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안보적 관점에서 되돌아 봐야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의 사과 행태를 놓고 야당의 정치지도자와 좌파단체를 중심으로 “정부가 그것도 사과라고 받느냐”고 비난하면서 부산에 있는 일본총영사관 앞에 또다시 ‘소녀상’을 세웠다. 그리고 대권을 꿈꾸는 야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는 “일본의 사과를 백지화하고 재협상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 문제는 1992년부터 24년이 지나도록 역대정부가 뜨거운 감자라서 사과요청을 기피하거나 외면해 왔던 사안이다. 대통령 유력 후보인 문 모씨가 노무현 정권당시 한․일 문제 해결의 당사자였음에도 왜 그때 전 국민이 시원하도록 해결 하지 못하고 지금에 와서 부산일본총영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에 무릎을 꿇으며 진정한 애국자인양 행동하는 것은 위선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일본은 1965년 대일 청구권에서 모두 해결되었다며 사과를 못하겠다고 24년간이나 버티어 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불편한 관계를 촉발하면서까지 고강도로 사과를 요구하였다. 이에 미국은 두 동맹국인 한․일간의 불편한 관계가 고조되자 한․미․일 공조체제를 다져야하는 입장에서 일본에게 강력한 압력을 가해 그나마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이다.
‘소녀상’의 진정한 의미는 일본의 비인도적인 인권유린을 규탄하고 세계만방에 고하여 일본의 잘못된 만행을 규탄하고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데 있다. 또 한편으로 더 중요한 것은 ‘소녀상’을 통해 우리 스스로 국가 안보태세를 굳건하게 다져야 한다는 교훈의 상징으로 삼는데 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일본으로부터 크게 3차례 즉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일제 36년간의 식민지침탈을 당해 왔다. 우리 위정자들은 침략을 당하고도 전혀 반성하거나 대비하는 일이 없었다. 당시의 위정자들은 언제나 당파싸움에 몰입돼 있었고, 부정과 부패를 일삼아 안보태세 준비는 소홀히 대처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나라를 빼앗길 때마다 죄 없는 온 나라 백성들이 스스로 일어나 의병이나 독립군으로 나서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구하고자 했지만 위정자들은 그 때마다 정략적 이해득실이나 싸움으로 나라를 망하게 하거나 백성들의 삶을 굴욕적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외부의 침략으로 우리 국민들이 당한 인격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의 환향녀(화냥년으로 비하), 일본의 위안부 피해가 대표적 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역사기록에서 빠져있는 피해가 더 많다. 예컨대 외부 침략군에 의한 모녀강간, 살해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뿐 아니라, 수십만의 장정들이 일본의 병사로 끌려가 죽거나 부상을 당해 왔다.
때문에 오늘날 그 ‘소녀상’에는 선조 위정자들의 나쁜 모습과 선량한 백성들이 천박하게 보이는 모습이 함께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당시의 정치인들이 평소에도 철저한 안보태세를 갖추고 국민중심의 정치를 해왔다면, 나라 잃은 국토유린과 처참한 수백만의 인명살상이 있었겠는가? 오늘날 ‘소녀상’을 세워놓고 일본에게 삿대질하며 애걸복걸 자존심까지 구겨가며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치인의 철저한 반성과 안보태세 확립을 위한 채찍으로 ‘소녀상’은 마땅히 청와대와 국회에 우선적으로 세워져야한다. 우리 국민들도 민족의 치욕으로 여겨 일본에게만 그 책임을 전가할게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치 않도록 국가안보를 강하게 다지는 일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을 수 있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녀상’을 세워 일본에 사과를 받는데 그치지만 반면에 수많은 국가적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지금 보이지 않는 보복의 일환으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역사왜곡이나 경제적 압력 등 한국인에게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가장 강력한 보복을 감행하고 있다. 60만 재일동포와 일본에 취업중인 우리 국민들의 차별대우가 은연중 자행되고 있으며 혐한사상을 고취시켜 한․일간의 갈등을 첨예화 시키고 있다. 또한 독도를 자국 영토로 노골화시켜 정부 공식 지침을 내리는 등 영토 침략에도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무엇을 요구하면 반드시 대가를 동시에 요구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는 것이 현실이며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환경에 처해 있다. 우리도 일본을 야단만 치는 감정적 행태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국익과 국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제의 적을 오늘의 우방으로 삼아 한․일간의 관계를 돈독히 할 때이다. 힘을 배양하지 않고는 정의를 세울 수 없다. 총체적 안보위기 상황 하에서 ‘소녀상’으로 인해 한․일, 한․미간에 틈이 가는 언행은 자제함이 마땅하다.
비록 일본의 행태가 밉지만 일본을 이기고 강한 국력을 기르는 길은 적어도 지금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자세가 필요할 때이다.(konas)
조흥래 / 경기광주시무공수훈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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