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전투 전승 96주년 기념행사 열려
지금으로부터 96년 전 오늘인 1920년 6월7일, 일제 식민지 하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조직한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 주력인 정예병력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 명에게 부상을 입힌 대승을 거두었다. 바로 봉오동 대첩이다.
그로부터 96년이 지난 이 날 오후 2시 종로구 소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봉오동전투 전승 제96주년을 기념하는 국민대회가 (사)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종찬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무관이 천시받던 당시 시대상황에서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며 탁월한 전술능력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의 교훈은 우리 군의 전투력 발전에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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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재향군인회 박성국 회장 직무대행은 축사를 통해 “우리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역사를 되살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안위보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선열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국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이 이룬 눈부신 발전의 원동력도 바로 홍범도 장군께서 봉오동전투에서 보여준 강인한 정신력에서 비롯됐다”면서, “우리 국민 모두가 봉오동 정신으로 한마음되어 국가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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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는 지난 4월 5일 대한민국 해군이 일곱 번째 214급(1800t) 잠수함을 진수하면서 ‘홍범도함’으로 명명한 것을 기념해 홍범도함 승조원 20여 명이 함께 자리해 행사를 빛냈다.
홍범도함 함장인 강정호 해군대령은 ‘홍범도 장군님께 드리는 편지’ 글에서 “봉오동 전투에서의 승리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국운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역사상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서 “장군께서 만주에서 연전연승하신 것처럼 홍범도함 또환 최정예 필승 전투함으로 거듭나 어떠한 적의 도발도 단호히 물리칠 수 있도록 열의와 정성을 다해 실력을 겸비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삼응 前 독립기념관장은 봉오동 전투의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는 기념강연에서 “봉오동전투는 홍범도장군의 지휘 아래 최진동의 군무도독부 소속의 독립군과 안무의 국민회군, 그리고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이 연합하여 대규모 독립군 부대를 편성하고(대한북로독군부) 신민단의 소부대까지 참전해 현대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 1개대대를 섬멸시킨 대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압도적인 일본군 병력과 화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독립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기미년 3·1혁명 이후 크게 앙양된 독립군의 사기와 지휘관들의 지리적 이점을 적절히 활용한 뛰어난 전략전술때문이며, 이 전투에서 독립군은 각종 무기를 획득해 4개월 뒤 청산리대첩을 가져오게 해 독립군의 사기진작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홍범도 장군은 조국 광복을 2년 앞둔 1943년 향년 75세의 일기로 카자흐스탄 크즐오드라에서 사망했다. 정부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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