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이념이 그리스도교에서 나왔다’는 완전한 거짓
“공산주의는 그리스도교에서 나온 것”이라는 글이 소개된 바 있습니다. 이 글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산주의자가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표절했다’고 하신 말씀을 아마 가톨릭 뉴스의 기자가 ‘공산주의 이념이 그리스도교에서 나왔다’고 왜곡하여 제목을 설정한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공산주의는 그리스도교와 절대 일치할 수 없습니다.
첫째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개인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되고 전체주의 권력에 예속되어 자녀의 교육마저도 중앙집권정부에 예탁하는 공산주의 이념과 그리스도교가 일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에서 신자들이 자신의 소유를 공동의 재산으로 내어놓고 생활하였다는 것(사도행전 4장)을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이나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한정된 수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사유재산을 자신의 자유의지로 공동의 재산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그 후에도 물론 사유재산을 공유하는 선의의 공동체가 끊임없이 존재해 왔으며 우리나라에도 두레공동체같은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이념은 이러한 공동체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유재산 자체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시민은 집단농장이나 공장에 수용되어 공동노동, 공동분배하게 됩니다. 마르크스는 사유재산을 없애면 이 세상에 지상의 낙원이 건설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둘째 가톨릭 뉴스의 글에서 마르크스 주의가 대두된 것은 최근 2세기이며 이미 1800년간 마르크스 없는 공산주의가 존재해왔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거짓입니다. 공산주의가 실현된 것은 1917년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한 볼세비키 혁명에 이어 러시아가 시민 모두를 집단수용, 집단노동, 공동분배한 것이 시초입니다. 그전에는 앞서 설명하였듯이 소수의 공동체 구성원이 자신의 뜻으로 재산의 사유를 포기한 경우가 있었을지언정 국가가 전적으로 사유재산을 철폐한 예는 없습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도시빈민들에 대한 노동착취, 이들의 극도의 궁핍상이 전개되면서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기운이 높아지자 1891년 레오 13세 교황께서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일명 ‘노동회칙’)를 선언하게 됩니다. 노동자에게는 노동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적정한 임금을 지급해야 하고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최선의 노동을 제공할 의무 등을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회칙의 핵심은 ‘일부 선동가들이 부자에 대한 가난한 자의 질투심을 선동하면서 개인의 사유재산을 폐지하고자 하는데 이는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며 정의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못 박은 점입니다. 토지는 인간 노력의 결실이며, 황무지를 개간하고 식량을 수확하기 위하여 땀 흘린 사람에게 분명히 귀속되어야 한다고 동 회칙은 밝혔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에는 토지의 사유를 부정하는 사제들이 적지 않습니다. 1937년 비오 11세 교황께서 발표하신 회칙 ‘하느님이신 구세주’(Divini Redemptoris)는 공산주의를 ‘인간사회의 골수에까지 침투하여 그 파멸만을 가져오는 치명적 전염병’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또한 동 회칙은 공산주의의 잔인성, 포악성을 지정하며 공산주의는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비오 11세의 회칙 ‘40주년’(Quadragesimo Anno)은 어느 누구도 진정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진정한 사회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공산주의에서는 사랑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인류 보편의 감정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부자의 자선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속임수이며 모두가 동등하게 자신의 몫을 가져 더 이상 자선이 필요하지 않는 시점이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는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물질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사랑이라는 것은 더 이상 요구되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이 마르크스 주장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부자라고 해서 타인의 따뜻한 배려나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1서 13장 ‘사랑’에서 내가 어떤 위대한 일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나는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공산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의 질투심과 증오심, 적개심을 선동하여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나도 잘 살아보자!’는 슬로건을 혁명의 동력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평화보다는 시위와 난동을 부추깁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나 수녀들이 1년 365일 광화문 광장에서 시국미사로 날밤을 지새는 것을 보십시오. 이들에게 태평세월이 시작된다는 것은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다음으로 공산주의는 필연적으로 대규모학살과 대규모 집단이주를 초래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남보다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근검절약하고 땀 흘려 부를 일구었다면 자신의 재산을 공동분배 하겠다고 기꺼이 내어 놓겠습니까?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즐거움과 안락함을 추구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었는지 모르는 이 모든 사람들의 사연과 욕구를 깡그리 무시하고 국가가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분배한다,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이는 역사가 증명합니다. 모든 공산주의 국가에서 적게는 수백만, 많게는 수천만에서 1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폭정과 살육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북한식 사회주의가 답이다’라고 선동하는 인간들에게 그러면 당신이 가진 것부터 먼저 내어놓으시오 라고 말하면 단 한명도 내어 놓을 인간이 없습니다. 이들은 입으로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우선적 선택’ (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 등 가치적으로 멋들어진 말을 입에 주워섬기지만 막상 자신은 남을 위해 머리카락 하나 뽑을 인간들이 아닙니다.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사람들이 바로 남을 위하여 자선을 베풀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입니다.
마이클 노박이라는 가톨릭 신학자이며 경제학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공산주의는 성인(聖人)을 위한 제도이며 자본주의는 죄인(罪人)을 위한 제도이다.’ 세상의 모든 인류가 성인이라면 공산주의는 훌륭하게 작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聖人)은 극소수이지만 죄인은 절대다수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신 교황님마저도 스스로를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며 당연히 재물에 대한 욕구, 소유욕을 가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욕구가 지나쳐서 남의 권리를 침해하고 남을 억압할 때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016년에 한국의 가톨릭 교회 주교님들께서 2017년부터 예비자 교육에서 사회교리를 가르치겠다고 하며 소신학교에서 교과과정으로 사회교리를 넣겠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올바른 사회교리가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와 새로 입교하는 신자에게 조작된 사회교리(마르크스 주의에 의거한 해방신학)를 가르쳐서 이들을 모두 사회주의 혁명의 전위대로 이끌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정치사제들이 교회의 정통신학을 부정하고 해방신학의 이단으로 흐른다는 심각한 우려가 있다는 점을 평신도께서 아셔야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로마에 항거하였던 혁명가, 기득권층의 불의에 맞섰던 정의의 수호자라고 가르치면서 은연중에 자라나는 세대, 신영세자를 반정부 투사로 탈바꿈시키려고 합니다. 교육의 힘은 무섭습니다. 지금 30대, 40대 전교조에게 교육받은 세대가 어떤 행동을 보이는 지를 잘 고찰해보십시오.
김원율 /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교리강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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