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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에서 파로호 뒤덮은 호국의 혼

Written by. 오제호   입력 : 2016-05-07 오후 1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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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6,357명의 호국영웅이 희생된 6·25전쟁의 1129일은 그 매일이 나름의 가치를 지니며, 이러한 희생을 필요로 했던 수 백건의 전투는 그 하나하나가 가슴에 새겨져야 할 호국의 역사이다. 이러한 점은 지금으로부터 65년을 거슬러 올라가간 5월의 어느 날 중북부 전선에서 벌어진 격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4개의 현충시설(용문산지구 전투 전적비, 용문산지구 전적비, 용문산전투 가평지구 전적비, 파로 전투 전적비)이 건립된 사실에서도 본 전투의 6·25 전쟁사상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설들은 소재지가 다르다. 특히 용문산전투 가평지구 전적비와 파로 전투 전적비는 88㎞이나 떨어져 있다. 단일의 전투를 기념하는 시설이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사실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이에는 88㎞의 거리를 초월하는 의의와 상징성이 내재한다.

 1951년 5월 중공 18개 사단이 동원된 6차 공세(경우에 따라 5-2차 공세 혹은 춘계 2차 공세라고도 함)가 시작되었는데, 아군은 4월 설마리와 가평에서 중공의 공세를 막아냈음에도 압도적 전력차로 인해 여전히 아군은 수세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점은 중공 제63군 예하 187·188·189사단의 대병력을 용문산 방어선에서 저지해야 했던 국군 제6사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히 6사단은 사창리 전투의 패전으로 전력에 큰 손실이 있었기에 전황은 더욱 어두웠다.

 극단전 열세였던 6사단이 채택할 수 있는 전략은 오직 전력을 집중해 험준한 용문산 지세에 기댄 방어전을 펼치는 것만이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6사단은 전력의 1/3인 제2연대를 가평의 북한강 연안에 전진 배치하는 공세적 방어전략을 취했다. 427고지의 전초부대를 향해 중공 3개 사단은 총공격을 벌였는데, 적절한 시점에 본대로 합류해야 했던 제2연대는 427고지에서 후퇴하지 않고 10배 이상의 적 전력을 3일 이상 감당해 냈다. 이에 힘입어 용문산에 주둔하던 7연대·19연대가 가평 북쪽 지암리 일대에서 중공의 후방을 급습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중공군이 5월 21일 총퇴각을 개시함에 따라 아군은 공세로 전환해 중공군을 추격했다. 패퇴를 거듭한 중공군은 북한강을 도강해 북방으로 후퇴하지 못하고 춘천을 거쳐 화천으로 향했으나, 80㎞ 이상 이어진 추격전은 화천호에서 대단원을 맞이했다. 수만 명의 중공군은 이 호수에 수장되었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힘으로써, 중공 제63군의 공세는 격퇴되었고 용문산 전투는 6·25 전쟁사의 최대 승전으로 길이 남게 되었다.

 이 승전을 기념하고자 이승만 대통령은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波虜浩)라는 친필 휘호를 내렸고, 이에 따라 화천호는 현재 파로호로 불리고 있다. 한편 미 8군 사령관 James Alward Van Fleet 장군은 전장을 방문해 대찬사를 전달하는 등 사창리 패전으로 한국군을 불신하던 유엔군이 한국군을 다시 신뢰하게 되었다. 또한 국군 6사단은 사창리의 치욕을 씻을 수 있었고, 이 승전을 기념하는 ‘무찌르자 오랑캐’라는 노래가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용문산 전투의 대전적을 청사에 남기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634명(전사 107명, 부상 494명, 실종 33명)의 호국영웅의 이름을 전하며, 이들의 훈적과 정신을 길이 본받게끔 하기 위해 1957년 용문산지구 전투 전적비를 시작으로 3개의 현충시설이 용문산 일대와 가평 및 화천의 주요 전적지에 건립되었다.

 우선 용문산 주변에 건립된 용문산지구 전투 전적비(용문면 광탄리 175-8)와 용문산지구 전적비(용문면 신점리 산85)는 용문산 전투의 주 방어선이 위치한 곳으로써 국군 6사단이 용문산전투의 승전을 지휘한 장소로서의 상징성을 지닌다.

 한편 가평의 용문산전투 가평지구 전적비(설악면 천안리 98)는 6사단의 427고지 방어전 등 전황을 뒤집고 승전의 기반을 마련한 용문산 전투의 전환점으로서의 의의를 반영한 시설이다. 끝으로 강원도 화천에 건립된 파로 전투 전적비[(별칭 자유수호탑)간동면 구만리 산62-2]는 80여㎞의 추격전 끝에 중공군을 섬멸한 파로호 일대에서의 대전적을 기념하기 위한 시설로, 용문산 전투의 최종 전적지이자 최대 성과를 올린 전장으로서의 상징성을 내포한다.

 결국 용문산 전투는 경기도 양평과 가평은 물론 강원도의 춘천과 화천 등 중북부 지역을 대거 아우르는 거대한 혈전으로, 전쟁의 주도권은 물론 한반도의 명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전투였음을 용문산과 파로호 일대에 건립된 4기의 현충시설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곧 다가올 제65회 용문산 전투일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용문산 전투의 주요 전적지로서 상기한 4기의 현충시설이 위치한 용문산 일대와 파로호를 찾아, 기념비적 승전의 감격과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의 혼을 느껴봄이 어떠할까.(konas)

오제호 /경기북부보훈지청 선양담당 오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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