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팽배한 이념대립으로 점철되어 온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서해는 북방한계선 획정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가장 치열한 국가수호의 장으로 변모했다.

 서해가 북한발 안보위협의 직접적 목표가 된 것은 정전협정 전후의 서해 북방한계선 획정 문제와 관련이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은 대한민국 서해 5도와 북한의 황해남도 해안 사이에 설정된 해상 경계선으로, 1953년 8월 30일 UN군 총사령관에 의해 획정되었다. 비록 이 사실을 북한에 공식 통보하지는 않았지만, 1973년까지 북한은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북방한계선을 사실상 묵인하여 남북의 실질적 서해 경계선으로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은 1973년 12월 제346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서해 5도 인근의 수역을 영해라 주장한 이후 서해상 북방한계선에 대한 국지도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특히 1998년경부터 군사분계선 등에 적외선야간감시장비(TOD)가 설치되어 그간 대남도발의 대표적 방식이었던 침투도발이 어려워지자, 서해 5도에 대한 국지도발이 주요 대남 도발책으로 떠올라, 서해는 북한에 맞서는 가장 치열한 국가수호의 장이 되었다.

 이에 따라 1990년대부터 북방한계선 침범을 통한 대남 국지도발이 크게 증가해 북방한계선 침범은 포격 및 소규모 해전, 습격 및 납치 등 가일층 폭력적인 도발의 형태로 확전되기도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999년 6월 15일의 제일차 연평해전이다.

 해군의 굳건한 서해수호 의지와 우월한 함정 전력으로 북한군을 격퇴했지만 2002년 6월 29일 제2차 연평해전에서는 불합리한 교전수칙(‘차단기동’ 이후 경고·격파사격 가능)으로 인해 대한민국 해군도 6명이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한편 북한은 교전수칙을 합리적으로 개정(차단기동을 삭제해 시위기동 후 바로 경고사격 가능)한 대한민국 해군에게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 패전 이후,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사건과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도발로써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해상 국지도발을 감행했다.

 천안함 피격의 경우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한 잠수함 어뢰를 활용한 점과 정전협정 이후 최다인 국군 47인이 희생을 야기한 점에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새로운 북한의 도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연평도 포격도발은 정전협정 이후 최초로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공격해 국군장병 뿐 아니라 민간인 희생을 유발한 점에서 대한민국 전체의 안전보장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대표적인 서해도발의 사례로 남았다.

 이처럼 북한의 서해상 국지도발은 북한의 서해상 북방한계선의 일방적 무시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1990년대 이후 침투도발이 어려워짐에 따라 대남 폭력행위의 주 목표지가 되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북한의 대남 도발 472건의 약 77%인 328건이 북방한계선을 통한 것이었고, 그 중 대다수는 서해 북방한계선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편 이 과정에서 제2차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도발 등 6·25 이후 대표적인 (準) 전시상황이 야기되었고, 55명의 전몰자와 다수의 전상자가 발생하는 등 막대한 희생이 뒤따랐다.

 한편 서해도발 처리과정에서 빚어진 국민불안과 남남갈등, 국론분열, Korea Discount 증대 또한 대한민국이 감내해야 할 막대한 비물질적 피해였다.

 이에 정부는 대남도발에 의한 서해수호의 역사와 그 과정에서의 숭고한 희생을 알리고, 현존하는 최대 안보위협의 장인 서해의 실상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며, 전시상황에 준하는 서해도발 시마다 반복되는 남남갈등과 국론분열을 불식함으로써 북한의 대남도발 의지 자체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특별한 계기를 마련하고자 제47번째 정부기념일로 ‘서해수호의 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서해수호 과정에서 가장 큰 희생을 야기한 천안함 피격일을 좇아 매년 3월 네 번째 금요일이 해당 기념일이며, 올해는 3월 25일이 제1회 서해수호의 날이다. 이로써 매년 3월 네 번째 금요일은 북한의 도발로부터 국토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거국적 안보결의의 날’로 영원히 기능할 것이다.(konas)

오제호(경기북부보훈지청 선양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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