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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계원 노백린 장군 순국 91주기 추모식

20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려
Written by. konas   입력 : 2017-01-19 오전 10: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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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무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노백린 장군을 기리는「계원 노백린 장군 순국 91주기 추모식」이 20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다.

 이날 추모식은 윤종오 서울남부보훈지청장과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및 회원, 유족,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예배, 추모사, 헌화 및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고 노백린 장군은(1875. 1. 10.~1926. 1. 22.)은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나 1895년 관비(官費)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유학해 1899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00년에 귀국하여 육군 참위로 임관, 한국무관학교 교관이 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안창호, 이갑, 이동녕, 신채호 등과 신민회를 조직하고 만주에 독립운동 전초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으며, 고향인 송화에 민립학교 광무학당을 설립하는 등 구국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여 박용만 등과 하와이 오아후 가할루지방에서 국민군단(國民軍團)을 창설하여 김성옥, 허용과 함께 별동대 주임으로서 3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구국운동에 전념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군무부 총장으로 임명되어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으며, 2대 군무총장으로 선임돼 미국에 머물면서 1920년 2월 20일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서 교포인 김종림(金宗林)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으로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여 1923년까지 77명의 졸업생을 배출토록 하였다.

 1922년 6월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의 지명으로 국무총리 서리에, 1923년 1월에 정식 국무총리로 추대되었다. 1925년 3월에는 박은식 대통령의 지명으로 국무총리에 임명되었고 교통과 군무총장직을 겸직하면서 임시정부를 이끌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심초사하다 1926년 1월 22일 지병으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konas)

kona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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