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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운용의 '減速 여부'는 북한의 변화 진폭에 달렸다

Written by. 정준   입력 : 2004-08-14 오전 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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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규정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의 기준과 진폭을 결정하는 일은 전적으로 북한이 과연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요지부동인가에 대한 기본적 상황판단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정석(定石)일 것이다.

북한에서의 민주화 진전을 살피는 잣대(尺度) 역시 <공산주의 노선의 변화> <핵무기 포기> <군축회담의 성사> <개방과 남북간의 자유왕래> <경협강화와 인권개선> 등 제(諸)부문에서 진전이 어떤 방법으로 구체적으로 얼마나 이행되고있는가를 인지하는 일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은 국보법이 제정 후 56년 동안 한반도의 냉전과 분단 고착의 멍에로, 독재정권의 권력유지를 위해 인권을 억압하는 광폭한 무기로, 국민의 기본 인권을 말살한 탄압의 칼날로 작용해왔다고 말한다.

국보법 폐지론자들은 이 법이 냉전고착과 정권보호를 위해 인권사냥과 자유 억압수단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아왔다고 주장한다. 그들 말대로 '인권사냥'과 억압이 있었다고 한들 그것은 민주화를 빌미로 한 친북좌경세력에 대한 치죄(治罪)차원이었을 것이며, 주사파(主思派) 발호에 대한 억압이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자들은 국보법이 국민의 자유와 행복 유지가 아닌,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존재해왔다면서 사회정의의 완성을 위해서도 국보법 폐지는 관철되어야 한다고 강변하지만, 그들의 이같은 억지논리에 동조할 국민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이런 논리야말로 전체와 부분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보법이 오죽하면 정부가 수립되던 해 4개월째(1948년 12월)에, 그리고 형법이 만들어지기 5년 전에 서둘러 제정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 시기는 좌익이 국가전복을 목표로 한 발호가 잇따라 자유 대한민국의 존망이 위태로웠던 시기였다.  

공산당은 근본적으로 타담담타(打談談打=때리고, 회담하고, 회담하고, 때리기)와 담담타타(談談打打=회담하고, 회담하고, 때리고, 때리기)이다. 그들은 지겨울 정도로 치고 때리고 빠지는 상투적인 수법의 반복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히는 전략을 구사한다.

과거 반(反)독재운동권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친북성향'을 말해주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결사옹위(決死擁衛)를 천명하는 것이나 진배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간의 교류협력은 점차 늘어 2003년 한해 교역액은 7억 달러를 넘어섰고, 북한을 다녀온 사람은 1만5천명에 이른다지만, 그것은 표면상의 변화일 뿐, 근본적인 변화를 알러주는 시그널은 정작 어디에도 없다.

그들에게서 '남북 공존(共存)의 철학'을 기대한다는 것은 기대 밖이다.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어느 날 하루아침에 태도를 표변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이 바로 북한이다. 60년 전의 친일(親日)이 화두가 될 정도로 국가정체성이 문제가 되고있고, 낡은 이념논쟁이 재연되고 있는 데다, 북핵위기 등이 실존하는 가운데 '남북화해협력'은 구호만 무성할 뿐, 남북간의 신뢰구축은 공전(空轉)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정통보수세력은 국보법이 폐지될 경우 1948년 정부수립 이후 6·25 한국전쟁 발발까지 이 땅에 공산세력이 국가전복을 목표로 발호했던 상황이 재연될 것임을 크게 우려한다.

오늘의 이 시기는 국가보안법 제정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남과 북이 사활을 놓고 싸우던 1948년 못하지 않는 급변상황이고, 친북좌경분자들을 철저히 가려 국가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질 때이다. 

오늘의 안보상황을 정치논리로 덮으려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햇볕을 가리는 것과 진배없는 소행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의 프로세스를 밟아야 할 시기가 아닌 것이다. (코나스 논설위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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